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장현실(XR) 시장이 커지면서 핵심 부품인 올레도스(OLEDoS·OLED on Silicon) 패널을 둘러싼 차세대 디스플레이 경쟁이 본격화하고 있다.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이후 차세대 기술로 꼽히는 올레도스 시장은 현재 일본이 주도하고 있지만, 중국이 정부 보조금을 앞세워 대규모 양산 체제에 나섰다. 국내에서는 삼성디스플레이가 최근 양산에 돌입하며 시장 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삼성전자의 XR기기 '갤럭시 XR'/삼성전자 제공

1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삼성디스플레이는 최근 삼성전자의 XR 기기 '갤럭시XR'에 탑재할 1.3인치 4K급 올레도스 패널 양산에 돌입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올레도스를 양산한 건 처음이다. 대형 OLED 중심 경쟁이 격화된 상황에서 소형·고부가 제품으로 포트폴리오를 다변화하려는 전략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갤럭시XR의 초기 물량이 제한적이어서 시장 파급력이 크지 않을 것"이라며 신중한 분위기다. XR 시장이 아직 수요가 검증되지 않은 단계인 만큼, 이번 양산은 기술력과 신뢰성을 입증하기 위한 시험대 성격이 강하다는 분석이다.

◇ 삼성디스플레이 올레도스 첫 양산… 日·中과 경쟁 본격화

삼성디스플레이가 올레도스 시장에 진출함에 따라 본격적인 경쟁이 예상된다. 그동안 일본과 중국 업체들이 주도했던 시장 구도가 재편될 전망이다. 현재 올레도스 시장은 일본 소니가 선두를 달리고 있다. 소니는 애플이 지난해 출시한 '비전 프로'에 4K 올레도스를 전량 공급하며 기술 우위를 입증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AWE USA 2025'에서 전시한 고해상도(5000PPI), 고휘도(2만니트) 등 최신 올레도스 제품 모습./삼성디스플레이 제공

여기에 '패널 굴기 2라운드'를 선언한 중국도 빠르게 추격 중이다. 중국 시야(Seeya)는 DJI 고글2에 FHD급 올레도스를 납품했고, 시야와 BOE 자회사인 BMOT는 이르면 내년부터 메타 '퀘스트' 시리즈에 올레도스를 공급할 것으로 알려졌다. 시드텍(Sidtek) 등도 12인치급 생산라인을 구축하며 캐파 경쟁에 돌입했다. 기술보다 속도를 앞세운 '선(先)캐파 후(後)수요' 전략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올레도스 사업 확대에 나설 전망이다. 삼성전자 외 애플로의 공급도 추진 중이다. 차세대 기술인 적·녹·청(RGB) 올레도스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2023년 미국 RGB 올레도스 업체 '이매진'을 약 2900억원에 인수하며 기술 확보에 나섰고, 개발과 사업화를 전담하는 조직도 새로 만들었다.

LG디스플레이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스마트워치용 올레도스 시제품을 공개하며 공세를 폈지만, 올해는 8.6세대 OLED와 차량용 패널 중심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XR 시장의 성장 속도가 기대에 미치지 못하자 안정적인 수익 기반으로 회귀한 것이다. 다만 내부 투자는 지속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 OLED 역전 당한 한국, 올레도스로 만회 노린다

국내 디스플레이 업체들이 올레도스 개발에 나선 것은 OLED 시장에서 중국의 추격이 거세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한국의 글로벌 OLED 시장 점유율(출하량 기준)은 48.2%로 50.5%를 기록한 중국에 처음으로 역전당했다.

올레도스는 OLED를 실리콘 웨이퍼 위에 구현해 초고해상도 이미지를 만드는 기술로, XR 헤드셋·스마트글라스 등 착용형 기기에 최적화돼 있다. 픽셀 간 간격을 극단적으로 줄여 1인치대 화면에서도 4K 이상 해상도를 구현할 수 있고, 유리기판을 사용하는 기존 OLED보다 훨씬 가볍다. 다만 미세패턴 정렬과 발열 제어가 까다로워 수율 확보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OLED의 경우 중국 패널 업체들의 기술력이 한국과 비등한 정도로 크게 올라와 있지만, 올레도스는 그렇지 않다"면서 "우리 기업들이 지속적인 투자와 기술 개발에 나선다면 올레도스에서는 기술적 우위를 가져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올레도스는 현재 생산 단가가 높고 수율이 낮아 상용화 속도가 더딘 단계다. 애플 비전 프로 판매가 기대에 못 미치는 것처럼 XR 기기 시장 규모도 아직 크지 않다. 옴디아는 XR용 패널 시장 규모가 올해 약 6억달러(약 8200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수십조원에 이르는 OLED와 비교하면 매우 작다.

그러나 생산 업체가 늘면서 올레도스 가격 하락이 예상되고, 이는 XR 생산 단가 인하로 이어져 XR 기기 시장 확대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키미 린 옴디아 수석연구원은 "경쟁이 일어나면서 올레도스 가격이 빠르게 하락하고 있다"며 "0.49인치 제품의 경우 2024년 25달러에서 올해 20달러, 2026년 17달러 등으로 계속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