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LoL)' e스포츠 최고의 무대 '2025 월드 챔피언십(롤드컵)' 결승전이 오는 9일 중국 청두에서 열린다. LCK(한국리그) 소속 두 팀, T1과 KT 롤스터가 맞붙으면서 이미 한국의 4연속 우승은 확정됐다. 하지만 '왕조의 완성'을 앞둔 T1과 창단 13년 만에 '첫 우승'을 노리는 KT가 맞붙는 만큼, 이번 결승은 단순한 '내전'을 넘어 e스포츠 역사에 남을 통신사 대전으로 평가된다.
8일 해외 주요 베팅업체에 따르면, 지난 7일 기준 T1의 우승 배당은 1.540, KT는 2.490으로 나타났다. 단순 수치로 환산하면 T1의 승률은 약 62%, KT는 38%로 해석된다. T1의 경험과 조직력을 높게 평가하면서도, KT가 최고 우승 후보였던 젠지를 꺾고 결승에 오르며 보여준 경기력을 감안하면 "이변이 불가능하지 않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번 결승은 여러 의미에서 역사적인 기록을 남긴다. T1과 KT가 롤드컵 결승에서 맞붙는 것은 처음이자, 통신사 산하 두 구단이 e스포츠 세계 무대에서 우승 트로피를 두고 경쟁하는 것도 사상 최초다. 양 팀이 LoL 공식 결승전에서 만나는 것은 2017년 LCK 스프링 이후 8년 만이며, KT는 2018년 LCK 스프링 플레이오프 이후 이어진 T1 상대 다전제 연패를 끊고 7년 만의 승리를 노린다. '스타크래프트 프로리그' 시절부터 이어진 20년 라이벌 구도가 다시 재현된 셈이다.
T1은 이번 대회에서도 위기 속 생존력을 증명했다. LCK 플레이오프 패자조에서 4번 시드로 간신히 월즈 진출권을 얻었지만, 이후 단 한 번의 탈락 없이 결승까지 올랐다. 스위스 스테이지(조별 예선 리그 방식) 초반 1승 2패로 흔들렸던 T1은 이후 연승 행진으로 8강행 막차를 탔고, 녹아웃 스테이지에서는 중국 LPL 강호 애니원즈 레전드(AL)와 톱 e스포츠(TES)를 잇달아 제압했다. 특히 TES전 3대0 완승은 "결정적 순간, 가장 강한 팀"이라는 T1의 정체성을 다시 입증한 경기로 꼽힌다.
T1의 미드라이너(중앙 공격 포지션) '페이커' 이상혁은 올해로 10번째 월즈 무대에 올랐다. 이번 우승 시 2013년 데뷔 이후 통산 여섯 번째, 사상 최초의 3연속 우승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우게 된다. 페이커와 '오너' 문현준, '구마유시' 이민형, '케리아' 류민석은 3년 연속 같은 멤버로 결승 무대를 밟았다. 베테랑과 신예가 완벽히 공존하는 팀이라는 점은 T1의 강점으로 꼽힌다.
T1의 상승 곡선은 흔들림이 없다. 8강에서 AL을 풀세트 끝에 잡아내며 체력을 쏟아부은 뒤에도, 4강 TES전에서는 오히려 경기력을 끌어올렸다. TES가 시비르·코르키 조합으로 초반 변수를 노렸지만, T1은 구마유시·케리아의 라인전(초반 라인 싸움) 집중과 오브젝트(드래곤·타워 등 주요 목표물) 선점으로 완전히 제압했다. 위기마다 팀의 무게중심이 되는 것은 여전히 페이커다. 국제 무대 10년 차에도 그는 라인전 압박과 시야 장악, 운영 판단에서 상대를 압도하며 '클래스는 여전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반면 KT는 올해 가장 극적인 서사를 썼다. 2012년 창단 이후 13년 만의 첫 결승이며, 팀의 상징이었던 '8강 징크스'를 올해 완전히 끊었다. 스위스 스테이지에서 3전 전승으로 가장 먼저 8강에 오른 뒤, 대만 CTBC 플라잉 오이스터를 3대0으로 완파했다. 그리고 4강에서는 이번 대회 최고 우승 후보이자 글로벌 파워랭킹 1위였던 젠지 e스포츠를 3대1로 제압하며 충격을 안겼다. 젠지는 올해 LCK·MSI·EWC 3관왕을 차지하며 사실상 세계 최강으로 평가받던 팀이었다.
KT는 1세트 초반 불리한 흐름에서도 중후반 한타(팀 간 전원 교전)를 완벽하게 설계해 역전승을 만들었고, 3·4세트에서는 주도권을 단 한 번도 내주지 않았다. '비디디' 곽보성의 라이즈·아지르 플레이와 '커즈' 문우찬의 오브젝트 컨트롤이 맞물리며 젠지를 압도했다. 젠지의 단단한 조합을 공략한 KT의 교전 설계는 "이변이 아닌 실력의 승리"로 평가 받았다. 그 결과 KT는 이번 대회 참가팀 중 세트 승률 90.9%를 기록하며 '가장 완성도 높은 언더독'으로 꼽히고 있다.
팀의 중심에는 비디디가 있다. 2016년 데뷔 후 단 한 번도 국제대회 우승이 없던 그는 올해 "꿈은 언젠가 이루어진다"는 자신의 말을 현실로 바꾸고 있다. 젠지전에서 보여준 주도권 교체와 후반 캐리력은 그의 커리어를 상징하는 장면으로 남았다. "페이커를 존경한다"고 밝혀온 그는 이제 월즈 결승 무대에서 우상과 마주한다.
결승의 핵심 변수는 바텀(하단 공격 라인)이다. T1은 '구마유시–케리아' 듀오의 라인전 우위와 오브젝트 장악력을 바탕으로 경기 흐름을 설계하고, KT는 매 경기 밴픽(챔피언 선택·제한 전략)을 바꾸며 변칙적인 바텀 조합으로 초반 주도권을 노린다. 젠지전에서 케이틀린–니코, 칼리스타–레나타를 앞세워 하단 전투에서 압도한 KT의 전술적 유연성은 T1에게도 부담이다. e스포츠 업계 관계자는 "KT의 기세와 T1의 노련함이 정면으로 부딪히는 구도"라며 "T1이 완성도에서 앞서지만, KT의 변칙성과 흐름 전환 능력도 만만치 않아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결승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