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직장인 한모씨는 지난 추석 연휴에 친구들과 만나 PC방에 가려다가 계획을 접었다. 학창 시절 단골이었던 동네 PC방이 문을 닫았기 때문이다. 지도 앱를 살펴봤지만 집 근처에 다른 PC방은 찾을 수 없었다. 한씨는 "PC방 한 번 가려면 대중교통을 타고 나가야 한다"며 "단순히 게임만 할 수 있는 중소 영업장들은 망하고 다양한 경험을 제공하는 대형 영업장만 살아남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때 청소년들의 아지트 역할을 했던 PC방이 사라지고 있다. 한창 잘 나갈 때는 2만개 이상이 성업 중이었으나, 최근에는 6000개선으로 줄었다. 최근 집집마다 고성능 PC 보급이 늘고 모바일게임이 인기를 끌면서 PC방이 설자리를 잃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 같은 움직임과 반대로 최근 국내·외 게임사들은 직접 PC방을 개점하고 있다. 이들은 PC방을 통해 직접 PC 게임을 홍보하는 동시에 오프라인 접점으로 유저와의 연결고리를 강화하고자 한다.
11일 국세통계포털(TASIS)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전국 PC방은 6983개로 1년 전(7389개)보다 406개 줄어든 것으로 집계됐다.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기 전인 2019년(1만1801개)과 비교하면 약 40% 급감했다. 전국 PC방은 ▲2020년 9970개 ▲2021년 9265개 ▲2022년 8485개 ▲2023년 7773개 ▲2024년 7243개 등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업계에서는 폐업 신고를 하지 않은 PC방까지 고려하면 실제 영업 중인 PC방은 6500개 이하일 것이라고 추정한다.
PC방 폐업이 가속화된 데는 게임 시장이 구조적 변화를 맞았기 때문이다. PC 게임은 고사양 그래픽과 빠른 반응 속도를 요구하기에 고성능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탑재한 고성능 게이밍 PC가 필수다. 과거에는 유저들에게 PC방이 게임을 즐기기 위한 필수 장소였으나, 코로나19로 사회적 거리두기와 재택근무가 활성화하면서 고성능 게이밍 PC의 보급이 확대됐다. 게이머들이 자신의 집에 PC방 수준의 게임 환경을 구축하면서 PC방을 갈 필요가 없어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국내 PC 출하량은 전년 대비 소폭 감소했지만, 게이밍 컴퓨터를 포함한 인공지능(AI) 기능을 갖춘 고성능 PC는 빠르게 늘고 있다. IDC는 향후 5년간 AI PC 보급률이 연평균 27.3%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이에 인건비·전기료 등 부대 비용이 큰 PC방 특성상 향후 문을 닫는 곳이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높아진 모바일게임 인기는 PC방 폐업에 직격탄을 날렸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2023년 국내 게임 시장 분야별 비중은 모바일게임(59.3%)이 가장 많았고, PC게임(25.6%)은 모바일게임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특히 젊은 층을 중심으로 PC방에 모여 게임을 하기보다 모바일게임을 하거나 게임 유튜브 방송을 보는 것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았다.
이 같은 움직임과 반대로 최근 국내·외 게임사들은 직접 PC방을 차리고 있다. 넥슨은 오는 18일 자사의 인기 지식재산권(IP)인 '메이플스토리'를 활용한 PC방 '메이플 아지트'를 서울 강남역 인근에 개점할 예정이다. '메이플 아지트'는 총 181석 규모의 '메이플스토리' 테마 PC방이다. 넥슨은 '메이플 아지트'를 통해 유저 접점과 오프라인 경험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호요버스는 지난해 자사의 인기 IP '원신'을 활용한 PC방 '원신 PC 라운지 인 서울'을 서울 홍대입구역 인근에 개점했다. 이곳은 국내 서브컬처 게임 최초의 PC방이다. '원신 PC 라운지 인 서울'은 게임할 수 있는 PC존 외에 영원의 나라 '이나즈마'를 구현한 포토존, 테마 체험존, 굿즈존, 테마 메뉴 등을 마련했다. 또 '일곱성인의 소환' 대전이 가능한 '일성소존'도 준비돼 PC방에서 유저 간 전략 대결을 관람할 수 있다.
카카오게임즈도 다양한 콜라보레이션 PC방을 운영하고 있다. 카카오게임즈는 지난 2023년 6월 서울에서 콜라보 PC방 4곳을 오픈하고, 이후 부산으로 지역을 확대해 현재 총 7개 PC방과 협업하고 있다. 해당 PC방들을 거점으로 '패스오브엑자일 1, 2', 카카오게임즈가 서비스하는 '배틀그라운드' 등 PC·온라인 게임 및 카카오프렌즈 캐릭터를 선보이고 있다.
게임사들은 PC방 영업을 통한 수익 실현 목적보다는 유저들에게 특별한 경험을 제공하려는 시도에 나서고 있다. 테마 PC방을 통해 굿즈, 특별 메뉴, 포토존 등을 결합한 온·오프라인 통합 경험을 선사하고 이를 통해 IP 충성도를 강화하고자 한다.
게임업계 관계자는 "PC방 업계가 불황인 가운데 게임사들은 자사 게임을 활용한 테마 PC방을 열어 차별화 전략을 꾀하고 있다"며 "PC방이라는 오프라인 공간을 통해 유저 충성도를 높이고자 하는 시도"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