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와 SK하이닉스 이천 M16 공장 전경. /각사 제공

인공지능(AI) 인프라에 필요한 메모리 반도체 수요가 급증하고 오픈AI·제미나이 등 AI 에이전트가 생성하는 데이터가 폭증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뿐 아니라 범용 D램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이에 일부 해외 대형 전자·서버 업체들이 메모리 재고를 비축하기 위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에 장기 공급 계약을 요청하는 등 '사재기'에 나선 상황이다.

23일 업계에 따르면 D램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로 미국, 중국 등지의 일부 전자·IT 기업들과 데이터 센터 기업들이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2~3년 단위의 중장기 D램 공급 계약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통상 전자·IT 제조사나 서버 업체들은 재고 관리의 유연성을 위해 짧게는 분기에서 1년 단위로 D램 공급 계약을 진행하지만, 범용 D램 공급 부족이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유력해지면서 재고를 초과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되고 있다.

세계 범용 D램 시장의 70% 이상을 장악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D램 설비 투자는 현재 HBM에 집중된 상황이다. 공급 측면에서 범용 D램의 생산능력이 갈수록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한 개의 D램 웨이퍼를 기준으로 범용 D램을 100개 만들 수 있다고 가정하면, HBM의 경우 그 절반 수준"이라며 "그만큼 D램 생산라인에서 HBM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 범용 D램 출하량이 제한될 가능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두 기업이 수익성이 더 높은 HBM 비중을 높이면서 자연스럽게 범용 D램 메모리 생산 확대는 당분간 어렵다는 분석도 나온다. 류형근 대신증권 연구원은 "D램 공급 부족에 대한 우려가 수요자들의 선제적 구매 심리를 자극하고 있으며, 일부 서버 고객들은 2027년 이후 물량까지 논의 중"이라며 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씨티그룹도 같은 이유로 "향후 1~2년 내 D램 공급 증가가 어려워 심각한 공급 부족이 불가피하다"고 진단했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D램 범용 제품인 DDR4 8Gb(기가비트)의 현물 가격은 전일 7.3달러를 기록했다. D램 현물 가격이 7달러를 넘어선 것은 메모리 슈퍼 사이클이 막을 내리던 2018년 10월(7.042달러) 이후 약 7년 만이다. 올 4월 가격이 2달러였던 점을 감안하면 불과 6개월여 만에 265% 급등했다.

해외 투자은행들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이 '10년 만의 호황'에 진입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올해 4분기 D램 고정거래가격 상승률 전망치를 기존 5%(전 분기 대비)에서 17%로 높여 잡았다. UBS는 "AI 서버 수요 급증에 힘입어 2026년 메모리 시장이 10년에 한 번 올 호황을 맞이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메모리 가격 상승이 반도체 업계의 실적 개선으로 직결되는 만큼 삼성전자, SK하이닉스의 실적도 고공행진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내년 삼성전자, SK하이닉스 합산 영업이익은 전년 대비 64% 증가한 128조원으로 추정된다"며 "AI 데이터센터 수요 증가와 일반 서버 교체 수요가 동시에 발생하면서 향후 메모리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 장기화가 불가피하고 메모리 공급 증가가 사실상 어려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