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반도체 설비 과잉 투자 우려로 한동안 지연됐던 평택 신공장(P5) 건설을 재개한 가운데 SK하이닉스 역시 120조원 규모로 발표했던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예상 투자 비용을 약 600조원까지 늘리면서 설비투자 경쟁이 불붙기 시작했다.
인공지능(AI) 거품론과 수년 전 D램 공급 과잉으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던 두 회사가 설비투자 규모를 확대하는 것은 메모리 슈퍼사이클(초호황)에 대한 전망이 확실해졌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또 이번 메모리 호황기가 내년뿐만 아니라 2028년 이후에도 유효할 것이라는 관측이 깔려있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최근 60조원 이상이 들어가는 경기 평택사업장 2단지 5라인(P5) 프로젝트 건설을 재개했다. P5는 차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와 범용 D램을 병행 생산하는 하이브리드형 공장이 될 것으로 보인다. 가동 목표 시점은 2028년으로 시황에 따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라인을 구축할 예정이며, 상황에 따라 가동이 앞당겨질 가능성도 있다.
중장기적으로 삼성전자는 평택사업장 1단지(P1~4)와 2단지(P5~6)를 합쳐 87만평 규모의 반도체 생산기지를 준비해 왔다. P5와 P6가 예정대로 구축될 경우 평택은 삼성전자의 글로벌 최대 반도체 생산거점이 된다. P4는 총 4개 생산라인 중 3곳이 가동 중이거나 생산을 앞두고 있는데, 10나노급 6세대(1c) D램과 HBM4(6세대 HBM) 양산을 담당할 예정이다.
여기에 삼성전자는 용인 반도체 국가산업단지 클러스터에도 360조원을 들여 오는 2031년까지 총 6개의 팹을 완공할 계획이다. 우선 내년 말까지 1기 팹을 착공해 2030년 가동하는 것이 목표다. 평택사업장 라인 확장과 용인 반도체 국가산단 클러스터 공사가 모두 완료되면 총 12개의 팹이 돌아가게 된다.
설비투자에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여왔던 SK하이닉스 역시 이미 포화 상태에 이른 이천, 청주 공장의 제한된 생산 설비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로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특히 대중 제재로 리스크를 떠안고 있는 중국 우시 공장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국내 생산능력을 강화하는 것이 과제다.
SK하이닉스는 최근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의 클린룸 면적을 기존 계획 대비 50% 확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용인특례시는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일반산업단지에 대한 9차 변경 산업단지계획을 최종 승인·고시하고 SK하이닉스 부지(A15)의 용적률을 기존 350%에서 490%로 상향한 바 있다. 건축물 최고 높이도 120m에서 150m까지 완화했다. 이에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들어서는 팹(생산라인)의 클린룸 면적도 늘어났다. 당초보다 1.5배 넓은 클린룸을 조성할 수 있게 되면서 투자비용이 확대된 것으로 전해졌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총 4기의 팹이 세워질 예정이다. 각각의 팹은 최근 준공된 SK하이닉스 청주 M15X 팹 6개와 비슷한 규모다. 지난해 SK하이닉스는 청주 M15X 팹 건설에 20조원 이상이 투입된다고 발표한 바 있다. 단순 계산하면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 1개 팹에 120조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한 셈이다. 팹 4개가 모두 완공되면 최소 480조원이 투입될 전망이다.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가 2050년까지 계획된 장기 프로젝트라는 점을 감안하면 물가 상승, 개발 비용 상승 등을 감안해 적정한 추정이라는 분석이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메모리 반도체는) 2026년 내내 공급 부족으로 평균판매단가(ASP)가 지속 상승하는 한편 HBM 판매 확대로 수익성이 큰 폭으로 증가할 것"이라며 "AI로 촉발된 메모리 업사이클 랠리는 이제 시작됐다"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