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챗GPT의 아버지'로 불리는 샘 올트먼 오픈AI 최고경영자(CEO)가 지난 1일 한국을 찾았습니다. 그는 이재명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등 주요 기업인을 만나 한국과 인공지능(AI) 분야 협력을 약속했습니다. 삼성·SK는 오픈AI가 오라클, 소프트뱅크과 손잡고 추진 중인 5000억달러(약 700조원) 규모의 AI 인프라 구축 사업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로 했습니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오픈AI에 D램 웨이퍼 기준 월 최대 90만장 규모에 달하는 고대역폭메모리(HBM)를 공급하기로 했습니다. 이는 전 세계 HBM 생산능력의 2배를 넘어서는 수준입니다. 계약이 실현되면 한국 메모리 반도체는 앞으로 수년간 초대형 수출 물량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두 그룹은 오픈AI와 첨단 AI 데이터센터를 짓는 데도 협력하기로 했습니다. SK텔레콤은 전남, 삼성SDS는 포항에 오픈AI 전용 데이터센터 구축에 나서기로 했고, 삼성물산과 삼성중공업은 오픈AI와 바다 위에 설치하는 플로팅(floating) 데이터센터 공동 개발을 추진합니다.
국내 증시는 환호하는 분위기입니다. 코스피지수는 2일 처음으로 장중 3500선을 넘겼습니다. 오픈AI가 삼성전자(005930), SK하이닉스와 맺은 메모리 공급 의향서(LOI) 관련 기대감에 반도체주가 강세를 보인 영향입니다. 올트먼 CEO는 이날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도 국가 AI 대전환과 AI 생태계 발전을 위한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등 한국 정부의 'AI 3대 강국' 달성 목표에도 힘을 실어줬습니다.
이는 오픈AI가 올해 들어 공격적으로 추진 중인 AI 인프라 선제 투자 행보의 일환입니다. 이날 오픈AI는 자사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전 세계 주요 기업, 정부, 연구소와의 파트너십을 강조했습니다. 오픈AI는 "AI는 우리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룰 수 없다(We can't do AI alone)"라며 "앞으로도 더 많은 파트너십을 통해 인류 전체를 위한 AI를 개발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업계와 주요 외신은 비상장사이자 외부 투자에 의존 중인 오픈AI가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현금을 태우면서 연일 전 세계 기업·정부와 협력을 약속하는 광폭 행보에 우려의 시선을 보내고 있습니다. 오픈AI는 글로벌 AI 경쟁에서 선두 자리를 유지하고 AI 혁신을 주도하려면 공격적인 확장(scaling)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지만, 시장은 현금을 급속도로 소진하고 있는 오픈AI를 보면서 지속 가능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습니다.
CNBC는 "일부 투자자와 애널리스트들은 오픈AI의 천문학적인 투자 금액과 점점 복잡하게 얽히는 인프라 파트너(협력사) 네트워크에 의구심을 표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AI 거품론'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습니다.
앞서 오픈AI는 엔비디아, 코어위브, 오라클, 브로드컴 등 실리콘밸리 유수 기업과 굵직한 데이터센터·반도체 등 인프라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지난달 오라클과 3000억달러(약 420조원) 규모의 컴퓨팅 파워 구매 계약을 맺었고, 데이터센터 기업 코어위브와는 데이터센터 용량 구매 계약 규모를 총 224억달러(약 31조원)로 늘렸습니다. 이어 반도체 기업 브로드컴과는 자체 AI 칩 생산을 목표로 100억달러(약 13조9000억원) 규모의 주문을 넣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독일에서는 유럽 최대 소프트웨어 기업 SAP와 손잡고 독일 '소버린 AI' 구축을 지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오픈AI의 기업가치는 5000억달러(약 700조원) 수준으로 1년 사이 2배 수준으로 늘었지만, 아직도 적자를 내고 있습니다.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올 상반기 오픈AI는 43억달러(약 6조원)의 매출을 기록했음에도 영업손실은 78억달러(약 10조9000억원)에 달했습니다. AI 개발과 챗GPT 운영, AI 인프라 투자에 막대한 비용을 투입했기 때문입니다. 상반기에만 연구·개발(R&D)에 67억달러를 썼고, 유능한 AI 인재 이탈을 막기 위해 직원 주식보상에 25억달러를 썼습니다.
지출이 늘면서 적자 규모는 당분간 계속 불어날 전망입니다. 지난해 오픈AI는 2029년까지 흑자 전환이 불가능하고, 그때까지 누적 440억달러(약 61조원) 적자를 기록할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최근에는 2029년까지 예상되는 현금 소진(cash burn) 액수를 1150억달러(약 160조원)로 상향 조정했습니다.
오픈AI는 지난 1년간 약 500억달러(약 70조원)의 투자를 받았고 지난주 엔비디아로부터 1000억달러의 투자를 이끌어냈지만, 앞으로 10년간 수천억달러에 육박하는 막대한 비용을 투입해 사업을 확장해야 하는 점을 감안하면 턱없이 부족한 금액입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오픈AI가 직면한 가장 큰 불확실성은 야심찬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어떻게 자금을 조달할 것인가이다"라고 했습니다.
오픈AI 경영진은 인프라 지출이 과도하다는 우려를 일축했습니다. 올트먼 CEO는 지난 8월 한 기자간담회에서 현재 AI 시장의 투자 열풍이 과거 '닷컴 버블'을 떠올리게 한다며 일부 AI 기업과 투자자들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럼에도 오픈AI는 그 대상이 아니라고 자신했습니다. 테슬라 초기 투자자로 이름을 알린 영국 대표 투자자인 제임스 앤더슨은 "엔비디아의 오픈AI 투자 계획은 1990년대 말 닷컴 버블을 떠올리게 한다"며 "최근 AI 기업들의 기업가치 급등은 불안한 신호"라고 언급했습니다.
업계에서는 오픈AI가 막대한 지출에 맞춰 중장기적으로 수익을 내려면 유료 고객이 수억명 늘어야 한다고 보고 있습니다. 오픈AI도 이런 사실을 인식하고 수익 다변화에 나섰습니다. 최근 오픈AI는 챗GPT로 검색 상품을 곧바로 구매할 수 있는 쇼핑 기능을 추가해 AI 기반 전자상거래 시장에 진출했고, 전날에는 AI로 생성한 영상을 만들고 공유할 수 있는 소셜미디어(SNS) 앱 '소라(Sora)'를 출시했습니다. 내년에는 링크드인을 겨냥해 구직자와 기업을 연결해주는 AI 기반 채용 플랫폼을 선보일 예정입니다.
올트먼 CEO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AI 시대에 이 정도 투자와 적자는 감수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과거의 기술 혁명이나 인터넷과는 달리, 이번에는 대규모 인프라가 필요하다"며 "지금 보여준 투자 계획은 그 중 일부일 뿐"이라고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