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젊은 세대의 연애 방식이 변화하고 있다. 데이팅 앱에서 프로필을 넘기며 상대를 고르는 대신, 함께 달리며 대화를 나누는 러닝 모임이 새로운 만남의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세계 최대 피트니스(운동기록) 앱 스트라바(Strava)가 이러한 흐름을 타고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면서, 건강·소셜·연애를 결합한 '러닝 생태계'가 새로운 산업 축으로 부상하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스트라바는 골드만삭스, JP모건, 모건스탠리 등 주요 글로벌 투자은행을 주관사 후보로 초청해 상장 절차에 본격 착수했다. 마이클 마틴 스트라바 최고경영자(CEO)는 최근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회사는 향후 일정 시점에 기업공개를 추진할 계획이며, 상장은 더 큰 인수합병(M&A)을 위한 자금 조달 수단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2009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설립된 스트라바는 러너와 사이클리스트 등을 위한 운동 기록 플랫폼이다. 세쿼이아캐피털과 TCV 등 글로벌 벤처캐피털의 투자를 받았으며, 운동 데이터 분석과 커뮤니티 기능을 결합한 구조로 이용자층을 넓혀 현재 150여개국에서 1억5000만명 이상이 활동하고 있다.
스트라바는 올해 영국의 러닝 코칭 앱 '러너(Runna)'와 사이클링 훈련 플랫폼 '더 브레이크어웨이(The Breakaway)'를 잇달아 인수하며 IPO를 위한 사업 확장에 나섰다. 월간 활성 사용자(MAU)는 5000만명으로 전년 대비 80% 늘었으며, 유료 구독 매출은 9월까지 1억8000만달러(약 2400억원)를 넘어섰다.
이러한 성장의 배경에는 러닝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사회적 트렌드가 있다. 팬데믹 이후 Z세대를 중심으로 '건강한 사교' 문화가 확산하면서, 러닝이 새로운 만남의 통로로 자리 잡은 것이다. 스트라바의 '2024 연간 스포츠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러닝크루 참여율은 전년 대비 59% 증가했으며, 응답자 5명 중 1명은 러닝크루에서 만난 사람과 실제 데이트를 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같은 세대에서 술자리보다 운동을 통한 교류를 선호하는 비율은 네 배 높다.
영국의 마라톤 대회 운영사 '그레이트 런 컴퍼니'는 지난해 참여 인원이 전년보다 39% 늘었다고 밝혔다. 전체 참가자의 절반 가까이가 35세 이하였고, 여성 비율도 46%까지 확대됐다. 이른바 'Z세대 러닝붐'이 글로벌 현상으로 번지면서, 마라톤과 러닝크루가 새로운 사교 플랫폼으로 변모했다. 소셜미디어(SNS)에서는 러닝 인증 게시물과 지역 러닝 모임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러닝은 단순한 운동이 아니라 하나의 라이프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한국에서도 러닝 인구가 1000만명을 돌파했다. 출근 전 한강변, 퇴근 후 도심 거리, 주말 산책로마다 러닝크루를 쉽게 볼 수 있고, 주요 마라톤 대회 접수는 수분 만에 마감된다. 네이버 밴드와 당근마켓 내 러닝 모임은 최근 2년 새 두 배 이상 늘었고, 인스타그램의 '#러닝' 해시태그 게시물은 400만건을 넘어섰다. 30~40대까지 러닝 문화가 확산되면서 세대 공통의 사교 활동으로 자리 잡았다.
반면 데이팅 앱 시장은 성장세가 꺾였다. 와이즈앱·리테일에 따르면, 올해 5월 기준 틴더·위피·글램 등 국내 주요 앱의 월간이용자수는 1년 새 최대 절반 가까이 감소했고, 20·30대 사용자 10명 중 8명이 '데이팅 앱 번아웃'을 겪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글로벌 시장에서도 비슷한 흐름이 이어지며 주요 사업자들이 매출 감소와 대규모 인력 감축을 단행했다. 젊은 세대가 비대면 매칭보다 현실 속 만남을 선호하면서, 취미·운동 기반 커뮤니티가 새로운 관계 플랫폼으로 부상한 것이다.
스트라바는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 있다. 이용자들이 서로의 달리기 기록을 공유하고 '쿠도스(kudos·칭찬)'를 주고받는 구조는 SNS와 유사하지만, 운동을 매개로 한 실질적 만남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스트라바가 구축한 러닝 네트워크는 단순한 피트니스 앱을 넘어 하나의 '소셜 생태계'로 발전하고 있으며, 브랜드 파트너십과 챌린지 후원 등으로 수익 모델을 다변화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스트라바의 상장이 '러닝붐'을 자본시장으로 확장시키는 신호탄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회사의 현재 기업가치는 약 22억달러(약 3조원) 수준으로 추정되며, IPO 이후 50억달러(약 7조원)대 가치에 도달할 가능성도 거론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