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미에현 요카이치에 있는 키옥시아 제조공장(팹7)./키옥시아

인공지능(AI)이 촉발한 메모리 반도체 공급난에 대응해 세계 3위 낸드플래시 회사인 일본 키옥시아가 "5년 안에 생산량을 두 배로 늘리겠다"고 선언했다. D램뿐 아니라 장기간 침체에 빠졌던 낸드 시장까지 공급 부족이 현실화하자 시장에서는 메모리 반도체 역사상 가장 긴 호황이 이어질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 AI가 부른 저장장치 대란… 낸드, 'AI·대체 수요' 쌍끌이

이번 메모리 호황의 진원지는 AI 데이터센터다. 와타나베 토모하루 키옥시아 부사장은 지난달 30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생성형 AI용 칩을 필요로 하는 하이퍼스케일러(대규모 클라우드 기업)들의 수요가 매우 강력하다"며 "낸드 시장이 매년 약 20%씩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AI 연산량이 늘면서 고성능 저장장치 수요가 급증한 데다 5~6년 전 설치된 데이터센터 서버의 교체 주기까지 맞물린 영향이다.

AI가 몰고 온 데이터 폭증은 저장장치 시장을 흔들고 있다. 기업들은 그간 데이터센터 운영 비용을 줄이기 위해 방대한 데이터는 값싼 하드디스크드라이브(HDD)에, 고속 처리가 필요한 영역은 낸드 기반 솔리드스테이트드라이브(SSD)에 나눠 담아왔다. 그러나 최근 HDD 수요 급증으로 공급이 빠듯해지자, 기업들은 비용 부담에도 SSD를 찾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은 낸드 가격 상승세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투자은행 JP모건은 "기업용 SSD(eSSD) 채택 확대로 낸드 강세가 한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고,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도 HDD 부족에 따른 풍선 효과로 올 4분기 낸드 가격이 전 분기 대비 5~10% 오를 것으로 내다봤다. 키옥시아는 이를 기회로 삼아 추격의 고삐를 당기고 있다. 기타카미 2공장 가동과 요카이치 증설을 통해 5년 내 낸드 생산능력을 두 배로 늘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추격한다는 계획이다.

◇ 과거와 다른 '구조적 호황'… HBM이 판을 바꾼다

메모리 반도체의 또 다른 축인 D램 시장도 공급난이 심화하고 있다. AI 칩 필수 부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 생산을 늘리기 위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주요 기업들이 기존 D램 생산라인을 전환하면서, 범용 D램 재고가 빠르게 줄고 있다.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3분기 말 글로벌 D램 제조사의 평균 재고는 3.3주로, 2018년 슈퍼 사이클 저점(3~4주)을 밑돈 사상 최저 수준이다.

재고가 바닥나자 D램 가격도 가파르게 뛰고 있다. PC용 DDR4 8Gb 가격은 6.3달러로 올해 최고가를 기록했고, 최신 DDR5 16Gb 가격도 7.5달러를 넘어섰다. 트렌드포스는 4분기 서버·PC용 범용 D램 가격이 전 분기 대비 8~13% 오르고, HBM까지 포함하면 13~18%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시장에선 D램과 낸드가 동시에 부족한 이번 국면을 단기 반등이 아닌 장기 호황의 시작으로 본다. 2017~2018년 슈퍼 사이클이 아마존·마이크로소프트 등 클라우드 기업들의 데이터센터 증설 경쟁이 주도한 'CPU(중앙처리장치) 서버' 중심의 호황이었다면, 이번에는 범용 서버 수요에 더해 HBM을 탑재한 'GPU(그래픽처리장치) 서버' 수요까지 겹치며 메모리 전체를 빨아들이고 있다. 반면 공급은 공정 난이도와 투자 제약 탓에 과거처럼 빠르게 늘지 못하고 있다.

채민숙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기술 난이도 상승으로 과거와 같은 투자 규모로는 생산능력 확장이 쉽지 않다"며 "구조적인 공급 부족으로 가격 상승이 장기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공정 전환과 HBM 세대교체가 전공정 장비 투자 증가로 이어지며 업사이클을 더 길게 만들 것"이라며 "이번 사이클은 메모리 반도체 역사상 가장 길 것으로 예상한다"고 했다. JP모건 역시 이번 메모리 반도체 호황기가 2027년까지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JP모건은 지난달 25일 보고서에서 "D램 가격은 사상 처음으로 4년 연속 상승할 수 있다"며 "HBM으로의 전환이 사이클을 늘리는 핵심 요인으로, 2027년에는 HBM이 전체 D램 시장 가치의 43%를 차지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