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6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4) 경쟁이 본격화한 가운데, 차세대 HBM에 대한 수요가 가시화되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있다. 차세대 HBM인 7세대 HBM(HBM4E)부터는 정해진 규격에 맞춰 제품을 개발해 양산하는 '범용' 제품부터 고객사가 원하는 방식으로 핵심 부품을 설계해 공급하는 '맞춤형'까지 시장이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13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 HBM4E 개발 완료를 목표로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HBM4E는 엔비디아 루빈 플랫폼의 최상위 버전인 R300 등 글로벌 빅테크의 인공지능(AI) 가속기 신제품에 탑재될 것으로 알려졌다. HBM4E가 탑재되는 AI 가속기가 오는 2027년 출시를 앞두고 있어, 내년 하반기 품질 검증을 완료해야 하는 만큼 개발에 속도를 높이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HBM4E가 2년 후 HBM 시장의 주류 제품으로 부상할 것으로 예상되자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시장 선점에 뛰어들었다. 손인준 흥국증권 연구원은 "HBM 시장의 전년 대비 수요 증가율은 내년 77%, 2027년에는 68% 수준으로 추산된다"며 "2027년에는 HBM 총 수요량의 40%를 HBM4E가 차지할 것"이라고 했다.
HBM4 시장까지는 그동안 독주 체제를 굳혀온 SK하이닉스가 선점했다. SK하이닉스는 업계 큰 손인 엔비디아와 HBM4 내년 공급 물량에 대한 협상을 메모리 반도체 기업 중 가장 먼저 마무리했다. 엔비디아 루빈 플랫폼에 탑재되는 HBM4 초도 물량의 상당수를 SK하이닉스가 공급하게 될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삼성전자가 HBM4 공급망에 진입했다고 언급했지만, 공급 협상은 아직 진행 중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다만, HBM4E부터 맞춤형 HBM 시장이 본격 개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시장 지형이 뒤바뀔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HBM4E의 두뇌 역할을 담당하는 '로직 다이(베이스 다이)' 설계를 고객사가 원하는 방식으로 설계해 제조하는 맞춤형 HBM 시장을 준비 중이다. 이 시장에 적기 대응하기 위해선 고객이 원하는 형태로 제품을 만드는 설계 능력과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공정 역량을 보유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같은 역량을 전부 내재화한 삼성전자는 HBM4부터 로직 다이에 자사 파운드리 공정을 적용해 경험을 쌓은 상태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HBM4E 시장까지는 엔비디아와 협력 관계가 공고한 SK하이닉스의 선두 지위가 유지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한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다만, HBM4E는 자체 AI 가속기를 개발 중인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맞춤형 제품에 대한 수요가 다변화되면서 발 빠른 대응이 가능한 파운드리 공정 역량과 생산 능력을 보유한 삼성전자가 유리한 점도 있어 시장 재편 가능성이 있다"고 했다.
마이크론도 HBM4E 시장을 염두에 두고 TSMC와 협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SK하이닉스가 HBM4부터 TSMC의 파운드리 공정을 로직 다이 제조에 적용한 것과 달리, 마이크론은 자사 첨단 D램 공정을 적용했다. 다만, 고객 수요와 제품 성능 향상을 위한 파운드리 첨단 공정의 필요성이 부각되면서 TSMC와 협업을 추진한 것으로 분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