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서울에 살고 있는데, 건물 밀집 지역에만 가면 5G가 안 터집니다. 비싼 요금을 내고 서비스를 쓸 수 없으니 억울합니다."(서울 송파구에서 근무하는 30대 직장인 연모씨)

"대전 역세권에 살고 있는데, 집에서는 5G가 전혀 터지지 않습니다. 베란다에서도 신호가 안 잡히고, 창문 밖에 팔을 뻗어야 쓸 수 있습니다. 집에서는 LTE만 써야 하는 상황입니다."(대전에 거주하는 20대 대학생 김모씨)

5G(5세대 이동통신) 서비스가 국내에서 상용화된 지 6년이 지났지만, 서비스 품질에 대한 소비자들의 불만은 여전하다. 올해 기준으로 설치된 5G 기지국 수는 4G(4세대 이동통신)인 롱텀에볼루션(LTE) 기지국의 3분의 1 수준이다. 5G 속도는 LTE의 5배에 그치고 있다. 통신업계는 5G 설비 투자(CAPEX)를 사실상 마무리하면서 소비자들을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전문가들은 향후 6G(6세대 이동통신), 인공지능(AI) 시대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5G에 대한 추가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5G 최초 타이틀 '무색'… 기지국 적고 속도는 LTE 5배 머물러

지난 2019년 4월 한국은 세계 최초로 5G 서비스 상용화에 성공했다. 하지만 화려하게 막을 올린 '5G' 시대는 사실상 반쪽짜리라는 평가를 받는다.

5G는 4G 대비 도달 범위가 짧지만, 기지국 수는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18일 이정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과기정통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9월 기준 5G 기지국 수는 LTE의 3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설치된 5G 기지국은 총 36만2580개로 LTE 기지국 수(110만5429개)의 32%에 불과했다. 특히 5G가 잘 터지지 않는다는 지적을 받는 옥내, 지하와 터널에 설치된 기지국은 전체의 각각 14%, 2.4%, 1.3%에 그쳤다.

홍인기 경희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우리나라는 5G와 LTE 기지국을 같이 쓰는 비단독모드(NSA, Non-Stand alone)이다 보니 도달 범위가 짧은 5G가 끊겨도 LTE로 넘어가면 네트워크를 쓸 수 있다"라며 "현재 LTE가 워낙 잘 깔려 있다 보니 서비스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굳이 5G 기지국을 더 추가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5G 속도도 기대에 못 미친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통신 3사의 평균 5G 전송속도는 1025.52Mbps로, LTE(178.05Mbps)보다 6배 정도 빠르다. 서비스 개시 당시 통신사가 약속했던 'LTE 대비 20배 빠른 속도'의 절반도 못 미친다.

이는 통신업계가 5G 서비스 초기부터 적극적인 투자를 꺼렸기 때문이다. 5G의 주파수 대역은 크게 28㎓와 3.5㎓로 나뉜다. 통신업계가 홍보했던 LTE보다 20배 빠른 속도는 28㎓ 주파수에서 구현할 수 있다. 하지만 통신사들은 28㎓가 구축 비용이 많이 드는 데다 수요가 없을 것이라는 이유로 투자를 포기했다. 이에 정부가 28㎓ 주파수를 회수하면서 국내에서는 3.5㎓에서 '반쪽짜리' 5G를 쓰게 됐다.

◇ 전체 회선 이용자 65%가 5G인데… 비싼 요금 받고 설비 투자는 줄여

5G 가입자는 매년 늘고 이용자들은 고가의 통신비를 내고 있지만, 업계는 설비 투자를 줄이고 있다. 과기정통부에 따르면 전체 회선 중 5G 회선 가입자가 차지하는 비율은 지난 7월 기준 5742만명 중 3750만명으로 65%를 기록했다. 2019년 7%로 시작했던 5G 가입자 비율은 매년 증가했다.

5G 가입자가 증가하는 이유는 통신업계가 보조금을 빌미로 고객들이 5G 요금제에 가입하도록 유도해 왔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5G 요금제가 LTE 요금제보다 비싸기 때문에, 통신사 입장에서는 기존 LTE 고객을 5G 고객으로 전환하는 것이 수익성 개선에 도움이 된다.

통신 3사의 설비 투자액은 지난 2021년 8조2010억원에서 2022년 8조1760억원, 2023년 7조6670억원으로 줄더니 지난해에는 6조6147억원으로 급감했다. 올해 역시 통신 3사의 1~3분기 설비 투자 합산 금액은 3조6920억원으로 지난해 동기(3조9724억원) 대비 7% 감소했다.

가입자들로서는 비싼 5G 요금제를 내면서 5G와 LTE를 같이 써야 하는 상황이다. 현재 국내에서는 KT만 5G 단독모드(SA, Stand Alone) 상용 망을 구축했고, SK텔레콤과 LG유플러스는 5G 비단독모드 방식을 쓰고 있다. NSA는 LTE 네트워크에 의존해 5G 서비스를 제공한다. 고주파인 5G는 도달 거리가 짧아, 신호가 끊기면 LTE로 전환된다.

신철원 소비자주권시민회의 팀장은 "통신사들이 5G에 돈을 쓸 가능성은 현재로선 없어 보인다"라며 "LTE와 5G 통합요금제를 내놓으면서 두 가지를 동시에 쓰면 연결 문제가 해결된다고 보고 더 이상 설비에 투자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정부는 5G 서비스에 대한 비판을 공감하면서도, 품질 개선을 위한 예산 증액에는 소극적인 상황이다. 배경훈 부총리 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올해 국정감사 당시 일부 교통시설 등에서 5G 서비스 이용이 불편하다는 지적에 대해 살펴보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통신서비스 품질 평가에 편성된 예산은 지난 2023년 16억4500만원에서 2024년 14억1500만원으로 줄어든 이후 내년까지 동결된 상태다.

◇ "5G는 물론 6G 전환 위해서라도 추가 투자 필요"

전문가들은 정부와 통신업계의 소극적인 투자가 결국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5G 서비스 품질은 단순히 일상에서의 인터넷 사용 속도 뿐 아니라 6G(6세대 이동통신), 인공지능(AI) 등 미래 사업의 성장 가능성과도 밀접하게 연결됐기 때문이다. 초고속 데이터 전송부터 클라우드, AI 기능 통합 등 미래 IT 산업은 탄탄한 5G 인프라에서 시작된다.

미샤 돌러 에릭슨 신기술 담당 부사장은 지난 9월 한국을 방문해 "5G는 단순한 세대 교체가 아니라 AI·AR(증강현실) 기반 플랫폼 경제를 뒷받침할 핵심 인프라"라며 설비 투자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류제명 과기정통부 2차관은 지난 10월 국정감사 당시 "5G 도입 이후 6년이 지난 만큼 이제는 SA 방식으로 전면 전환할 필요가 있다"며 "이동통신 3사와 관련 논의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장경희 인하대 전자공학과 교수는 "5G 투자 없이 6G 시대로 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정부나 통신업계가 그동안 5G에 투자하겠다고 약속하고 진행하지 못한 것들이 너무 많다. 5G에서 6G 시대로 퀀텀 점프를 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했다. 이어 "현재 5G 시스템을 전면 강화하지 않으면 AI 등 미래 사업을 진행하기가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