올 상반기 KT 이사회에서 처리한 안건 수가 통신 3사 중 가장 많은 것으로 파악됐다. 사외이사가 80%를 차지하는 KT 이사회 특성상 사외이사들이 회사 경영에 세밀하게 관여했다는 의미로 업계는 해석하고 있다. KT는 최고경영자(CEO) 교체 시마다 경영 방침과 조직이 급변하는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 구조를 만들었지만, 과도한 권한 부여로 CEO의 경영 활동이 제약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 통신 3사 중 이사회 경영 관여 가장 많은 KT
20일 조선비즈가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의 반기보고서를 비교한 결과 KT가 올 상반기 이사회에서 처리한 안건 수가 46건으로 가장 많았다. LG유플러스(15건)보다 3배 이상 많았고, 지난 4월 불거진 해킹 사고로 이사회 안건 처리가 증가한 SK텔레콤(35건)과 비교해도 30% 이상 많았다.
통신 3사 중 KT 이사회의 처리 안건 수가 가장 많은 건 의결 사항을 세분화한 KT 이사회 운영 규정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신업계에 따르면 KT는 이사회 의결 사항을 40여개까지 세분화했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SK텔레콤이나 LG유플러스의 경우 이사회 의결 사항을 큰 흐름에 따라 10여개 안팎에서 분류하고 있지만, KT는 CEO의 단독 권한을 제한하기 위해 매우 촘촘하게 규정하고 있는 걸로 안다"라고 했다.
KT는 투자와 재무 관련 사안도 대부분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세부적으로는 150억원 이상 자금이 소요되는 경우 이사회 의결이 필수다. 150억원 이상의 타법인 보유 지분을 매각하거나, 150억원 이상 보증 또는 담보를 서는 경우, 150억원이 넘는 토지나 건물을 취득하거나 처분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10억원 이상 기부하는 경우도 CEO 혼자 결정할 수 없고, 이사회 동의를 받아야 한다. 자기자본의 1.5% 이상 투자 및 재무 안건이 이사회 처리 대상인 SK텔레콤이나, 500억원 이상의 투자 안건에 대해서 이사회를 거치는 LG유플러스와 대조적이다.
◇ 사외이사 영향력 유독 큰 KT 이사회
통신 3사에서 KT 이사회의 사외이사 비중은 유독 크다. 상법에 따르면 3명 이상의 사외이사만 두면 되지만, KT 사외이사는 8명으로 통신 3사 중 가장 많다. SK텔레콤(5명), LG유플러스(4명)과 비교하면 두 배가량 많은 수준이다. 반면 사내이사는 2명 뿐이다. 사실상 '사외이사가 KT를 지배한다'는 이야기가 불거진 배경이다. 특히 최근 KT 내부 조직 개편과 고위급(부문장) 임원 인사에 대해 이사회의 사전 승인을 받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은 이사회 규정이 통과되면서, 이러한 우려는 더욱 커졌다. CEO 고유 권한인 조직운영권과 인사권까지 사외이사들의 개입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CEO의 힘을 빼고 이사회 힘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은 앞서 2023년 6월에도 있었다. 당시 KT 이사회는 현직 CEO의 연임 우선심사 제도를 폐지했다. 현직 CEO도 신규 후보들과 동일한 심사 과정을 거치도록 한 것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내년 3월 주주총회를 거쳐 새로운 CEO가 취임한다고 해도 이사회에서 사외이사들이 반대하면 그 어떤 조직 개편도 추진할 수 없다. 인사권도 제대로 행사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이사회에서 사업 안건 마다 사외이사들이 반대를 하면 CEO의 경영 활동이 사실상 무력화될 수도 있다"라고 우려했다.
실제로 KT 이사회는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 이사회와 비교해 상대적으로 빈번하게 안건을 수정하거나 조건부로 가결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올 상반기 LG유플러스는 모든 안건을 원안대로 가결했고, SK텔레콤은 6월 25일 열린 이사회에서 단 1건의 안건(사이버 침해사고 관련 책임과 약속 프로그램 의결)만 수정가결 했다. 이와 달리 KT는 지난 3월 10일 이사회에서, 정관 변경안과 대표이사 보수 지급 방안에 대해 조건부 가결을 내렸으며, 6월 17일 이사회를 열고 '이사회 관련 규정 개정안' 원안에 반대를 표시하고 수정 가결을 했다. 특히, 작년 11월 12일에는 'KT-KT클라우드 내부거래 추진' 안건을 사외이사 전원 반대로 보류시킨 사례도 있었다.
류종기 서강대 지식융합미디어대학 겸임교수는 "사외이사가 거수기 노릇을 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의견을 내는 건 CEO 견제 기능 차원에서 바람직한 일이다. 하지만 사외이사들의 통신업 전문성이 떨어지는 건 사실"이라며 "KT의 경우 사외이사 중심의 이사회에 쏠린 힘의 균형을 되돌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기존 사외이사를 교체하는 수준이 아니라, 사외이사 수를 줄이거나 사내이사를 늘리는 근본적 방안 모색도 필요하다"라고 덧붙였다.
한편, 내년 3월 8명의 사외이사 가운데 최양희, 윤종수, 안영균, 조승아 등 사외이사 4명의 임기가 만료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