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닝의 디스플레이 유리기판 제품 이미지./코닝

장기 침체를 겪었던 디스플레이 유리기판 시장이 반등하며 사상 최대 분기 매출을 달성했다. 미국 코닝을 비롯해 일본 아사히글라스(AGC)·니폰일렉트릭글래스(NEG) 등의 업체가 TV 시장 침체에도 생산량을 조절하며 가격 인상 정책을 유지한 데 따른 결과다. 유리기판 가격 변화는 중국 기업의 저가 공세와 업황 침체를 겪고 있는 국내 디스플레이 패널 제조 업체에도 영향을 미친다.

7일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의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3분기 세계 디스플레이 유리기판 시장 매출은 2700억엔(약 2조5686억원)으로 집계됐다. 직전 분기 대비 5%, 작년 같은 기간보다 14% 상승하며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디스플레이 유리기판은 통상 일본 엔화를 기준으로 거래되고 있다.

옴디아는 이번 디스플레이 유리기판 매출 상승이 주요 생산 기업의 전략 변화에 따른 것이라고 분석했다. 디스플레이 유리기판 시장은 지난 2011년 액정표시장치(LCD) TV 패널의 대규모 감산에 따라 불황을 겪었다. 이에 주요 디스플레이 유리기판 업체들은 2012년부터 '치킨 게임'에 돌입했다. 시장 점유율을 지키려 디스플레이 패널 기업에 더 낮은 가격을 제시하는 기조가 확산한 것이다. 디스플레이 유리기판 제조업체 사이 치킨 게임은 2022년까지 이어지면서 약 10년간 시장이 침체기를 보였다.

가격 경쟁에 따른 디스플레이 유리기판 공급 과잉은 2023년부터 개선되기 시작했다. 시장 점유율을 방어하는 기조에서 벗어나 출하량에 맞춰 생산량을 조절하면서 가격 안정화를 꾀한 것이다. 시장 점유율 1위 기업 코닝은 이에 2023년 3분기 모든 제품의 가격을 일괄 20% 인상한 바 있다. AGC·NEG도 작년부터 가격 상승에 본격적으로 합류하면서 디스플레이 유리기판 가격이 최근 2년 사이 25% 이상 올랐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 등에 따르면 코닝·AGC·NEG의 면적 기준 세계 디스플레이 유리기판 시장 합산 점유율은 80% 이상이다.

그래픽=손민균

생산량 조절에 따른 가격 인상에 힘입어 코닝은 올 3분기 사상 최대 매출을 달성했다. 이 기간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4% 오른 42억7000만달러(약 6조1158억원)을 기록했다. 영업이익률도 이 기간 1.3%포인트(p) 증가한 19.6%를 달성했다. 주당순이익(EPS)은 24% 증가한 0.67달러로 나타났다.

AGC 역시 올 3분기 누적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소폭(1.4%) 감소한 1조5342억엔(약 14조6003억원)을 기록했으나, 누적 영업이익은 0.9% 증가한 948억엔(약 9022억원)을 올려 수익성이 개선됐다.

타다시 우노 옴디아 리서치 매니저는 "주요 유리기판 제조 기업들이 현재 수익 창출에 집중하는 건 신사업 추진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며 "이들 기업은 유리관통전극(TGV)·지지기판(semiconductor support glass)·하드디스크기판과 같은 반도체 분야에서 쓰일 수 있는 새로운 유리 기술을 개발 중"이라고 분석했다.

패널의 주요 원자재인 유리기판의 가격 변화는 LG디스플레이·삼성디스플레이는 물론 중국 CSOT·BOE 등 디스플레이 업체 수익성에도 영향을 미친다. 디스플레이업계에 따르면 NEG는 LG디스플레이에, AGC는 CSOT에, 코닝은 삼성전자·BOE에 주로 제품을 공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디스플레이 유리기판 가격 변화에 따른 영향은 우리나라보다 중국 업체에 더 클 것으로 보인다. 주로 TV에 사용되는 대형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보다 LCD 패널에서 요구되는 유리기판의 개수가 더 많기 때문이다. 삼성디스플레이는 2020년에, LG디스플레이는 올해 4월에 대형 LCD 패널 제작을 전면 철수하고, OLED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시장조사업체 연구원은 "국내 디스플레이 기업이 주력하고 있는 OLED 패널은 플라스틱 기반 제품도 많아 기존 LCD보다 유리기판 의존도가 낮다"며 "디스플레이 유리기판 가격 변화에는 LCD 패널 중심의 중국 업체가 더 큰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중국 내에서도 8세대 이상 디스플레이 유리기판 제조에 대형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만큼 수입 의존도는 3~7년 사이 눈에 띄게 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