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이 진화할수록 데이터센터는 더 뜨거워지고, 냉각에 드는 전력 비용도 치솟고 있다. 24시간 연산을 멈추지 않는 AI 데이터센터에서 발생하는 대량의 열을 식히는 데에만 데이터센터 전체 전력의 40%가 소모된다. 서버의 집적도와 발열이 계속 높아지는 상황에서, 공기로 열을 식히는 기존 공랭식 팬(Fan) 방식은 한계에 부딪혔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서버 전체를 전기가 통하지 않는 특수 유체에 담가 식히는 '액침 냉각(Immersion Cooling)' 기술이 부상하고 있다. 공기 대신 열전도율이 높은 액체를 사용해 서버의 열을 직접 흡수·순환시키는 방식으로, 복잡한 설비가 필요 없어 유지 비용이 낮은 차세대 표준 냉각 기술로 꼽힌다. 16년 전 업계 최초로 데이터센터용 액침 냉각을 상용화한 미국 GRC의 피터 폴린 최고경영자(CEO)는 7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AI 서버의 폭발적인 증가로 향후 2~3년 내 액침 냉각 시장이 50~100% 성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GRC가 주력하는 '1상(싱글페이즈)' 액침 냉각은 서버를 전기가 통하지 않는 특수한 액체 안에 그대로 담가, 액체가 직접 열을 흡수하도록 하는 방식이다. 뜨거워진 냉각유는 다시 냉각 장치로 보내져 식은 뒤 순환되기 때문에, 복잡한 냉매 증발 과정 없이 단순한 구조로 안정적인 온도 조절이 가능하다. 폴린 CEO는 "1MW(메가와트) 규모 데이터센터에 GRC 솔루션을 적용하면, 연간 75만달러(약 11억원)의 전력비를 절감할 수 있다"며 "일반 공랭식 데이터센터의 평균 전력사용효율지수(PUE)는 1.7 수준이지만, GRC는 실제 고객사에서 업계에서 드문 수치인 1.06을 달성했다"고 말했다. PUE가 1에 가까울수록 전력 효율이 높다는 의미다.
GRC는 최근 한국 시장에서도 보폭을 넓히고 있다. LG전자, SK엔무브와의 3자 업무협약(MOU)을 통해 GRC의 탱크, LG전자의 칠러 등 냉각 솔루션, SK엔무브의 유체를 결합한 통합 데이터센터 솔루션 개발을 추진 중이다. 폴린 CEO는 "이는 GRC의 가장 큰 차별점인 '파트너 생태계' 전략의 핵심"이라며 "고객이 서로 다른 기업의 장비와 소재를 따로 구매해 조립하는 위험 부담 없이, 처음부터 완벽하게 호환되는 통합 솔루션을 제공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폴린 CEO는 또 'AI 데이터센터 투자 거품' 우려에 대해 "향후 5년간 그 위험은 매우 적다"며 "인터넷 버블과 달리, 지금 시장의 제약 요인은 거품이 아니라 전력 확보 문제"라고 진단했다. "전력 인프라가 일종의 조절 장치 역할을 하며 시장의 과열을 스스로 억제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2016년부터 GRC를 이끌고 있는 폴린 CEO는 코넬대 전기공학과 출신으로, 30여년간 데이터센터 산업에 몸담아왔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냉각 시장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나.
"AI 서버는 기존 IT 장비보다 훨씬 많은 전력을 사용한다. 연산 밀도가 높아질수록 열도 함께 늘어나는데, 지금 공랭식으로는 한계에 도달했다. 과거에는 냉각이 전력 절감을 위한 '보조 시스템'으로 여겨졌지만, 이제는 AI 서비스의 지속성과 직결되는 핵심 인프라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가 액침 냉각 수요를 급격히 끌어올리고 있다. 실제로 글로벌 데이터센터 운영사들이 이미 파일럿 단계를 넘어 본격적인 확장 국면에 들어섰다."
—GRC는 업계에서 액침 냉각을 일찌감치 상용화한 기업이다. 기술적으로 어떤 차별점이 있나.
"GRC는 2009년 업계 최초로 데이터센터용 액침 냉각 솔루션을 상용화한 이후, 지금까지 20여개국에서 수백 개의 프로젝트를 수행해 왔다. 단순히 냉각 장비를 공급하는 수준을 넘어 탱크 설계, 냉각유 관리, 제어 시스템까지 직접 설계·통합하는 것이 강점이다.
우리가 채택한 '1상(싱글페이즈)' 구조는 냉매가 끓거나 증발하지 않아 시스템이 단순하고 안정적이다. 유지보수가 쉽고, 기존 데이터센터 인프라에도 손쉽게 적용할 수 있어 새로운 설비로 전면 교체할 필요가 없다. 또 GRC가 운영하는 '일렉트로세이프' 인증 프로그램을 통해 검증된 냉각유를 사용해 절연성과 안전성을 확보했다. 이런 점이 GRC가 장비 신뢰성 면에서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다."
—실제로 GRC 솔루션을 도입한 고객사에서는 어떤 성과가 있었나.
"미국 공군 데이터센터를 비롯해 여러 정부 기관과 대형 클라우드 기업들이 GRC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고객들은 냉각 효율뿐 아니라 유지보수비 절감, 장비 안정성, 공간 활용도 측면에서도 뚜렷한 차이를 체감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공기를 식히는 기존 팬 방식은 소음과 진동, 필터 관리 등 부가 비용이 적지 않지만, GRC의 시스템은 팬이 필요 없고 액체의 열전도율이 높아 훨씬 조용하고 효율적이다. 냉각유는 절연성이 높아 장비 손상 우려가 없고, 교체 주기가 평균 8~10년에 달한다. 이러한 특성 덕분에 고객들은 데이터센터의 전력 효율과 운영 안정성을 동시에 개선하고 있다. 일부 클라우드 기업은 동일 면적에서 더 많은 AI 서버를 운용할 수 있게 됐다."
—최근 한국 기업들과의 협력이 활발하다. 어떤 형태로 진행되고 있나.
"LG전자, SK엔무브와 협력해 액침 냉각 통합 솔루션을 실증하고 있다. LG는 냉각 장비와 제어 기술, SK엔무브는 냉각유, GRC는 탱크와 시스템 설계를 맡고 있다. 세 회사가 각자의 전문 영역을 결합해, 처음부터 완벽히 호환되는 통합형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목표다.
한국은 데이터센터 안전 기준이 매우 엄격한 시장이다. 이에 GRC는 현대오일뱅크, 에쓰오일(S-Oil)과는 차세대 냉각유를 공동 개발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를 통해 한국 시장의 특수한 환경에 적합한 냉각유를 만들고, 향후 글로벌 시장에도 확대 적용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