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향후 10년 안에 세계 경제를 붕괴시키거나, 우리 모두를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갈 수 있는 힘을 지니고 있다. 지금은 어느 쪽이 될지 알 수 없다."
미국 투자은행(IB) 번스타인의 스테이시 라스곤 애널리스트는 초대형 인공지능(AI) 인프라 투자 계획을 발표하면서 공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오픈AI의 행보에 대해 이같이 평가했다. 최근 오픈AI는 엔비디아, AMD, 오라클, 브로드컴, 삼성전자 등 주요 기업과 수백억달러에서 수천억달러 규모의 파트너십을 연달아 체결했는데, 서로 복잡하게 얽혀있는 거래 구조가 AI 거품을 키우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월가 일각에서는 AI 열풍의 중심에 선 오픈AI가 향후 흔들리거나 'AI 낙관론'이 수그러들 경우 AI 산업을 넘어 주식시장과 부동산, 에너지 산업 등 세계 경제까지 타격을 입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시장에서는 오픈AI의 영향력이 애플에 버금갈 정도로 커졌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블룸버그통신은 "오픈AI가 이달 초 개발자 회의에서 협력 관계를 맺은 피그마, 캔바, 익스피디아 등의 기업명을 언급할 때마다 관련 기업의 주가가 뛰었다"며 "이는 일부 애플 행사에서 나타나는 현상과 유사했으며, 오픈AI가 이제 AI 산업을 넘어 금융시장에서도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실제 오픈AI가 AI 인프라에 "수조달러(trillions)"를 투자하겠다는 목표로 엔비디아 등 빅테크 기업과 대형 파트너십을 발표할 때마다 AI·반도체 관련주가 급등하고 세계 증시가 요동쳤다.
문제는 커진 기대감 만큼 'AI 거품론'도 고개를 들고 있다. 특히 오픈AI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는 '순환 거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오픈AI는 지난달 엔비디아와 1000억달러(약 140조원) 규모의 투자 계약을 맺은 데 이어 이달 초 AMD와 그래픽처리장치(GPU) 구매 계약을 체결했는데, 두 거래 모두 AI 인프라 기업이 고객사에 투자하거나 자금을 빌려주고, 고객사는 그 돈으로 다시 인프라 기업의 제품을 구매하는 '판매자 금융(vendor financing)' 성격이 짙다는 지적을 받았다. 언뜻 보기에는 이런 거래로 기업의 매출이 늘어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자금이 관련 기업 사이에서 순환하는 '돌려막기식 투자'라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엔비디아와의 거래를 보면, 엔비디아가 오픈AI에 1000억달러를 투자하면 이 투자금의 대부분은 오픈AI가 다시 엔비디아 GPU를 구매하는데 사용될 전망이다. 이때 순환하는 자금은 양사가 다른 기업과 맺은 거래에도 사용된다. 오픈AI는 코어위브에 224억달러를 내고 AI 데이터센터를 대여하고, 코어위브의 남는 컴퓨팅 파워는 다시 엔비디아가 사들이는 순환 구조다. 이밖에 오픈AI는 미국 내 데이터센터 구축을 위해 오라클과 3000억달러 규모의 컴퓨팅 파워 공급 계약을 맺었고, 오라클은 해당 시설에 사용될 엔비디아 AI칩 구매에 수십억달러를 추가로 지출하고 있다.
오픈AI와 엔비디아가 중심이 된 순환 거래에는 양사가 개별적으로 투자·공급 관계를 맺고 있는 인텔, 마이크로소프트(MS),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이끄는 AI 기업 xAI 등도 포함돼 AI 개발사와 인프라 기업이 복잡한 형태로 긴밀히 엮이는 양상이다.
미국 투자은행 모건스탠리는 "수많은 AI 프로젝트가 순환 거래(circular financing)에 의존하고 있다"며 "인프라 공급업체가 고객사에 자금을 지원하고 수익을 공유하면서 상호 지분 보유와 집중도가 높아지고 있다"고 했다. 모건스탠리는 이런 복잡한 거래 구조가 AI 수요를 가늠하기 어렵게 만들어 AI 산업 리스크를 키운다고 지적했다. AI 수요가 실제보다 부풀려져 거품이 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토드 카스타뇨 모건스탠리 애널리스트는 "현재의 투자 사이클이 지속 가능하려면 AI가 투입된 막대한 자본을 정당화할 수 있는 지속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해야 한다"고 했다.
문제는 오픈AI가 아직 적자를 내고 있어, 회사의 가파른 성장세를 떠받치고 있는 복잡한 파트너십 생태계에 문제가 생길 경우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이다. 오픈AI의 기업가치는 5000억달러(약 700조원)로 세계 최대 규모의 스타트업이지만, 올 상반기에만 78억달러(약 10조9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오픈AI는 2029년까지 흑자 전환이 어렵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오픈AI의 광폭 행보는 향후 회사의 지배구조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현재 오픈AI는 공익법인(PBC)으로 전환하기 위해 최대 후원자인 MS와 협상을 진행 중이다. 2015년 비영리 조직으로 출범한 오픈AI는 기존 비영리 단체가 새 공익법인의 지배권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지배 구조를 개편하고 있다.
오픈AI의 주요 투자자들은 회사가 영리법인 전환에 성공하면 공익법인의 지분을 받게 된다. 디인포메이션 등에 따르면 지금까지 오픈AI에 130억달러 이상을 투자한 마이크로소프트의 지분율이 약 30%로 최대주주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오픈AI 직원들 약 25%, 오픈AI의 비영리 모회사는 27%를 보유할 것으로 보인다. 소프트뱅크를 비롯한 투자자들이 나머지 지분을 나눠 갖게 된다.
그러나 엔비디아와의 거래로 오픈AI의 소유 구조가 복잡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엔비디아는 총 투자 예정금액 1000억달러를 수년에 걸쳐 단계적으로 10억달러씩 투자할 계획이며, 투자 시점의 기업 가치에 맞춰 오픈AI 지분을 취득할 예정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오픈AI의 추가 자금 조달로 MS, 소프트뱅크, 스라이브 캐피털 등 주요 투자자들의 지분이 희석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한편 샘 올트먼 오픈AI CEO는 "AI 산업의 성장을 뒷받침할 반도체와 전력, 데이터센터 등 인프라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5조~7조달러가 필요하다"며 낙관론을 펼쳤다. 그는 초대형 계약이 AI 산업 발전에 필요한 투자라며 오픈AI를 둘러싼 과잉 투자 우려를 일축했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CNBC와의 인터뷰에서 "이번 AI 붐은 닷컴버블과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했다. 그는 과거 닷컴버블이 과도한 부채금융에 의존한 것과 달리 현재 AI 투자의 상당 부분이 빅테크 자체 자금력으로 이뤄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