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정문 전경./뉴스1

서울대 재학생 대다수가 학업 과정에서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내 대학 교육 전반에 AI가 빠르게 확산하고 있지만, 아직 상당수 대학은 구체적인 활용 기준이나 대응 체계를 마련하지 못한 상태다.

3일 서울대 자체 조사 결과에 따르면, 재학생의 97% 이상이 학업 중 AI를 사용하고 있다. 리포트 작성, 논문 초안 구성, 발표문 작성 등 학습 전 단계에서 AI 활용이 일상화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대는 이러한 흐름을 반영해 내년 봄학기부터 전 구성원이 사용할 수 있는 AI 시스템 구축에 나서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서울대만의 현상이 아니다. 전국적으로도 대학가의 AI 의존도가 급속히 높아지고 있으며, 학생들은 이미 AI를 학습 필수 도구로 받아들이고 있다. 지난해 말 구직 플랫폼 '알바천국'이 국내 대학생 37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78%가 학업에 AI를 사용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사용 목적은 과제·리포트 작성이 88.6%로 가장 많았다.

그러나 제도적 대응은 뒤처져 있다. 지난해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조사에 따르면 전국 대학의 77.1%가 생성형 AI 관련 가이드라인을 마련하지 못했다. 131개 대학 총장 중 "AI 정책을 채택했다"고 답한 비율은 22.9%에 불과했다. 교수 개인 재량에 따라 사용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많아, 같은 학과 내에서도 허용 기준이 달라지는 실정이다.

일부 대학은 대응에 나서고 있지만 전면적인 변화로 보기엔 부족하다. 국민대는 '생성형 AI 활용 가이드라인'과 'AI 윤리강령'을 제정해 학생과 교원을 대상으로 AI 활용 원칙을 제시했다. 고려대는 생성형 AI 가이드라인을 발표해 AI 사용 시 출처 표시를 권장하고 있다. 중앙대와 성균관대도 유사한 지침을 마련해 단과대학별로 시범 적용 중이다. 반면, 대다수 대학은 '금지'와 '허용' 사이의 혼란 속에서 교수 개별 판단에 의존하고 있다.

올해 8월 서울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에서 열린 제미나이 대학생 앰배서더 발대식 참석자들이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구글코리아 제공

대학가의 AI 확산 속도는 더욱 빨라지는 상황이다. 오픈AI는 지난해 대학 전용 서비스 '챗GPT 에듀'를 공개했고, 구글은 한국을 포함한 전 세계 대학생에게 월 2만9000원 상당의 '구글 AI 프로' 요금제를 1년 간 무료로 제공 중이다. 빅테크 기업들이 캠퍼스 단위로 AI 접근성을 확대하면서, 대학 교육의 디지털 전환이 사실상 불가피해졌다.

이에 AI 의존이 학생들의 사고력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과제 작성에서 사고 과정을 AI가 대체하면서 학생들의 비판적 사고력과 창의성이 약화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MIT 연구진은 학생들이 에세이를 작성할 때 AI를 사용할 경우 뇌의 연결성이 감소하고, 스스로 쓴 글보다 내용을 기억하지 못하는 경향이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일부 해외 대학은 평가 방식 개편에도 나서고 있다. 캐나다는 온라인 시험을 폐지하고 수기·구술시험을 확대하는 반면, 호주 시드니대는 AI 활용 과제와 대면 시험을 병행하는 '2단계 평가 시스템'을 도입했다. 그러나 이러한 제도적 대응에도 불구하고, 부정행위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다. 가디언 보도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지난해 AI 활용 부정행위 적발 건수가 약 7000건에 달했지만, AI 탐지 정확도는 6% 수준에 그쳤다.

교육 전문가들은 이제 'AI를 쓸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쓸 것인가'의 문제라고 조언한다. AI는 능력 보완 도구로만 활용돼야 하며, 목적과 출처를 명시하는 제도적 기준이 필요하고, AI 윤리 교양과목을 통해 학생들의 리터러시를 높이는 방향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박남기 전 광주교육대 총장은 "AI를 조교처럼 활용하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과제를 대신시키는 등 '학습 외주화'로 사용하면 사고력과 창의성이 발달하지 않는다"며 "국내 대학들의 대응은 전반적으로 늦은 편이며, 단순히 지침을 만드는 데 그칠 게 아니라 이를 교수별 수업 운영과 학생 대상 윤리 교육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