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챗GPT

챗GPT 개발사 오픈AI가 영리화 구조 개편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캘리포니아 당국과 노동·시민사회 반발에 부딪히며 본사 이전 가능성까지 내부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혁신의 심장부' 실리콘밸리에서조차 빅테크(대형 IT기업)가 규제와 비용을 피해 떠나는 흐름이 확산하면서, 캘리포니아의 기업 경쟁력과 투자 환경을 둘러싼 논쟁이 다시 불붙고 있습니다.

11일 리서치업체 빌드리모트(Buildremote)에 따르면, 2020년부터 올해 8월까지 캘리포니아를 떠난 기업은 확인된 사례만 196건에 달합니다. LA타임스도 2022년에는 741개, 2023년에는 533개 기업이 순이탈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스탠퍼드대 후버연구소는 2018~2021년 사이 352개 기업이 캘리포니아를 이탈했다고 분석했고, 캘리포니아 공공정책연구소(PPIC)는 2011~2021년 전체 본사의 1.9%에 해당하는 789개 기업이 이전했다고 밝혔습니다. 통계마다 기준과 범위가 달라 수치에는 차이가 나지만, 최근 2~3년간 탈(脫)캘리포니아 흐름이 뚜렷하게 가속화됐다는 점에서는 결론이 같습니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오픈AI 역시 지난해 말 영리화 구조 개편을 발표한 뒤 강한 역풍에 직면했습니다. 캘리포니아 법무장관은 챗GPT 안전성 조사를 시작했고,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는 "비영리 지위로 혜택을 본 기업이 이제 막대한 수익만 추구한다"며 반발했습니다. 오픈AI는 뉴섬 캘리포니아 주지사 측근인 라폰자 버틀러 전 상원의원을 자문위원으로 영입하고, 비영리단체 지원 기금 5000만달러를 약속하며 진화에 나섰지만 갈등은 수그러들지 않았습니다. 오픈AI 대변인은 "본사 이전설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지만, 경영진 내부에서 캘리포니아 밖 이전 시나리오를 논의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업계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오픈AI 사례는 예외가 아닙니다. 이미 수많은 대기업들이 캘리포니아를 떠났습니다. 오라클은 2020년 본사를 텍사스 오스틴으로 옮겼고, 테슬라와 스페이스X도 이후 같은 선택을 했습니다. 휴렛팩커드엔터프라이즈(HPE), 증권사 찰스 슈왑(Charles Schwab), 쉐브론, 글로벌 부동산 기업 CBRE, 엔지니어링 컨설팅사 AECOM, 데이터 분석 기업 FICO까지 굵직한 회사들이 줄줄이 본사를 이전했습니다. 최근 나스닥에서 가장 주목받는 팔란티어도 실리콘밸리를 떠나 덴버로 옮겼습니다. 알렉스 카프 최고경영자(CEO)는 당시 "실리콘밸리의 단일문화와 거리를 두고 싶었다"고 말했습니다.

기업들이 남긴 메시지는 분명합니다. 찰스 슈왑의 창업자인 찰스 R. 슈왑은 "여기서 사업 비용은 다른 지역보다 훨씬 높다"고 밝혔습니다. 쉐브론은 "캘리포니아 정책은 비용을 높이고 투자 매력도를 떨어뜨렸다"고 비판했습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는 "캘리포니아는 혁신의 무덤이 됐다"고 공개 발언했습니다. 그는 지난해 스페이스X 본사 이전을 발표하면서 X(옛 트위터)에 "이게 마지막 결정타"라고도 적었습니다. 기업별 사정은 달랐지만, 높은 세금과 비용, 규제 환경이 공통된 배경으로 꼽혔습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레드우드시티에 있는 오라클의 옛 본사이자 현재 사무실 앞을 사람들이 걸어가고 있습니다. 2025년 9월 10일(현지시간) 촬영. 오라클의 공동 창업자이자 회장인 래리 엘리슨은 이날 오라클 주가가 40% 넘게 급등하면서 생애 처음으로 일론 머스크를 제치고 세계 최고 부자 자리에 잠시 올랐습니다./연합뉴스

특히 텍사스는 기업 유치 경쟁에서 가장 적극적인 주로 꼽힙니다. 법인세와 소득세 부담이 낮고 노동 규제도 상대적으로 완화돼 있어 비용 절감 효과가 크기 때문입니다. 안토니오 네리 HPE CEO는 "휴스턴은 인재 확보와 비즈니스에 매력적인 곳"이라고 밝혔습니다. 오라클 창업자 래리 엘리슨도 이후 본사를 다시 테네시로 옮기며 "내슈빌은 가족과 함께 살기 좋은 곳이며 헬스케어 산업의 중심지"라고 말했습니다.

실제 통계에서도 텍사스 쏠림 현상은 두드러집니다. 빌드리모트에 따르면 2020년 이후 캘리포니아를 떠난 기업의 54%가 텍사스를 선택했습니다. 일부는 애리조나·네바다 등 인접 주로 이동했지만, 비용·세금 절감 효과가 큰 텍사스행이 주류였습니다. 팬데믹 이후 원격근무 확산으로 "실리콘밸리에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당위성이 약해진 점도 이 같은 이동을 가속화했습니다.

기업만 떠난 게 아닙니다. 주민 유출도 심각합니다. 미국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2022~2023년 사이 캘리포니아에서 약 70만명이 순유출했습니다. 생활비와 주거비 부담이 주요 원인으로 꼽혔습니다. 기업 이전과 인구 이동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캘리포니아의 경쟁력 약화 우려가 더 커지고 있습니다.

업계에서는 오픈AI의 본사 이전 가능성을 '정치적 압박용 카드'로 해석하면서도, 실제로 실행될 경우 파급력이 크다고 평가합니다. 최근 캘리포니아를 가장 대표하는 혁신 기업으로 꼽히는 오픈AI가 떠난다면 실리콘밸리의 상징성 자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IT업계 관계자는 "테슬라와 오라클에 이어 오픈AI까지 본사를 옮기면 '탈실리콘밸리'라는 인식은 굳어질 수 있다"며 "이는 단순한 주소 변경이 아니라, 인재와 자본 이동을 촉발하는 신호가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과도한 해석을 경계합니다. 캘리포니아는 여전히 세계 최대 벤처투자 자본과 인재 풀이 몰려 있고, 구글·애플·메타 같은 빅테크는 본사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PPIC도 "본사 이전은 전체의 1~3% 수준에 불과하다"며 경제 전반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분석했습니다. 그러나 최근 2년 연속 500개 이상 기업이 순이탈한 기록은 무시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중론입니다.

실리콘밸리는 여전히 세계 혁신의 중심지로 평가받고 있지만, 더 이상 '절대 안전지대'는 아닙니다. 오픈AI의 행보는 캘리포니아가 안고 있는 구조적 부담이 어디까지 심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시험대가 될 수 있습니다. 이번 논란은 단순한 본사 이전 가능성 논의가 아니라, 실리콘밸리의 미래 경쟁력과 정체성을 가르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