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TSMC가 차세대 반도체 공정인 2나노미터(nm) 이하 진입을 위해 최첨단 극자외선(EUV) 노광 장비에 대대적인 투자를 진행 중인 가운데 미국 현지 양산 안정화를 위해 사전정지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두 회사 모두 트럼프 행정부의 '메이드 인 USA' 기조에 맞추기 위해 미국 공장에 최첨단 장비 반입을 대외적으로 어필하는 모양새다.
21일 업계에 따르면 TSMC는 최근 이례적으로 미 애리조나주에 위치한 피닉스 팹(Fab)21 공장의 내부 영상을 공개했다. TSMC가 미국 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EUV 장비 생산라인의 내부 영상을 공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업계에서는 최근 인텔의 18A(2나노급) 공정 상용화 발표, 삼성전자의 적극적인 차세대 EUV 장비 투자에 대한 대응으로 해석하고 있다.
TSMC가 공개한 피닉스 공장 내부 영상에는 수백 개의 첨단 반도체 제조 설비가 미국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 기업)가 주문한 칩을 위탁 생산하는 장면이 담겨있다. 여기에는 엔비디아의 최신 그래픽처리장치(GPU)인 '블랙웰 B300' 등이 포함됐다. 또 가장 복잡한 칩 생산에 활용되는 네덜란드 ASML의 트윈스캔 NXE EUV 노광 장비를 운영하는 모습도 담겼다.
TSMC는 해당 영상에서 미국 현지 공장에서 3나노대 칩 생산을 위한 진행 상황을 명확하게 드러냈다. 영상에서 TSMC가 운용 중인 장비는 ASML의 첨단 EUV 장비인 '트위스캔 NXE:3600D'로 추정되며, 해당 장비를 노출했다는 점은 TSMC가 미국에서 최첨단 공정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는 점을 보여준 것으로 해석된다.
TSMC 애리조나 팹에서는 현재 4나노급 공정이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으며, 3나노 이하 첨단 공정은 2027년 이후에나 가능하고 2나노는 2028년쯤으로 예상됐다. 하지만 이번 TSMC의 영상은 미국 현지 공장에서의 첨단 칩 생산 로드맵이 앞당겨질 수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이는 최근 삼성전자, 인텔 등의 '메이드 인 USA' 투자 기조를 의식한 행보로도 읽힌다. 최근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사업부에 배정된 하이(High)NA EUV 장비 2대를 회사의 미래를 책임질 2나노 이하 초미세 공정에 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1대는 기술 개발의 심장부인 화성캠퍼스에, 나머지 1대는 북미 주요 고객사의 신규 대형 수주에 따라 미 텍사스주 테일러 공장에 배치될 전망이다.
하이NA EUV 장비는 현존하는 장비 중 가장 미세한 회로 패턴 구현이 가능하다. 기존 EUV 장비 대비 40% 향상된 광학 기술로 1.7배 더 정밀하게 회로를 형성할 수 있고, 2.9배 높은 집적도를 구현할 수 있다. 해당 장비를 아직 가동 전인 미국 테일러에 배치한다는 것은 향후 테슬라를 비롯해 AMD, 엔비디아, 퀄컴 등 대형 팹리스 고객사 확보를 염두에 둔 포석이라는 것이 업계 전문가들의 해석이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전영현 부회장이 DS(반도체)부문장으로 복귀한 이후 파운드리 사업부의 적자 규모가 부담스러웠던 삼성전자가 투자 전략을 보수적으로 운영해왔다"며 "하이NA EUV 투자는 삼성전자가 2나노 이하 미세공정에서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인 TSMC와 다시 경쟁을 펼치겠다는 포부와 자신감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인텔 역시 최근 애리조나와 오리건에서 18A(2나노급) 공정 양산을 밝힌 바 있다. 인텔은 팹52에서 신형 PC·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팬서레이크'와 '제온6+(클리어워터포레스트)'를 각각 양산 중이며 초도 물량은 올해 말 출하된다. 미국 현지에서 생산되는 반도체 중 가장 앞선 공정의 칩이다. TSMC와 삼성전자의 미국 내 2나노 양산 시점은 빨라야 2026년 말이며, 경쟁사인 AMD가 인텔 파운드리에 칩셋 발주를 타진 중이라는 소식도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