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TV 시장의 침체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올해 3분기 TV 출하량이 사상 처음으로 5000만대 밑으로 떨어졌다. 스마트폰 등 모바일 기기가 TV를 대체하면서 교체 주기가 길어진 데다 최대 시장인 중국의 가전 구매 보조금 정책 효과마저 사라지면서 TV 수요가 좀처럼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 中 보조금 효과 끝나자 수요 급랭… '대형화'도 주춤
5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3분기 전 세계 TV 출하량은 4975만대로 전년 동기 대비 4.9% 감소했다. 블랙프라이데이와 크리스마스 등 연말 성수기를 앞둔 올 4분기 출하량은 5321만대로 3분기 대비 소폭 반등이 예상되지만, 연간 기준으로는 역성장을 피하기가 어려울 전망이다. 트렌드포스는 올해 전체 TV 출하량이 약 1억9600만대로, 작년보다 1.2% 감소할 것으로 내다봤다.
지지부진하던 TV 수요가 3분기 들어 한풀 더 꺾인 건 작년부터 시장을 견인해 온 중국 TV 수요가 둔화해서다. 중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에너지 효율이 높은 가전제품 소비에 보조금을 지급하면서 뛰어올랐던 TV 구매 열기가 식기 시작한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옴디아의 박진한 이사는 "중국 정부의 재정 지원이 올해 말을 기점으로 마감되는 분위기로, 4분기에는 중국 TV 업체들의 패널 수요가 전년 대비 200만대 정도 줄고 있다"며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TV 시장이 정체돼 대수 기준으로 2% 역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고 말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TV 시장을 지탱했던 '대형화' 흐름도 탄력이 약화했다. 올해 60인치 이상 TV 비중은 처음으로 28%를 넘어섰지만, 성장세는 둔화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공통적인 평가다. 65인치 출하량은 정체됐고, 75인치 성장률은 13%에 그쳐 지난해 절반 수준에 머물렀다. 85인치, 98인치 등 초대형 TV 역시 비슷한 흐름을 보이고 있다. 데이비드 시에 옴디아 선임연구원은 "TV 시장은 더 이상 대수 기준으로 성장하지 않고 있다"며 "소비자들은 더 큰 화면을 선택하고 있지만 대형화 추세도 과거와 같지 않다"고 말했다.
◇ 하이센스, 삼성 턱밑 추격… "中, 1위 수성이 목표"
이처럼 시장 전체가 위축되는 상황에서 업체별 희비가 엇갈렸다. 3분기 TV 브랜드 점유율(출하량 기준)은 삼성전자가 18.3%로 1위를 기록했고, 중국 하이센스가 15.4%로 2위에 올라섰다. 중국 TCL이 3위(14.3%), LG전자(9.3%)와 샤오미(7.0%)가 그 뒤를 이었다. 삼성전자는 선두를 지켰지만, 중소형 비중 축소와 중국 브랜드와의 경쟁 심화 영향으로 최근 수년간 전체 TV 출하량이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반면 중국 최대 TV 업체인 하이센스는 불황을 기회로 삼아 추격에 나섰다. 하이센스는 하반기 들어 국내외 시장에서 공격적인 가격 인하에 나서며 3분기 출하량을 전 분기 대비 9.7% 증가한 766만대까지 끌어올렸다. 시장 점유율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고, 삼성전자와의 격차도 불과 2.9%(P)로 좁혀졌다. 정윤성 옴디아 상무는 "중국 TV 업체들 사이에선 '적성'(赤星·삼성을 끌어내리겠다는 의미)이라는 말이 공공연하게 돌고 있다"며 "가격만 맞춰주면 한국 업체들보다 더 많은 물량을 가져가겠다고 패널업체들에 말할 정도로, 점유율 확대 의지가 강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TV 업체들은 '내년 월드컵 때는 우리가 1위가 될 것'이라고 공언하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고 덧붙였다.
◇ 中, 미니LED TV 투자 가속… 韓 주도 OLED TV는 정체
시장 선두에 오르기 위해 중국 업체들은 '프리미엄 LCD(액정표시장치)'로 불리는 미니LED TV 투자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이센스와 TCL을 중심으로 미니LED 백라이트를 적용한 고급형 제품 라인업을 확대하며 기술 경쟁력 강화에 나선 것이다. 박 이사는 "미니LED TV는 올해에만 전년 대비 약 600만대가 늘어 약 1700만대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며 "중국은 하이엔드뿐 아니라 중저가 라인업까지 미니LED 탑재를 확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한국이 주도해 온 또 다른 프리미엄 축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시장은 성장세가 꺾이고 있다. 박 이사는 "OLED TV 시장은 삼성전자와 LG전자 외에는 신규 참여자가 없어 성장률이 기존 전망보다 크게 낮아지고 있다"며 "장기적으로도 2032년 연간 출하량이 800만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