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진 네이버 창업자 겸 이사회 의장은 은둔의 경영자로 알려진 '조용한 리더'로 통하지만, 결정력이 필요할 땐 강하게 밀어붙이는 '뚝심 리더십'으로 유명하다. 그가 또 한 번의 뚝심을 발휘했다. 네이버파이낸셜과 세계 3위 가상자산거래소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가 주식교환을 통해 손잡기로 한 것이다. 이는 네이버(우선주 포함 75%)의 네이버파이낸셜 최대주주 자리를 송치형 두나무 회장에게 내주는 지배구조 재편이다. 송 회장은 현재 두나무 주식 25.53%를 지닌 최대주주다.

업계에서는 향후 네이버파이낸셜과 네이버의 합병 시나리오까지 제기하고 있다. 이 시나리오가 현실화되면 송 회장은 이 의장(3.7%)보다 더 높은 약 5% 이상의 네이버 지분율을 갖게 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이 의장이 지난 3월, 7년 만에 회사에 복귀한 후 사업 구조를 뒤흔드는 '게임 체인저'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이를 통해 미래 성장 동력과 후계 구도 문제를 해결하려는 모습이다.

앞서 지난 25일 네이버는 두나무와 포괄적 주식 교환을 논의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번 계약은 네이버파이낸셜이 신주를 발행해 두나무 주주들에게 주고, 그 대가로 두나무 주주들이 보유한 주식을 네이버파이낸셜이 소유하게 되는 방식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장에서는 네이버파이낸셜의 기업가치를 3조~7조원, 두나무의 비상장 기업가치는 12~15조원가량으로 보고 있다.

그래픽=손민균

◇ 네이버·네이버파이낸셜 합병하면 송치형 지분이 이해진보다 많아져

이론상으로는 송 회장이 단순히 네이버파이낸셜과의 결합만을 보고 이 의장의 손을 잡았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국 나스닥에 상장될 때 기업가치를 더 높게 인정받고 시너지를 기대할 수 있지만, 두나무의 기업가치가 더 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 의장이 송 회장에게 1차적으로 네이버파이낸셜 최대주주에 오르는 데 이어 2차로 네이버의 주요주주이자 핵심 일원으로까지 발돋움하는 제안을 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온다.

현재 네이버파이낸셜과 두나무 모두 비상장사라 두 기업의 가치 산정에 따라 합병 비율도 달라진다. 두 회사는 합병비율과 방식에 대해서는 아직 협의 중이라는 입장이다. 다만, 일각에선 두나무의 최대주주인 송 회장이 네이버를 제치고 네이버파이낸셜의 최대주주가 되는 방향으로 지분교환이 논의되고 있다고 한다. 두나무의 기업가치가 네이버파이낸셜보다 높게 측정되며 최대주주가 가능해지는 것이다. 여기에 한 단계 더 나아가 향후 네이버와 네이버파이낸셜이 합병할 시나리오까지 제기되고 있는데, 이 경우 송 회장은 이미 확보한 네이버파이낸셜 지분으로 네이버 주요주주로 이름을 올릴 수 있게 된다.

한 업계 관계자는 "두나무의 최근 연도 매출, 영업이익, 순자산을 고려할 때 송 회장 입장에서는 (네이버의) 최대주주라는 당근 없이는 빅딜에 응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네이버와 네이버파이낸셜이 합병한다면 송 회장의 네이버 지분이 이 의장보다 많은 5%선이 될 것으로 예상되고, 이 경우 두 사람이 함께 경영할 수도 있게 될 것"이라고 했다.

