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서버와 전장 수요가 폭증하면서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 시장이 '슈퍼사이클' 초입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증권가에서 잇따르고 있다. MLCC는 전자기기에서 전류를 안정화하고 노이즈를 제거하는 필수 부품으로, 스마트폰 한 대에 수백 개, AI 서버에는 수만 개가 들어간다. MLCC 점유율 세계 2위 업체인 삼성전기도 구조적 수혜가 기대된다는 전망이 나온다.

삼성전기 수원사업장 전경./삼성전기 제공

1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AI 서버와 전장용 MLCC 수요가 빠르게 늘어나는 가운데, 스마트폰·PC 등 범용 IT 수요도 회복되면서 공급 여력이 줄고 있다. 특히 AI 서버의 전력 사용량과 처리 성능이 높아지면서 고사양 MLCC가 대량으로 필요해진 영향으로, 범용 MLCC 납품 기간도 점차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MLCC는 레이어 수·면적 등 설계에 따라 생산성이 크게 달라지는 특성이 있다. 특정 스펙에 수요가 집중되면 다른 제품으로 라인을 돌리기가 어려운 구조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흐름이 최근 HBM(고대역폭메모리) 수요 폭증으로 D램 가격 구조가 바뀌었던 과정과 유사하다고 본다. HBM 생산을 늘리기 위해 반도체 업체들이 첨단 공정과 패키징 라인을 HBM 중심으로 재배분했고, 그 결과 범용 D램 공급이 줄면서 가격이 급등한 것처럼 AI 서버용 고부가 MLCC 생산이 범용 MLCC 라인을 잠식해 공급 축소를 일으키고 있다는 분석이다.

삼성전기의 사업 비중 변화도 시장 재편 흐름을 뒷받침한다. 삼성전기의 AI 서버용 MLCC 매출 비중은 2023년 3%에서 2024년 9%로 확대됐고, 2025년에는 10%를 넘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생산라인이 고부가 스펙 위주로 이동하고 있음을 의미하며, 범용 MLCC 단가 정상화와 할인 축소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된다. 삼성전기는 올 상반기 기준 MLCC 시장 점유율 25%로 글로벌 2위 기업이다.

점유율 약 40%로 1위 기업인 무라타제작소도 스마트폰·통신·컴퓨터 수요 회복세를 반영해 올해 매출과 영업이익 전망치를 상향했다. 유통 재고가 실수요 기반 수준으로 낮아지면서 MLCC 시장의 회복이 '단기 반등'이 아니라 '체질 변화'라는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업계에서는 내년부터 MLCC 가격 체계가 고사양 제품 중심의 선택적 인상, 범용 제품의 할인 축소 방식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이는 D램 시장에서 확인된 '공급 재배분형 사이클'과 동일한 구조로, AI 서버 고밀도화와 전장용 수요가 단기 조정을 흡수하는 완충재 역할을 해 가격 상승 압력이 장기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는 관측이 우세하다.

이 같은 시장 변화는 삼성전기의 실적에도 반영되고 있다. KB증권은 삼성전기의 올해 4분기 매출과 영업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13%, 89%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며 투자의견 '매수'와 목표주가 30만원을 유지했다. 비수기임에도 성수기급 실적을 기록할 것이란 관측이다. 이창민 KB증권 연구원은 "AI 서버·전장용 부품 비중 확대가 IT 부품의 계절성을 낮추고 있어, 고객사의 재고 조정에도 판매 감소가 제한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