슐로미 코프만 이스라엘 혁신청 부청장./최지희 기자

"이스라엘 스타트업이 보유한 반도체 설계·계측 기술력과 한국 대기업의 제조 역량이 결합하면 세계 시장을 뒤흔들 잠재력이 있다."

이스라엘 혁신청에서 국제 사업 협력을 총괄하는 슐로미 코프만 부청장은 지난 12일 조선비즈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이스라엘은 반도체 설계 분야에서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한다"며 "삼성·LG 같은 한국 기업과 협력하면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스타트업 국가' 이스라엘의 혁신 생태계는 정부의 과감한 투자에서 힘을 얻는다. 그 중심에 있는 이스라엘 혁신청은 매년 약 5억달러(약 7000억원)를 스타트업과 기술 인프라에 투입하며 '국가 벤처캐피털(VC)' 역할을 한다. 투자 방식은 독특하다. 지분이나 이사회 의석을 요구하는 민간 VC와 달리, 아이디어 단계의 초기 스타트업에도 필요한 자금의 최대 80%를 부담한다. 덕분에 창업 초기부터 첫 본격 투자 단계(시리즈A)까지 기업당 최대 600만달러(약 85억원)를 지원받을 수 있다. 조건은 기술의 지식재산권(IP)을 이스라엘에 남겨야 한다는 점이다. 코프만 부청장은 "혁신청이 든든한 초기 투자자 역할을 하면서 민간 VC의 위험 부담을 덜어준다"며 "한국 기업 역시 이 생태계에 뛰어들 기회가 있다"고 설명했다.

그가 한국을 찾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코프만 부청장은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바이오·자동차 산업을 갖춘 나라이고, 이스라엘은 규모는 작지만 딥테크 스타트업이 풍부하다"며 "양국의 강점을 연결해 공동 연구개발과 사업 기회를 확대하려 한다"고 밝혔다. 그는 25년간 외교관으로 활동하며 실리콘밸리가 있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총영사를 지냈다. 청년 시절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근무 경험도 있어 한국과의 인연이 깊다.

이번 방한 기간 그는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등을 만나 양국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코프만 부청장은 "지난 20여년간 '한국·이스라엘 산업연구개발재단'을 통해 212건의 합작 프로젝트를 진행해왔지만, 더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다"며 "앞으로 5년 내 공동 프로젝트를 1000건으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한국 대기업과 이스라엘 스타트업의 매칭을 더 체계적으로 늘려나가겠다"며 "현재도 반도체와 바이오 분야에서 다수 과제가 진행 중이고, 이제는 AI·양자컴퓨팅·스마트 모빌리티 등으로 협력 폭을 넓힐 때"라고 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이스라엘이 '창업 국가'가 된 비결은 무엇이라고 보나.

"하나의 비밀 소스가 있는 것은 아니다. 복합적인 '엔진'이 돌아가고 있다. 우선 우수한 STEM(과학·기술·공학·수학)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군대 내 최정예 기술 부대에서 경험을 쌓는다. 이스라엘은 청년들이 의무적으로 군 복무를 하는데, 기술 부대에서 습득한 실전 경험이 창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20대 후반~30대 초반에 전역한 청년들이 마이크로소프트, 인텔 같은 글로벌 기업 R&D 센터에서 경력을 쌓다가 창업에 나선다. 이른바 '스핀오프'가 활발히 이뤄지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에는 약 500개의 VC가 활동하고 있고, 이들이 초기 스타트업에 빠르게 자금을 공급한다. 이 같은 선순환 구조가 매년 600~700개의 기술 스타트업을 탄생시키고 있다."

—정부가 지분을 받지 않고 투자하는 구조가 독특하다. 어떤 방식인가.

"우리는 스타트업의 성장 전 과정을 지원한다. 아이디어 구상 단계부터 투자 단계까지 기업당 최대 600만달러(약 85억원)를 정부 자금으로 받을 수 있다. 정부가 지분을 요구하지 않기 때문에 창업자는 초기 지분 희석 부담 없이 사업을 시작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총 7만달러(약 1억원)가 필요한 아이디어 단계라면 창업자는 1만5000달러(약 2200만원)만 부담하면 되고, 나머지 5만5000달러(7800만원)는 정부가 책임진다.

이 구조는 민간 투자자에게도 유리하다. 정부가 초기 리스크의 상당 부분을 떠안아주기 때문이다. 이 자금은 혁신청이 운영하는 연간 약 5억달러(약 7000억원) 규모의 정부 펀드에서 마련되며, 스타트업·R&D 인프라·파일럿 프로젝트 등 다양한 펀드로 나눠 운용한다. 우리는 실사를 통해 가장 혁신적인 딥테크 스타트업을 발굴하고, 이들을 한국 같은 글로벌 파트너에게 연결하는 역할도 한다."

—한국 기업과 협력해 가장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는 무엇인가.

"네 가지 분야에서 엄청난 잠재력이 있다. 첫째는 양자컴퓨팅이다. 이스라엘은 이 분야에서 작지만 앞선 기술을 보유한 기업이 20여곳이나 있다. 둘째는 반도체다. 이스라엘은 제조 시설(팹)은 거의 없지만 칩 설계와 계측 분야에서는 세계 시장의 절반을 차지할 만큼 강하다. 한국의 제조 역량과 결합하면 완벽한 시너지를 낼 수 있다. 셋째는 바이오 융합이다. 생명과학과 AI를 결합해 새로운 솔루션을 만드는 분야로, 삼성바이오로직스 같은 한국 기업과 협력할 여지가 많다. 마지막은 스마트 모빌리티다. 인텔이 인수한 모빌아이가 현대차와 협력하는 사례에서 보듯, 이스라엘의 센서 기술은 한국 자동차 산업에 필수적이다."

—한국 기업이 이스라엘 스타트업과 협력하려면 무엇부터 해야 하나.

"이스라엘 혁신청을 통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다. 우리는 한국 기업에 맞는 이스라엘 스타트업을 연결해 파일럿 프로젝트(시험 사업)를 추진할 수 있다. 이미 실사와 투자를 마친 딥테크 스타트업을 소개하기도 한다. 양국은 매년 400만달러(약 56억원) 규모의 공동 펀드를 운용해 왔고, 지금도 반도체 분야 공동 프로젝트 제안이 진행 중이다. 이스라엘은 언제든 협력할 준비가 돼 있고, 잠재력은 무궁무진하다."

—문화가 다른 두 나라 기업이 협력할 때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인가. 글로벌 진출을 꿈꾸는 한국 스타트업에 조언을 한다면.

"가장 중요한 건 신뢰를 쌓고 혁신을 공동의 목표로 세우는 것이다. 이미 한국과 이스라엘은 200건이 넘는 공동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좋은 기록이 있지 않나. 조언하는 건 조심스럽지만, 이스라엘 창업가들에게서 배울 점이 있다면 그건 '위험을 감수하는 과감함'이다. 물론 대가가 따르지만, 혁신은 바로 그 과정에서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