샘 올트먼(Sam Altman) 오픈AI CEO./뉴스1

생성형 인공지능(AI) 시장의 절대 강자였던 오픈AI가 경쟁사들의 맹추격 속에 '성인 콘텐츠' 허용이라는 승부수를 던졌다. 한때 챗GPT로 전 세계에 '지브리풍 프사' 열풍을 일으켰던 오픈AI의 성장세가 주춤하고, 지난 8월 출시된 GPT-5 모델마저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자 돌파구가 절실해졌다. 이에 그동안 조달한 수십억달러의 인프라 투자금 상환이라는 재정적 압박을 해소하기 위해 성인 콘텐츠를 새로운 사용자 유입 수단으로 활용하려는 전략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분석된다.

14일(현지시간)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X를 통해 챗GPT의 안전 규제를 일부 완화하고, 12월부터 연령 인증을 거친 '확인된 성인' 사용자에 한해 '에로티카(erotica, 성애물)' 콘텐츠를 허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올트먼 CEO는 "챗GPT가 정신건강 문제를 우려해 다소 제한적이었으나, 성인 사용자는 성인답게 대우해야 한다는 원칙에 따라 규제를 풀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정책 변화는 둔화된 성장세와 이용자 이탈을 막기 위한 직접적인 대응이다. 오픈AI는 GPT-4o 모델 논란으로 심각한 리스크에 직면한 뒤 'AI 아첨' 억제와 미성년자 보호를 위해 안전 필터, 가이드라인을 강화했다. 특히, 챗GPT가 한 남성에게 망상(수학 천재)을 유발하거나, 10대 아들의 극단적 선택을 부추겼다는 소송이 제기되는 등 정신건강 리스크를 겪은 후의 조치였다. 그러나 강화된 안전 조치가 챗봇 전반에 적용되면서 대화의 폭이 지나치게 좁아졌고, 이용자들의 불만이 확산됐다. 실제로 레딧, 디시인사이드 등 커뮤니티에서는 검열을 우회할 수 있는 프롬프트 공유 문화가 확산했으며, 일부 이용자들은 "AI가 너무 로봇 같다"며 Character.AI 등 대체 플랫폼으로 이동했다. 오픈AI의 '에로티카' 허용은 이러한 사용자들의 '감정 및 판타지 표현 자유' 욕구를 공식 서비스로 흡수하여 참여율을 높이려는 '이용자 락인 전략'으로 풀이된다.

xAI가 개발한 생성형 AI 챗봇 '그록(Grok)'의 로고가 여러 화면에 표시된 모습을 보여준다./연합뉴스

경쟁사들은 이미 비슷한 방향에서 규제 완화의 틈새를 공략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의 AI 기업 xAI는 지난 8일 미디어 생성기 '그록 이매진(Grok Imagine) v0.9'를 공개하며 폭발적 반응을 얻었다. 이미지만 업로드하면 6초짜리 영상을 만들어주는 접근성과 함께, 유료 가입자에게 '스파이시 모드(Spicy mode)'를 제공해 누드를 포함한 성인용 영상 생성까지 허용한 것이 특징이다.

구글의 '제미나이'는 월간활성사용자(MAU) 5억명 돌파와 이미지 생성·합성 기능인 '나노 바나나' 업데이트 등으로 오픈AI를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챗GPT가 올 상반기 '지브리 프사' 유행 이후 성장세가 둔화된 것과 달리, 구글은 'AI 플러스' 요금제를 40여개국으로 확대하고 일부 국가에서 6개월간 50% 할인 혜택을 제공하는 등 가격 차별화 전략과 크롬 브라우저 통합 전략으로 빠르게 점유율을 높이고 있다.

업계 전문가들은 과거 초고속 인터넷 확산 초기에도 성인 콘텐츠가 대중화를 이끌었듯, 생성형 AI 시장에서도 그록에 이어 오픈AI가 공식적으로 에로티카를 허용하면서 다른 주요 서비스로 성인용 AI 콘텐츠가 확산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김명주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AI안전연구소장은 "오픈AI가 성인 모드를 꺼낸 것은 막대한 인프라 투자 대비 AI 활용 분야 성장이 더디자 손익 분기점 달성을 위한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며 "성인 간 서비스라 문제가 없을 수 있지만, 비상업·공익적 AI를 표방하던 오픈AI가 부작용이 우려되는 영역까지 상업화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재 경쟁 체제에서는 다른 기업들도 이용자를 뺏기지 않기 위해 결국 이 흐름을 따라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