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2위 반도체 장비 회사 미국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AMAT)가 전 세계 직원 1400여명을 해고하기로 했다. 미 정부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로 최대 시장인 중국발 매출 타격이 현실화하자, 비용 절감을 위해 인력 감축에 나선 것이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는 23일(현지시각) 미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서류를 통해 전체 인력의 약 4%를 줄이는 구조조정에 돌입한다고 밝혔다. 지난 7월 말 기준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의 전체 직원은 3만6100명으로, 이 중 1400여명이 해고 대상이다. 감원 직원들에게는 전날부터 통보가 시작됐다. 회사 측은 "이번 구조조정으로 1억6000만~1억8000만달러(약 2300억~2600억원)의 비용이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4분기 실적에 대부분 반영될 예정"이라고 했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는 이번 감원 배경으로 '자동화'와 '지정학적 변화'를 꼽았다. 회사는 서한에서 "자동화, 디지털화, 지정학적 변화로 인해 필요한 인력과 기술 수준이 달라지고 있다"며 "더 경쟁력 있고 생산적인 조직을 갖추기 위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게리 디커슨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최고경영자(CEO)도 직원들에게 "회사는 향후 몇 년간 다가올 큰 성장에 대비하고 있다"며, "일하는 방식을 혁신하고 의사결정을 단순화해 더 신속하게 움직이며, 가장 중요한 일에 집중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했다.
업계에서는 미국 정부의 강력한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가 이번 감원의 결정적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은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전체 매출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최대 시장인데, 최근 들어 규제 여파로 사업 부진이 가시화하고 있다. 실제로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는 지난 8월 3분기 실적 발표에서 중국 고객사 수요 둔화와 수출 승인 지연을 이유로 암울한 4분기 전망을 내놨다. 회사가 제시한 4분기 매출 전망치는 67억달러(약 9조6000억원)로 시장 컨센서스(73억2000만달러·약 10조5000억원)를 크게 밑돌았고, 주당순이익(EPS) 전망치도 2.11달러로 예상치(2.38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9월 말 미 상무부 산업안보국(BIS)이 발표한 추가 규제가 결정타가 됐다. 이 조치는 블랙리스트에 오른 중국 기업이 50% 이상 지분을 보유한 계열사를 통해 미국 기술에 우회 접근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다.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는 이달 초 "미 정부의 추가 규제로 인해 2026 회계연도에 약 6억달러(약 8600억원)의 매출 손실이 예상되며, 올 4분기에도 1억1000만달러(약 1600억원)의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중국발 리스크와 수요 둔화는 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만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3위 미국 반도체 장비 회사 램리서치도 지난 7월 "중국 고객사들이 한동안 이어진 과도한 지출 이후 구매를 줄이고 있어, 4분기 매출이 둔화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시장에서는 이에 따라 램리서치의 연간 매출이 약 3억달러 줄어들 것으로 보고 있다. 또 다른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 KLA 역시 중국 매출 비중이 작년 회계연도 4분기 기준 44%에서 올해 30%로 급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