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인터넷TV 플랫폼 유튜브TV와 디즈니가 약 2주간 이어진 재송신료 분쟁을 마무리하고 재계약에 합의했습니다. 디즈니는 ESPN·ABC 등 주요 채널 송출을 재개했고, 양측은 일부 서비스 제공 방식과 번들 판매 권한 등을 조정했습니다. 디즈니는 "콘텐츠 가치가 인정받았다"고 밝혔지만, 시장에서는 블랙아웃 장기화와 사업 부진 속에서 협상력이 약해지며 유튜브가 더 유리한 조건을 확보했다는 분석이 우세합니다.
17일 업계에 따르면 이번 분쟁은 지난달 디즈니가 유튜브TV와의 재계약 조건을 두고 갈등을 겪으며 촉발됐습니다. 디즈니는 유튜브TV가 ESPN·ABC 등 핵심 채널에 정당한 요금을 지급하지 않으려 한다며 송출을 중단했고, 유튜브TV는 디즈니의 요구가 구독자 요금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유튜브TV는 월 82.99달러에 100여개 채널을 제공하는 인터넷TV 서비스로, 미국 내 가입자가 950만~1000만명 규모로 추정됩니다. 케이블 시청층 이탈이 빠르게 진행되는 가운데 유튜브TV는 '케이블 대체형 서비스'로 성장해왔고, 이번 협상에서도 그 영향력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양사는 구체적 조건을 공개하지 않았지만, 업계 분석을 종합하면 유튜브가 가져간 이익이 더 크다는 관측이 많습니다. ESPN이 새로 준비 중인 직접구독(D2C) 서비스가 유튜브TV 구독자에게 추가 비용 없이 제공될 것으로 알려졌고, 디즈니+·훌루 번들도 유튜브TV가 자체 결제·구독 체계에서 직접 판매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는 디즈니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온 '직접구독 전략(D2C)' 일부가 유튜브TV 생태계로 이동하는 구조입니다. 스트리밍 시장에서 핵심 경쟁력인 가입자 데이터와 번들 구성 권한이 플랫폼으로 넘어가며, 디즈니는 직접 고객 확보 기회를 일부 내준 셈이 됐습니다.
블랙아웃 기간 디즈니에 발생한 광고 손실도 협상에 불리하게 작용했습니다. ESPN·ABC·FX 등 주요 채널은 광고 매출 비중이 높은데, 송출 중단이 길어질수록 시청률 관리와 광고 영업 모두에 차질이 생깁니다. 모건스탠리는 "디즈니 채널이 유튜브TV에서 14일간 끊길 경우 약 6000만달러의 매출 감소가 예상된다"고 분석했습니다. 유튜브TV는 구독자 불만을 완화하기 위해 20달러 크레딧을 지급했지만 광고·수익 측면의 직접적 타격은 제한적이었습니다. '블랙아웃이 길어질수록 디즈니 손실이 더 크게 누적되는 구조'가 협상을 장기화하기 어렵게 만든 요인이었습니다.
블랙아웃 충격과 별개로, 디즈니의 전반적 실적 부진 역시 협상 환경을 악화시켰습니다. 디즈니의 3분기 매출(224억6000만달러)은 시장 전망치를 밑돌았고, TV 네트워크 부문은 시청률 하락과 정치광고 감소로 약세를 보였습니다. 케이블 가입자 감소로 ESPN 수익성이 흔들리는 가운데 중계권료 부담이 커지며 비용 압박도 확대되고 있습니다.
스트리밍 사업 역시 뚜렷한 반등을 만들지 못하고 있습니다. 디즈니+ 구독자는 1억3200만명(훌루 포함 1억9600만명) 수준으로 늘었지만 부문 전체는 여전히 적자이며, 핵심 전략이었던 직접구독 모델도 초기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스타워즈·마블 등 대형 IP 중심의 투자에도 불구하고 오리지널 콘텐츠 성과가 부진하고 제작비는 빠르게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지역에서도 디즈니+의 월간활성이용자(MAU)는 넷플릭스와 큰 격차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2023년 '무빙' 흥행 직후 400만명대까지 올랐던 MAU가 최근 200만명대로 내려온 상태입니다. 가격 인하 중심의 구독 유지 전략도 플랫폼 경쟁에서의 주도권 약화를 보여주는 지표로 해석됩니다. 반면 넷플릭스는 글로벌 약 3억명 구독자를 기반으로 광고요금제 성장과 ARPU(가입자당 매출) 상승이 지속되며 확실한 성장 흐름을 만들고 있습니다.
이처럼 스트리밍·케이블·TV 네트워크 등 핵심 사업 전반에서 디즈니의 구조적 어려움이 커지는 가운데, 이번 유튜브TV 재계약은 플랫폼 권력이 콘텐츠 제작사보다 더 강해진 현실을 다시 드러낸 사례로 평가됩니다.
김용희 선문대 경영학과 교수는 "초기 플랫폼 시장에서는 콘텐츠 공급자의 힘이 강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대체 가능성이 높은 쪽의 협상력이 커진다"며 "현재는 디즈니보다 유튜브TV가 더 다양한 대체 콘텐츠를 확보할 수 있는 구조여서 협상 주도권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 "송출 중단 이후 시장 충격이 디즈니 주가에 즉각 반영된 점을 보면 이번 계약도 유튜브가 더 유리한 조건을 확보했을 가능성이 크다"면서 "결국 공급자와 플랫폼 간 협상에서 핵심은 대체 가능성이라는 점을 이번 사례가 잘 보여준다"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