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의 '소라 2'로 제작한 일본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 GIF. /유튜브 캡쳐

최근 생성형 인공지능(AI) 모델이 만화·애니메이션 저작물을 무단 활용하면서, 이에 대한 전 세계적인 반발이 확산하고 있다. 일본은 정부가 나서 오픈AI에 저작권 표절을 중단하라는 요청서를 보내는가 하면, 할리우드 기업들도 AI 기업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고 있다.

22일 일본 IT매체 IT미디어에 따르면 최근 일본 내각부 지식재산전략본부는 오픈AI의 동영상 생성형 AI 모델 '소라 2'가 일본 지식재산권(IP)을 무단으로 활용하고 있다며, 도용 행위를 즉각 중단하라는 공식 요청서를 전달했다고 밝혔다. 이 요청은 일본의 지식재산 및 AI 전략을 총괄하는 기우치 미노루 국무상이 지난주 기자회견에서 밝힌 내용이다. 일본 정부가 외국 AI 기업을 상대로 직접 저작권 보호를 요구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반응이다.

기우치 국무상은 "미국 기업인 오픈AI가 일본의 IP를 침해하지 말라는 공식 요청서를 온라인으로 전달했다"며 "만화와 애니메이션은 일본이 세계에 자랑하는 문화 자산이며, 침해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고 했다. 다이라 마사아키 디지털상도 "오픈AI가 자발적으로 시정 조치를 하길 바라며 불응 시 'AI 진흥법'을 근거로 대응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 법은 AI 산업 진흥을 목표로 하지만 동시에 부적절한 AI 활용 및 저작권 침해에 관해 대응 근거를 포함하고 있다. 오픈AI는 일본 정부의 공식 요청에 대해 아직 답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30일 출시된 오픈AI의 소라 2는 20초 길이의 1080p 동영상을 음성과 함께 생성 및 공유할 수 있는 앱이다. 이 앱은 출시 직후 전 세계적으로 화제를 모았다. 테크크런치에 따르면 소라 모바일 앱은 출시 첫 주 만에 iOS에서 62만7000건의 다운로드를 기록했다. 그러나 이후 '원피스' '귀멸의 칼날' '드래곤볼' '나루토' 등 저작권이 있는 일본 콘텐츠 캐릭터를 그대로 묘사한 영상이 소셜미디어(SNS)에 확산하며 논란이 불거졌다. 이 영상들은 단순히 캐릭터의 외형만 흉내 낸 수준을 넘어 원작의 화풍과 움직임은 물론 실제 성우의 목소리까지 거의 완벽히 재현했다.

특히 일본 내 논란이 된 건 소라 2의 차별적인 '옵트아웃' 정책이다. 이 정책은 창작자나 스튜디오가 요청할 경우 자사 콘텐츠를 AI 학습 및 생성에 사용하지 않도록 제외할 수 있는 제도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오픈AI는 소라 2 출시 일주일 전 일부 스튜디오와 에이전시를 상대로 옵트아웃 정책을 안내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일본 기업이 포함됐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IT미디어는 소라 2에 디즈니나 마블 관련 캐릭터를 입력하면 경고 메시지와 함께 영상 생성이 거부되지만, 일본 IP 캐릭터는 아무런 제재 없이 영상으로 만들어졌다고 전했다. 이에 오픈AI가 저작권에 '이중잣대'를 두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러스트=챗GPT

미국에서는 지난달 월트디즈니, 유니버설스튜디오,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 등 미국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이 중국 AI 기업 '미니맥스'를 상대로 IP 침해 소송을 제기했다. 미니맥스는 동영상 및 이미지 편집기 '하이뤄 AI'와 다양한 캐릭터와 대화할 수 있는 챗봇 '토키' 등을 개발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하이뤄 AI가 '스파이더맨' '슈퍼맨' '슈렉' '버즈 라이트이어' 등 자신들이 보유한 캐릭터를 활용해 이미지와 영상을 제공하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할리우드 스튜디오들은 미니맥스를 향해 "미국 저작권법을 완전히 무시하고 가치 있는 저작권 캐릭터들을 마치 자사 소유인 것처럼 이용한다"며 "이들은 주머니 속의 할리우드 스튜디오로 기업을 홍보했는데 할리우드 스튜디오의 IP를 도용해 사업을 일군 미니맥스가 스스로 붙인 뻔뻔한 별칭"이라고 비판했다.

디즈니는 지난달 말 또 다른 미국 AI 스타트업 '캐릭터닷AI'에도 자사 캐릭터 무단 사용 중단을 요구했다. 디즈니는 서한을 통해 캐릭터닷AI가 자사 캐릭터를 무단 사용, 재정적 피해뿐 아니라 브랜드 이미지를 훼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서한에는 아동·청소년 보호 단체와 공동 조사 결과를 인용했으며, 조사에서는 캐릭터닷AI 챗봇이 아동 성 착취, 정서적 조종, 중독 유발 등 심각한 문제를 보였다고 밝혔다.

최병호 고려대 인공지능연구소 교수는 "현재 빅테크 기업들은 모델 성능 향상을 위해 저작권이 있는 고품질 데이터를 학습에서 배제하기가 어렵다"며 "성능이 곧 경쟁력인 상황이라 저작권 침해 문제를 인지하고도 개선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저작권자 입장에서도 거대 AI 기업을 상대로 대응하기가 쉽지 않아, 법적 조치가 이뤄지더라도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단기간 내 해결은 어려우며, 사회적 합의나 공공·비영리 영역의 압박이 커져야 협상 테이블이 마련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