이러한 시나리오가 제기되는 이유는 이 의장이 지분 확보에 집착하는 경영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현재 이 의장은 네이버 창업자임에도 지분율이 3.72%로 국민연금(8.98%), 블랙록(6.05%)에 이은 3대 주주다. 한때 이 의장의 네이버 지분율이 10%대였던 적도 있지만, 그는 줄곧 지분에 연연하지 않았다. 그는 총수(공정거래법상 '동일인')로 지정된 2017년 당시에도 김상조 전 공정거래위원장을 찾아가 본인의 낮은 지분을 언급하며 네이버를 '총수 없는 대기업'으로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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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이버, 두나무 손잡으면 수익·기술 확보 가능

이 의장이 네이버의 지배구조를 뒤흔들면서까지 송 회장과 손을 잡으려는 이유는 미래에 대한 위기의식 때문이다. 네이버는 검색, 쇼핑, 페이, 웹툰 등을 아우르고 있지만 미래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현재 검색 포털의 영향력이 축소되고 있다. 네이버의 검색 관련 수익 비중은 2020년만 하더라도 50%를 웃돌았지만, 지난해 기준으론 37%에 그치고 있다. 쇼핑 역시 국내에서는 쿠팡이라는 막강한 경쟁자가 버티고 있다. 인공지능(AI) 사업도 글로벌 빅테크에 밀리고 있다. 지난해 네이버웹툰이 미국 나스닥에 상장됐고 2022년에는 미 중고 패션 플랫폼 포쉬마크를 인수했지만, 그룹의 신성장동력으로 밀기엔 역부족이다. 이 의장이 올해 회사에 복귀한 후 성과 중심 인사 제도인 레벨제를 도입한 것은 그가 느끼는 위기감을 절실히 보여준다.

이 의장 입장에선 두나무가 수익과 기술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는 대안이자 디지털금융 플랫폼으로 도약할 수 있는 발판이다. 네이버와 두나무가 힘을 합치면 실물, 디지털 경제를 이어 스테이블코인, 암호화폐 유통에서 1위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크다. 코인 지갑과 연동한 오프라인 결제도 가능해진다. 스테이블코인을 발행해 네이버페이에 연동해 스테이블코인의 실물 결제 활용처도 확보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국내 원화 스테이블코인 시장을 선점해, 스테이블코인을 담보로 확보한 예치금을 활용한 운용 수익과 스테이블코인을 담보로 대출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딜이 단기 실적 개선 효과보다는 장기적인 사업 성장 동력을 확보했다는 점에서 주목해야 한다고 말한다.

◇ 서울대 컴공과 선후배 인연… 후계도 염두에 뒀을 듯

이 의장은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하고 카이스트에서 전산학 석사를 받은 엘리트 개발자다. 그는 단순히 기술을 잘 다루기보다는 기술과 미래를 연결하는 기획자로서 탁월한 감각을 보여왔다. 특히 그는 네이버가 큰 도약을 할 때마다 인수합병(M&A) 전략을 써왔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 의장이 만든 네이버컴과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가 만든 한게임을 합병해 만든 NHN이다. 당시만 해도 포털 시장은 야후코리아와 다음이 장악했는데, 이용자가 직접 질문하고 답도 다는 '지식인' 서비스를 시작하며 생활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야후재팬과 라인의 경영 통합도 이 의장이 주도한 것이다.

이번 딜이 가능했던 데는 송 회장과 이 의장의 학연이 있다. 두 사람은 모두 서울대 컴퓨터공학과를 나왔다. 송 회장은 두나무 창업 당시 서울대에서 사무공간을 지원 받아 시작한 만큼 애교심이 남다르다. 여기에 이 의장이 1967년생으로 은퇴와 후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점도 맞물렸다. 송 회장은 1979년생으로 이 의장과 띠동갑이다.

전문가들 역시 네이버파이낸셜의 최대주주가 바뀐다는 것은 단순한 지배구조 변화가 아닌 회사의 전략적 의사결정 권한과 사업 방향성에 실질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주체가 달라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고 있다. 김준익 건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번 합병은 이해진 의장과 송치형 회장이 금융, 가상자산을 매개로 전략적 연합을 구축한 사례로, 단기적으로는 사업 확장 의미가 크지만 장기적으로는 네이버가 차세대 리더십 구도를 어떻게 가져가려고 하는지 맞닿아 있는 움직임으로 해석할 수 있다"며 "이 의장 입장에서는 주주로서 지배력은 약화되더라도 불투명하다고 평가받은 네이버의 미래 성장 동력을 확보함과 동시에 후계 구도에 대한 부담을 덜 수 있는 선택"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