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 제미나이

구글의 생성형 인공지능(AI) 모델 '제미나이(Gemini)'가 항생제 내성 원인 규명부터 애플 시리 통합 논의까지 글로벌 무대에서 존재감을 넓히고 있다. 초대형 추론 능력과 멀티모달 성능을 앞세워 엔터프라이즈(B2B) 시장에서는 오픈AI의 챗GPT를 위협하고 있지만, 국내에서는 인지도가 낮고 이용자 수도 경쟁 서비스에 한참 못 미치는 상황이다.

12일 국제학술지 '셀(Cell)'에 게재된 연구에 따르면, 최근 런던 임페리얼 칼리지 연구진은 항생제 내성 유발의 핵심 요인인 '미생물 해적질(Microbial Piracy)' 메커니즘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구글의 'AI 공동 과학자(co-scientist)' 플랫폼을 활용했다. 제미나이 2.0 기반의 이 시스템은 인간 연구자가 수년간 실험해야 할 가설을 단 며칠 만에 도출하며, 항생제 내성 이해와 신속 진단 기술 개발의 가능성을 열었다. 같은 플랫폼은 스탠퍼드대 연구팀이 간 섬유증 치료제 후보 물질을 확인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이 같은 연구 성과는 제미나이가 기업 현장에서도 경쟁력을 확보하는 기반이 되고 있다. 최신 버전인 제미나이 2.5 프로(Pro)는 한 번에 책 수백권 분량에 해당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읽고 분석할 수 있다. 덕분에 복잡한 코드나 규제 서류, 연구 자료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으며, 텍스트뿐 아니라 이미지·영상·음성까지 함께 다루는 '멀티모달' 기능도 강점이다. 또 지메일, 구글 문서, 미트(Meet) 같은 워크스페이스 서비스에 직접 연결돼 이메일 작성, 문서 요약, 회의록 정리 등 업무 생산성도 높이고 있다.

기업용 생산성 도구로 입지를 넓힌 제미나이는 이제 경쟁사까지 고객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특히 모바일 시장 최대 라이벌인 애플이 차세대 시리(Siri) 업그레이드에 제미나이를 도입하기 위해 협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체 개발을 고수해온 애플이 외부 AI 모델 채택을 검토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지난 4월 기준 제미나이의 글로벌 MAU(월간활성이용자수)는 3억5000만명을 돌파했다.

그러나 국내 시장에서 제미나이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앱 분석업체 모바일인덱스에 따르면, 지난달 제미나이 앱의 국내 월간활성이용자(MAU)는 8만8715명으로 집계됐다. 같은 기간 챗GPT 앱은 1200만명에 이르며 대중적 확산에 성공했다. 한국은 챗GPT 유료 가입자 수가 미국에 이어 전 세계 2위에 달한다.

인지도에서도 차이가 뚜렷하다.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9월 초 전국 15∼64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서 생성형 AI 서비스 인지도는 챗GPT(97.0%), 뤼튼(68.4%), 딥시크(61.0%), 제미나이(56.7%) 순으로 나타났다. 특히 전 연령대에서 국산 서비스 뤼튼이 제미나이보다 높은 인지도를 기록했다. 사용 의향은 챗GPT(88.5%)와 제미나이(80.3%) 모두 높게 조사됐지만, 브랜드 존재감에서는 격차가 분명했다.

이노션의 구글 AI '제미나이' 광고 캠페인. /이노션 제공

구글코리아는 이를 만회하기 위해 국내 광고·마케팅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최근 이노션을 통해 진행한 신규 캠페인에서는 제미나이를 대학생의 '올데이 어시스턴트'로 정의하며 학업·콘텐츠 제작·퀴즈 등 다양한 활용 사례를 소개했다. Z세대 아티스트 그룹 '올데이프로젝트'와 개그우먼 이수지의 부캐 '햄부기'를 광고 모델로 기용했으며, 실제 광고 제작에는 제미나이의 영상 생성 기능 'Veo3'가 활용됐다. 이와 함께 구글은 국내 대학생을 대상으로 월 2만9000원 상당의 제미나이 프로(Pro) 플랜을 1년간 무료 제공하는 이벤트도 진행 중이다. 업계에서는 이러한 전략이 장기적으로 잠재적 미래 고객 확보를 위한 포석이라는 평가다.

AI 업계 관계자는 "제미나이는 후발주자임에도 복잡한 데이터 분석이나 추론 능력에서는 GPT보다 낫다는 평가를 받는다"면서도 "다만 압도적인 성능 격차가 없는 만큼, 결국 대중에게 더 친숙하고 브랜드 신뢰도가 높은 AI가 B2B 시장에서도 장기적으로 유리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