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대표 게임사 크래프톤이 올해 누적 영업이익이 창사 이래 처음으로 1조원을 돌파하는 등 역대 최대 실적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주가는 내리막길을 걷고 있다. 크래프톤의 주가는 올 5월 39만3000원으로 고점을 찍은 뒤 계속 하락해 지난 7일 25만7000원까지 내려왔다. 지난 6개월 사이 주가가 30% 이상 떨어졌다.
시장에서는 크래프톤이 배틀그라운드 지식재산권(IP)에 버금갈 차기작을 아직 선보이지 못한 데다, 무배당을 고집하는 등 주주환원 정책이 미흡해 주가가 반등 기회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크래프톤은 이달 실적 발표에서 올해 3분기 매출이 8706억원으로 1년 전보다 21% 증가했다고 밝혔다.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7.5% 늘어난 3486억원이었다. 올 들어 3분기까지 누적 매출은 2조4069억원, 영업이익은 1조519억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크래프톤의 대표 IP '펍지(PUBG): 배틀그라운드'의 인기가 성장을 견인했다. 특히 인도 시장에서 '배틀그라운드 모바일'의 인도 버전인 '배틀그라운드 모바일 인디아(BGMI)'가 분기 기준 최대 매출을 기록하는 등 성과를 이어갔다. 지난 2017년 출시된 배틀그라운드는 전 세계적으로 흥행몰이를 하면서 크래프톤이 글로벌 게임사로 발돋움할 수 있게 한 '효자 IP'다.
다만 주가는 안정적인 매출 성장 흐름과 반대로 좀처럼 힘을 쓰지 못하고 있다. 크래프톤 주가는 5월 7일 39만3000원으로 올해 들어 최고점을 찍은 뒤 줄곧 하락세다. 올 7월에는 35만원 아래로 떨어졌고, 9월에는 30만원선을 내줬다. 이달 들어서는 3분기 실적을 발표한 4일 이후 25만원대까지 미끄러졌다가 10일 소폭 반등해 26만6000원에 마감했다. 올 들어 최고점 기준으로 보면 약 6개월 사이 약 32% 하락한 셈이다. 지난 2021년 상장 당시 공모가(49만8000원)와 비교해도 거의 반토막 수준이다.
업계에서는 크래프톤(259960)의 3분기 영업이익 성장률이 둔화하면서 시장 기대에 못 미친 데다, 배틀그라운드 단일 IP 의존도가 높다는 점이 주가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분석했다. 오동환 삼성증권 연구원은 "크래프톤의 매출 성장세는 견조했지만, 신작 개발과 관련된 외주 용역비와 PC 부문 매출 비중이 상승하면서 영업이익이 컨센서스(시장 기대치)를 하회했다"고 말했다.
특히 배틀그라운드 의존도는 크래프톤이 풀어야 할 숙제로 꼽힌다. 배틀그라운드 IP는 지난해 크래프폰 연 매출 약 2조7000억원의 대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비중이 크다. 크래프톤 입장에서는 든든한 '캐시카우'이지만, 배틀그라운드 IP가 지난 8년 동안 보여준 성장세를 앞으로도 이어간다는 보장은 없기 때문에 신규 성장 동력 발굴이 시급한 상황이다.
문제는 차기 성장 축으로 키울 만한 신작이 안 보인다는 점이다. 지난 3월 크래프톤이 얼리 액세스(앞서 해보기)로 출시한 인생 시뮬레이션 게임 '인조이(inZOI)'가 초기 반응은 좋았지만 정식 출시 일정이 내년으로 미뤄져 수익화까지는 시간이 걸릴 전망이다. 크래프톤은 내년 주력 신작으로 오픈 월드 생존 제작 장르의 '팰월드 모바일'과 해양 어드벤처 게임 '서브노티카2'를 내세웠지만, 출시 일정이 미정이라 불확실성이 크다는 평가가 나온다. '서브노티카 2'의 경우 게임을 개발 중인 미국 자회사 언노운 월즈 엔터테인먼트의 전 경영진과 크래프톤 간 갈등과 이어진 법적 분쟁으로 이미 출시가 한 차례 연기된 바 있다.
최승호 DS투자증권 연구원은 "게임의 장르적 특성상 '팰월드 모바일'과 '서브노티카2'가 전사적 성장을 홀로 견인할 가능성은 높지 않기 때문에 내년에도 배틀그라운드 IP가 크래프톤 실적을 좌우할 전망"이라고 말했다.
크래프톤은 배틀그라운드 IP의 견조한 성장을 발판으로 프랜차이즈화에 박차를 가해 수익성을 높인다는 전략이다. 또 IP 다각화를 위해 투자를 늘리고, 그 일환으로 신규 프로젝트 11개도 가동 중이다. 신작은 2027년에 대거 출시한다고 발표했다. 배동근 크래프톤 최고재무책임자(CFO)는 지난주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신규 IP는 2027년에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며 "5개년 계획상 2027년이 큰 변곡점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트리플에이(AAA)급' 대형 신작 개발이 공개되지 않아 신작 모멘텀(상승 동력)은 부족하다고 시장 관계자들은 분석했다. 최 연구원은 "명확한 파이프라인(신작 후보군)이 드러나기 전까지 이를 밸류에이션(valuation·기업 평가 가치)으로 수치화하기 어려운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는 크래프톤의 무배당 기조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크래프톤이 매년 최대 실적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글로벌 게임사임에도 불구하고 주주환원 정책이 미흡해 투자 매력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크래프톤은 2021년 상장 이후 한 번도 배당을 한 적이 없다. 배당의 재원이 되는 이익잉여금은 올해 상반기 기준 5조2896억원에 육박하지만, 회사 측은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효과적인 주주환원 방식이라는 판단하에 배당은 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