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비디아가 영상 제작과 소프트웨어 개발 등 고도화된 인공지능(AI) 기능에 특화된 차세대 AI 반도체 '루빈 CPX'를 공개한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최신 그래픽 D램 GDDR7(7세대 GDDR) 공급에 탄력이 붙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엔비디아의 최신 게임용 그래픽카드인 '지포스 RTX 5090'뿐만 아니라 중국 시장을 겨냥해 설계한 저사양 인공지능(AI) 가속기, 루빈 CPX에 GDDR7이 탑재되기 때문이다.
9일(현지시각) 엔비디아는 내년에 출시될 차세대 AI 반도체 '루빈 플랫폼' 설계를 기반으로 한 루빈 CPX를 공개했다. 엔비디아는 늦어도 올 연말 루빈 CPX를 출하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엔비디아는 "AI 모델이 1시간 분량의 비디오 콘텐츠를 처리하는 데 최대 100만개의 토큰이 필요한데, 이는 기존 그래픽처리장치(GPU)로는 달성하기 어려웠다"며 "(루빈 CPX를 통해) 수백만개의 토큰을 사용하는 소프트웨어 코딩과 비디오 제작에 활용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토큰은 AI가 데이터를 학습 및 생성, 추론하기 위해 이를 분해해 만든 데이터의 최소 단위다.
이번에 공개된 루빈 CPX는 소프트웨어 개발을 위한 코딩뿐만 아니라 고품질 영상 제작, 장문의 사용자 명령어를 이해해 필요한 답을 제시하는 기능을 구현할 수 있는 엔비디아 최초의 AI 반도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루빈 CPX는 모델이 수백만개의 지식 토큰을 동시에 추론하는 대규모 컨텍스트 AI(Context AI)를 위해 특별히 설계된 최초의 GPU"라고 설명했다. 컨텍스트 AI는 사용자의 상황과 대화, 외부 정보 등 맥락을 실시간으로 파악해 더 정확하고 개인화된 답변을 제공하는 AI 기술이다.
엔비디아가 GDDR7을 탑재한 반도체를 연달아 출시하면서 메모리 반도체 업계의 공급이 확대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올해 1월 엔비디아는 GDDR7이 탑재된 게임용 그래픽카드 지포스 RTX 5090을 출시했다. 해당 기기에 GDDR7이 적용되는데, 초도 물량은 삼성전자가 사실상 독점 공급한 것으로 알려졌다. RTX 5090뿐만 아니라 해당 시리즈 제품의 공급 계약을 경쟁사에 앞서 체결한 것으로 전해졌다.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 등도 엔비디아에 GDDR7 출하를 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엔비디아는 중국 시장을 겨냥한 저가형 AI 반도체 'B40'에도 GDDR7을 채용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엔비디아는 미국의 대중국 수출 규제 등으로 성능을 낮춘 AI 반도체를 새로 설계 중이다. 이 가운데, 고대역폭메모리(HBM) 대신 데이터의 전송 속도를 의미하는 대역폭이 낮은 GDDR7을 적용해 성능을 낮추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서는 중국 시장 수요를 고려할 때 올해 엔비디아 B40 칩이 최소 100만대, 내년에는 최대 500만대까지 출하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엔비디아가 공개한 루빈 CPX에는 HBM이 아닌 128기가바이트(GB) GDDR7이 탑재된다. 루빈 CPX 출시일이 내년 말로 정해진 만큼 메모리 반도체 기업은 늦어도 내년 1분기 양산을 개시해 엔비디아에 납품을 시작할 것으로 전망된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GDDR7 수요가 큰 폭으로 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이 엔비디아의 제품 출시 로드맵에 맞춰 양산을 준비하고 있는 만큼 공급량이 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