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머스 메이슨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장이 3일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서밋 2025'에서 발언하고 있다. /심민관 기자

"AI는 새로운 혁명이 아니라, 지난 80년간 이어진 과학 혁신의 논리적 확장이다."

토머스 메이슨 미국 로스앨러모스 국립연구소장이 3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SK AI 서밋 2025'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AI가 단순히 산업 자동화의 도구에 그치지 않고, 과학 연구의 생산성을 두 배로 높일 수 있는 '가속 엔진'이 될 것"이라며 "그 혁신이 경제 전체를 움직이는 피드백 메커니즘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했다.

로스앨러모스 연구소(이하 로스앨러모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개발을 주도한 곳으로, 이후 80년간 미국 과학기술의 산실로 평가받아왔다. 메이슨 소장은 이날 강연에서 "1940년대 오펜하이머 시절부터 우리는 컴퓨팅을 연구개발의 핵심 도구로 써왔다"며 "1945년에는 손으로 계산하던 여성 과학자들이 '인간 컴퓨터' 역할을 했고, 1976년에는 세계 최초로 크레이(Cray) 슈퍼컴퓨터를 도입해 과학 컴퓨팅의 새 장을 열었다"고 회고했다.

그는 이어 "당시 IBM이 '전 세계 컴퓨터 수요는 다섯 대면 충분하다'고 추산했을 정도로 시장이 작았지만, 로스앨러모스의 수요가 그 산업을 성장시켰다"며 "오늘날 AI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고 했다. 과학적 필요에서 시작된 기술이 산업을 키우고, 다시 산업이 과학 발전을 촉진하는 선순환 구조를 강조한 것이다.

냉전 이후 핵실험 중단으로 물리적 실험이 어려워지자, 로스앨러모스는 초고성능 컴퓨팅(HPC) 기반의 시뮬레이션 연구로 방향을 틀었다. 메이슨 소장은 "당시 구축한 슈퍼컴퓨터 '로드러너(Roadrunner)'는 세계 최초로 페타플롭스(초당 1000조회 연산) 시대를 연 기계였다"며 "최근에는 '크로스로드(Crossroads)'와 '베나도(Venado)' 같은 차세대 슈퍼컴퓨터를 도입해 계산 능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연설에서는 SK하이닉스와의 협력이 여러 차례 언급됐다. 그는 "최근 설치한 크로스로드 슈퍼컴퓨터는 SK하이닉스의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기반으로 한다"며 "중앙처리장치(CPU)보다 훨씬 큰 성능 향상을 가져왔고, AI와 물리 시뮬레이션을 연결하는 새로운 연구를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SK하이닉스와의 협력은 고성능 컴퓨팅의 한계를 넓히는 중요한 발걸음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로스앨러모스는 현재 엔비디아와도 손잡고 핵융합 연구에 AI를 적용 중이다. 메이슨 소장은 "국립점화시설(NIF)에서의 퓨전 실험은 한 번 촬영에 100만달러(약 14억원)가 들 만큼 비싸고 복잡하다"며 "AI 에이전틱(Agentic) 시스템이 실험 설계와 최적화를 돕는다면 훨씬 더 빠르고 효율적인 결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는 "AI는 기존 시뮬레이션을 대체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험과 계산 자원을 지능적으로 배분해 생산성을 극대화하는 보조 엔진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오픈AI와의 협력도 시작했다. 그는 "오픈AI가 자사의 고급 추론 모델 가중치를 암호화된 형태로 우리 연구소에 전달했다"며 "이 모델을 연구용 슈퍼컴퓨터 '베나도'에 설치해, 대규모언어모델(LLM)이 과학 연구를 얼마나 가속할 수 있는지 실험 중"이라고 밝혔다. 메이슨 소장은 "이처럼 폐쇄망(air-gapped) 환경에서만 연구가 가능했기 때문에, 오픈AI가 자사 핵심 자산을 공유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지난 80년간의 실험 데이터와 재료 물성 데이터는 인류 과학의 거대한 자산"이라며 "이 방대한 데이터를 AI가 학습하면 연구 효율이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어 "AI·컴퓨팅·메모리 기술의 교차점에서 새로운 산업이 열리고 있다"며 "에너지·데이터센터 인프라·HBM 등 핵심 요소를 갖춘 SK그룹이 이 흐름의 중요한 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메이슨 소장은 "AI가 과학의 속도를 바꾸면 경제 전체의 혁신도 가속할 것"이라며 "로스앨러모스는 앞으로도 산업계와 협력해 인류가 직면한 가장 어려운 과학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AI는 단순한 기술이 아니라, 과학 그 자체를 다시 설계하는 힘"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