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가 올해 3분기 3년여 만에 12조원대의 영업이익을 회복하며 실적 반등에 성공했다. 전 세계 인공지능(AI) 투자 열풍으로 삼성전자 주력인 반도체 사업이 활기를 찾은 덕분이다. 지난 3분기 연속 2조원대 적자를 냈던 '아픈 손가락'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사업도 적자 폭을 반 이상 줄이며 반등에 힘을 보탰다.
삼성전자는 14일 올 3분기 매출 86조원, 영업이익 12조1000억원의 실적을 낸 것으로 잠정 집계됐다고 밝혔다. 매출은 작년 3분기보다 8.7% 늘어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고, 영업이익은 31.8% 증가했다. 최근 계속 높아지던 증권가 영업이익 예상치(10조1000억원)도 20%나 상회하는 '어닝 서프라이즈'다. 지난 2분기 영업이익이 4조원대까지 떨어지며 위기감이 고조됐으나, 일단 부진의 고리를 끊어냈다.
◇ 반도체·모바일이 실적 견인… 가전은 부진
이번 깜짝 실적의 주역은 반도체다. 삼성전자는 잠정 실적에서 사업 부문별 실적을 밝히지 않지만, 증권가에선 반도체를 담당하는 DS(디바이스솔루션) 부문의 3분기 영업이익이 약 7조원을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다. AI 서버 확산으로 HBM(고대역폭메모리)과 DDR5 등 고부가 제품 출하가 늘었고, 생산 능력이 선단 공정에 쏠리면서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는 공급 부족으로 가격이 올랐다. 올 상반기 내내 적자를 내던 낸드 사업 실적은 3분기 들어 흑자로 돌아섰고, D램 영업이익은 지난 분기보다 두 배가량 증가한 것으로 증권가는 예측했다.
특히 SK하이닉스 등 경쟁사에 밀리던 HBM(고대역폭메모리) 사업의 회복세가 뚜렷하다. 엔비디아의 대항마 AMD를 비롯해 자체 AI 칩을 만드는 브로드컴, 아마존, 구글 등 미국 빅테크 기업을 중심으로 주문이 대폭 늘어났다. 여기에 그동안 발목을 잡았던 엔비디아용 5세대 HBM(HBM3E) 12단 제품의 품질 인증을 3분기에 사실상 완료하면서 공급이 가시화됐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3분기 HBM 매출은 전 분기 대비 98% 증가해 범용 D램과 함께 평균판매단가(ASP) 상승을 견인했다"고 분석했다.
파운드리·시스템LSI 사업부도 영업적자가 올 2분기 2조5000억원에서 3분기 1조원대로 축소됐다. 채 연구원은 "파운드리는 7나노 이상 성숙 공정에서 신규 고객을 추가로 확보하면서 가동률이 점진적으로 상승 중"이라며 "지난해 하반기부터 발생한 일회성 비용이 줄어들면서 적자 폭이 크게 줄었다"고 했다. 최근 IBM의 차세대 서버용 칩과 닌텐도의 차세대 콘솔용 칩을 수주하는 등 고객사 다변화에 성공한 것도 실적 개선에 기여했다.
스마트폰(MX) 사업은 3조원대 초중반대의 견조한 이익을 유지한 것으로 추산된다. 지난 7월 출시된 갤럭시 Z 폴드7·플립7 등 폴더블 스마트폰 판매 호조가 실적을 이끌었다. 디스플레이(SDC) 부문 역시 갤럭시 폴드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패널 물량 증가 등에 힘입어 1조원대 이익을 냈을 것으로 증권가는 예상했다. 반면 TV·가전 사업은 4000억원대 흑자에 그치며 부진을 이어간 것으로 보인다. IBK투자증권은 "TV 사업의 수익성이 낮아졌고 가전 사업은 영업적자를 냈을 가능성도 있다"고 관측했다.
◇ 4분기도 '맑음'… 내년엔 8년 만 최대 실적 전망
전망도 밝다. 증권가는 4분기에도 삼성전자 영업이익이 12조원 이상을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범용 D램과 낸드플래시 등 메모리 반도체 가격 상승세가 3분기보다 가팔라지고, 파운드리 부문의 영업 적자도 추가로 감소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올 하반기 삼성전자의 HBM 출하량은 상반기 대비 2배 이상 급증할 것"이라며 "범용 메모리 공급이 제한적인 상황에서 서버용 수요가 늘어나 D램과 낸드의 가격 상승 추세도 하반기부터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내년에는 2018년 반도체 '슈퍼 호황기' 이후 8년 만에 최대 실적을 달성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국투자증권 등 일부 증권사에서는 삼성전자가 당시 영업이익(58조8000억원)을 뛰어넘어 내년 73조원에 달하는 이익을 낼 것이란 장밋빛 예측을 내놨다. 김 연구원은 "삼성전자는 AMD가 내년 하반기부터 오픈AI에 공급할 AI 가속기에 HBM4 물량의 상당 비중을 공급할 전망"이라며 "이에 따라 AMD용 HBM 매출은 올해 대비 최소 5배 이상 늘고, 엔비디아의 HBM4 공급 다변화에 따른 수혜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AI 열풍이 HBM 수요를 폭발적으로 늘리고, 이는 다시 범용 메모리 반도체의 공급 부족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면서 삼성전자가 최소 2027년까지 '메모리 슈퍼 사이클(장기 호황)'을 탈 것이라는 분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