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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챗GPT 같은 강력한 도구의 출현으로, 한 사람이 창업하고 운영하는 1인 기업도 유니콘(기업 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 기업)이 되는 시대가 수년 내로 올 것이다." 챗GPT로 생성 AI(Generative AI) 혁신을 이끈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는 2024년 2월 레딧의 공동 창업자 알렉시스 오해니언과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지난 5월엔 생성 AI 경쟁사인 앤트로픽의 다리오 아모데이 CEO가 개발자 콘퍼런스에서 "2026년에 세계 첫 '1인 유니콘'이 나올 것"이라고 내다봤다.

# 이스라엘 개발자 마오르 슐로모가 창업한 바이브코딩(자연어 코딩) 플랫폼 기업 베이스44는 지난 6월 설립 6개월 만에 현지 홈페이지 개발 기업 윅스에 8000만달러(약 1112억원)에 매각됐다. 슐로모는 베이스44의 첫 버전을 혼자 개발한 1인 창업자지만, 이후 직원 8명을 추가로 고용했다. 인디 해커스, 프로덕트 헌트 같은 기술자 커뮤니티에는 1인 기업인이 개발한 디지털 기술이 경연을 벌일 만큼 계속 올라오고 있다.

2022년 11월 점화한 생성 AI 혁명이 업무 효율성과 노동생산성을 개선하면서 실리콘밸리를 중심으로 혼자서 기술 스타트업을 창업하는 사례가 늘고, 심지어 1인 유니콘 탄생 기대감까지 키우고 있다. 스타트업 지원 플랫폼 기업 카르타에 따르면, 2015년 미국 스타트업의 17%에 불과한 1인 스타트업 비율은 2024년 35%로 두 배 이상 늘었다. 코딩, 재무, 마케팅, 디자인 등 다양한 업무 영역에서 인력을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AI 기술이 잇따라 등장한 덕분이다. 우버 뉴욕 지사장 출신인 조시 모어는 마케팅 전문가였지만 챗GPT로 코딩을 독학해 2023년 음성 요약 앱인 웨이브AI를 출시한 뒤 8개월 만에 월 매출 33만달러(약 4억원)를 내는 기업으로 키웠다.

아마존과 줌처럼 1인 기업인으로 출발해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로 성공한 사례는 예전에도 있었지만, AI 확산으로 '1인 기술 스타트업'이 크게 늘어날 만큼 창업 생태계에 변화가 오고 있는 것이다. 국내에서도 1인 사업가 커뮤니티인 '솔로프러너'에서 230명이 넘는 1인 창업자와 예비 창업자가 나 홀로 앱 개발 등 창업 노하우를 공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코노미조선'은 생성 AI 혁명으로 성큼 다가온 1인 유니콘 시대 관련 기대와 우려 등 다양한 시각을 국내외 전문가 인터뷰를 통해 담아냈다.

창업 파트너 된 AI 에이전트발 디지털 노동시장 혁명

일일이 할 일을 지정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일의 순서와 흐름을 짜고, 활용 가능한 도구를 써서 자율적으로 작업하는 'AI 에이전트'의 등장이 1인 기술 스타트업 생태계의 인프라가 되고 있다.

데이터 기반 비즈니스와 디지털 전략·전환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라지브 가그 미국 에모리대 고이주에타 경영대학원 교수는 "AI는 이미 시장조사, 재무 관련 모델링, 마케팅 캠페인, 고객 지원 업무 등 이전에는 각각의 팀이 필요했던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면서 "AI 에이전트를 잘 활용하는 사람은 과거 중견기업 전체와 맞먹는 업무 능력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AI 에이전트 개발을 선도하는 세일즈포스 창업자 마크 베니오프는 "AI가 회사 업무의 30~50%를 담당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는 AI 도입을 "디지털 노동 혁명"이라고 표현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급속히 확산한 원격 근무와 여러 직업을 동시에 수행하는 멀티 잡, 프리랜서 등의 증가 같은 노동시장의 변화도 나 홀로 기업 운영의 어려움을 던다.

19세기 말 거대 기업이 등장한 이래로 '직원 수'는 기업의 영향력을 가늠하는 척도로 여겨졌다. '규모의 경제'가 지배했다. 그런데 이제는 반대로 회사 직원 수가 적은 게 AI 기술 접목과 효율성에서 앞선 것을 보여주는 지표로 여겨지는 시대가 오고 있다. 직원 수가 적으면 위기 상황에서 민첩하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앱스토어, SaaS(Software as a Service·서비스형 소프트웨어), 온라인 마켓플레이스를 통해 소규모 기업가도 세계시장에 접근할 수 있게 된 것도 1인 기술 스타트업을 키우는 환경 변화다. 소셜미디어(SNS)나 인디 해커스 같은 기술 커뮤니티를 통한 입소문 전략은 저비용 마케팅을 가능하게 한다.

