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의 대표작 FC./연합뉴스

축구게임 '피파', 1인칭 슈팅게임(FPS) '배틀필드'로 유명한 게임 개발사 일렉트로닉아츠(EA)가 비상장사 전환에 나서면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EA는 지난해 매출이 73억달러(약 10조2000억원)에 육박하는 미국 대형 게임 개발사로, 신작 출시를 앞두고 올해 들어 주가가 상승세였다. 업계에서는 게임 산업 성장세가 둔화한 가운데 소수의 히트작 의존도가 높은 EA가 단기 주가 압박에서 벗어나 수익성 개선에 주력하기 위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고 분석하고 있다.

30일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사우디아라비아 공공투자펀드(PIF)와 어피니티파트너스, 사모펀드 실버레이크로 구성된 컨소시엄은 EA 지분 100%를 약 550억달러(약 77조원)에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계획대로 2027년 1분기에 거래가 마무리되면 월가 역사상 최대 규모의 레버리지 바이아웃(LBO·피인수 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돈을 빌려 기업을 인수) 방식의 인수·합병(M&A)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인수가 완료되면 인수자들은 EA를 비상장 기업으로 전환할 예정이다. 회사 경영은 앤드류 윌슨 EA 최고경영자(CEO)가 계속 맡을 전망이다.

EA는 대표작 '배틀필드 6' 신작 출시를 앞두고 주가가 상승 중이었는데, 돌연 지분 매각과 비상장 전환을 선택했다. 글로벌 투자은행 애널리스트와 주요 외신은 EA가 상반기 실적이 반등한 가운데 다음 달 신작 공개로 시장 기대감이 커지고 있는 시점에 '박수칠 때 떠나는' 전략을 택했다고 분석했다. 게임 산업은 히트작 유무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대표적 고위험 고수익 업종이다. 블록버스터급 게임 개발 비용은 치솟고 있는 반면, 신작 성공률은 낮아 단기간에 수익을 내기가 어렵다. 이에 게임 개발사들은 흥행에 성공해 팬덤을 구축한 지식재산권(IP)을 프랜차이즈화해 수익을 창출해왔다. EA도 배틀필드와 피파(현 FC), 심즈 등 장수 IP에 20년 넘게 의존했다.

시장조사업체 암페어 애널리시스에서 게임을 담당하고 있는 피어스 하딩롤스 연구원은 "블록버스터급 게임 개발비가 1억달러(약 1300억원)를 넘어서면서 게임 개발사들의 위험 부담이 커졌다"며 "대형 게임 개발사도 1억달러 이상을 투입한 신작이 2~3번 실패하면 큰 타격을 입는다"고 했다.

WSJ는 "EA의 매각은 게임 산업의 성장세가 둔화하는 가운데 이뤄졌다"며 "게임 산업은 한 번의 성공이 다음 성공을 보장하지 않고 불패의 프랜차이즈도 흔들릴 수 있다"고 했다. 실제 올 상반기 신작 'EA 스포츠 FC'의 반응이 예상에 못 미치자, EA의 주가는 하루 만에 16.7% 급락했다. EA는 최근 신작 2개의 판매가 저조했고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도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배틀필드 6'가 흥행에 성공하더라도 내년 5월 출시 예정인 게임 업계 최고 기대작인 '그랜드 테프트 오토(GTA) 6' 출시가 변수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여기에 디즈니, 넷플릭스 등 대형 엔터테인먼트 기업들까지 게임 시장에 진출하고, 생성형 인공지능(AI)을 활용해 게임을 개발하는 신규 개발사들까지 유입되면서 경쟁은 더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EA는 장기적인 투자와 혁신에 집중하기 위해 비상장 전환을 추진했다는 입장이다. 앤드루 윌슨 EA CEO는 생성형 AI를 EA의 핵심 성장축으로 지목하고 관련 투자를 확대하겠다는 계획을 밝힌 바 있다. 윌슨 CEO는 "새로운 파트너들은 스포츠·게임·엔터테인먼트 분야에서 폭넓은 경험을 보유하고 있으며, EA의 장기 비전에 강한 신뢰를 갖고 있다"고 했다. 현재 e스포츠 월드컵을 개최하고 있는 사우디의 투자와 맞물려 EA가 e스포츠 사업 확장에도 속도를 낼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일부 애널리스트는 EA가 불확실성이 큰 신규 게임 개발과 제작보다 수익화에 주력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했다. EA는 지난해에만 전체 인력의 5%에 달하는 670명을 감원하는 구조조정을 단행했고 올 들어서도 수익성이 낮은 게임 스튜디오를 다수 폐쇄하면서 100명 이상을 해고했다. EA의 현금 인수를 결정한 컨소시엄은 JP모건으로부터 받은 대출 200억달러를 합쳐서 자금을 조달했는데, 업계는 EA가 게임으로 창출한 수익을 신규 게임에 투자하지 않고 200억달러 규모의 부채 상환에 사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앞서 마이크로소프트(MS)는 2023년 대형 게임 개발사 액티비전 블리자드를 687억달러에 인수했다. 당시 액티비전은 '콜 오브 듀티'와 같은 블록버스터 IP를 보유하고 있었지만, 신작 성과가 기대에 못 미쳐 주가가 흔들리던 중이라 MS에 인수되는 방안을 선택했다. MS는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구독과 스트리밍 사업 확장 기회로 보고 투자를 단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