'1인 창업과 동시에 1억달러 투자 유치'도

1인 창업은 스타트업 업계에서 익숙한 형태로 자리 잡고 있다. 아마존 소비자 부문 CEO를 지낸 데이브 클라크는 2024년 AI 기반 공급망 솔루션 기업 '오거'를 홀로 창업했고, 창업과 동시에 1억달러(약 1394억원) 규모의 시리즈 A 투자를 유치했다. 빅테크 고위 임원 출신이라는 점이 창업과 투자 유치 성공에 도움이 됐을 것이라는 반론의 여지가 있다. 그렇다고 해도 생성 AI 접목으로 점차 적은 수의 인원으로 많은 매출을 거두거나 큰 기업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게 된 흐름까지 뒤집을 수는 없다.

실제 생성 AI 기술로 비개발자도 앱과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도록 돕는 스웨덴 스타트업 '러버블'은 지난 7월 시리즈 A 라운드에서 2억달러(약 2798억원)를 유치하며 18억달러(약 2조5180억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아 창업 2년 만에 유니콘 반열에 올랐다. 당시 러버블의 직원 수는 45명이었다. AI 코드 에디터 '커서' 개발사 애니스피어의 직원 수는 약 230명에 불과하지만, 2025년 ARR (Annual Recurring Revenue·연간 반복 매출)은 5억달러(약 7000억원)에 이른다. 직원 1인 평균 약 30억원의 매출을 책임진다는 얘기다. ARR은 구독 기반 비즈니스가 매년 반복 발생시키는 예측 가능한 매출을 의미한다. 현시점에서 구독 고객이 추가로 늘어나거나 줄지 않는다고 가정했을 때 앞으로 1년간 반복적으로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매출이다.

국내에서도 1인 기술 스타트업은 새로운 흐름으로 자리잡고 있다. '펍스테이션'은 출판사에서 16년간 근무했던 송만석 대표가 2023년 10월 1인 창업했다. 지금은 직원이 3명으로 늘었다. AI를 활용해 교정·교열과 윤문, 번역, 디자인, 마케팅까지 작가의 집필을 제외한 출판 전 과정을 자동화하는 플랫폼을 구축해 이를 기반으로 수개월이 걸리던 출판 주기를 수일로 단축시켰다. 물리학 박사 출신 오픈 소스 전문가 신정규 대표가 2015년 1인 창업(현재 직원은 43명)한 AI 인프라 플랫폼 기업 래블업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유일하게 엔비디아 AI 슈퍼컴퓨터 'DGX'를 지원하는 운영 소프트웨어로 검증받은 기업이다. 2024년 매출 52억원, 창업 이후 누적 투자 126억원을 기록 중이다.

덴마크 출신으로 미국 뉴욕에 본사를 둔 AI 기반 창업 인큐베이터 '오도스'의 공동 창업자 중 한 명인 헨릭 베르델린은 "AI는 기업가 정신을 대중화할 것"이라며 "1인 유니콘이 머지않아 등장할 것이라고 믿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건 수백만 개의 '1인 100만달러기업'이 생겨날 것이라는 점이다. 건강한 창업 생태계를 보여주는 지표로서 그쪽이 의미가 더 크다"고 했다.

AI 오류와 규제 보완 등 극복 과제도 산적

1인 기술 스타트업 추세가 1인 유니콘 시대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극복해야 할 도전이 만만치 않다. AI 에이전트 접목이 기술적으로는 눈앞에 왔지만, 고객 프라이버시와 보안 관련 규제 등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생성AI가 사실이 아닌 정보를 생성하는 할루시네이션(hallucination·환각) 문제도 여전하다. 이에 따라 1인 창업자가 AI의 오류를 수정하는 데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다는 불만과 함께,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과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야기도 심심치 않게 들린다.

1인 창업을 바라보는 실리콘밸리 벤처 투자자의 삐딱한 시선도 극복해야 할 과제다. 인도의 대표적인 스타트업 투자 벤처캐피털(VC) 블룸벤처스의 파트너인 사지스 파이는 "1인 창업자가 늘고 있지만, 그만큼 자금이 투입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YC 공동 창업자 매칭(세계적인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인 와이콤비네이터가 운영하는 프로그램)이나 기업가 우선(Entrepreneur First) 프로그램 덕분에 공동 창업자를 찾는 장벽이 낮아지고 있다."고 언급했다.

챗GPT와 제미나이 등 이름이 널리 알려진 소수의 대형 플랫폼에 활용이 집중되는 것과 AI 접목으로 기술이나 상품을 '베끼기 쉬운 시대'가 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창업 지원 제도의 개선도 요구된다. 중소벤처기업부에 따르면, 스타트업 인큐베이팅 프로그램인 팁스(TIPS)와 사전 지원 프로그램인 프리팁스(Pre-TIPS)는 지원 대상을 2명 이상으로 구성된 기업으로 규정하고 있다. 프리팁스 대상으로 선정된 기업은 연구개발(R&D) 자금 최대 1억원을 지원받을 수 있다. 쇼핑몰 운영자, 프리랜서, 유튜버 등 1인 자영업자는 중소벤처기업부가 제공하는 '1인 창조 기업' 정책을 지원받을 수 있고, 독자 R&D를 할 수 있는 스타트업은 혼자서 현실적으로 운영하기 어렵다는 이유가 거론되지만, 1인 기술 스타트업이 늘어나는 추세에는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내에서 1인 창조기업은 2022년 100만 개를 돌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