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베를린에서 지난 5일(현지시각) 개막한 유럽 최대 가전 전시회 'IFA 2025'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트렌드 중 하나는 인공지능(AI) 진화에 따라 로봇, 안경, 홀로그램 등의 기술을 더욱 일상 생활에 유용하게 활용한 신개념 제품의 등장이다. 다수의 기업들이 AI 기능을 소비자 수요에 맞게끔 일상생활, 헬스케어, 스포츠, 업무 등에 접목한 제품을 내놓으며 관람객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특히 한동안 실용성과 무게, 기능 부족 등을 이유로 시장의 외면을 받았던 증강현실(AR) 안경이 전시장 곳곳을 수놓았다. 외형과 무게는 실제 안경과 거의 차이가 없을 정도로 착용감을 개선하는 동시에 연속 사용 시간과 배터리 수명은 큰 폭으로 늘렸다. 여기에 AI를 접목해 실시간 번역, 통역 기능이 고도로 개선되며 사용성을 높였다는 설명이다.
항저우(杭州)에 본사를 둔 AR 제조업체 로키드(Rokid)는 올해 IFA에서 거대언어모델(LLM)을 탑재한 AR 안경을 대거 전시했다. 안경에는 제스처 인식과 음성 명령 기능이 적용돼 있으며 번역, 통역 등도 실시간으로 안경 화면에 투사한다. 화상 회의 및 문서 편집을 통해 업무 커뮤니케이션 및 협업에도 활용할 수 있다.
로이 펑 로키드 제품 디렉터는 "올해 미국 CES에서 선보인 이후 유럽 등지로 사업 기반을 확대하고 있다"며 "AR 안경은 가장 편한 방식으로 언어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IT 기기가 되고 있다. 특히 AI 학습을 통해 사용자와 더 밀접해 식당에서 메뉴를 읽거나, 길을 찾거나 모르는 언어를 지연시간 없이 사용자에게 전달하기 때문에 그 어떤 기기보다 활용성이 높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중국 AR 기업인 겟디(GetD)도 IFA에서 더 다양한 디자인의 안경을 선보였다. 겟디는 챗GPT, 제미나이, 딥시크 등의 앱을 지원하며 145개의 언어를 실시간으로 인식해 통번역 서비스를 지원한다. 음성 인식을 비롯해 음악 재생, 전화통화 기능 등도 지원해 사실상 스마트폰의 기능을 상당 부분 흡수한 형태의 제품으로 재설계했다. 겟디의 AR 안경 제품은 보급형 모델이 한화로 3~4만원 수준이다.
일상 생활에 더 녹아든 로봇 제품들도 전시장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독일의 대표적인 로봇 스타트업인 뉴라(NEURA) 로보틱스은 휴머노이드 기술을 전면에 내세웠다. 뉴라는 전시장에 휴머노이드 로봇 포애니원(4NE1)을 비롯해 가사를 돕는 집사 로봇 '미파'(MiPA)를 공개했다. 전시장에서 포애니원은 손으로 직접 빨래를 분류해 색깔에 맞게 분류하고 있었다. 미파는 선반 위에 어질러진 인형을 손으로 집어 서랍장에 집어넣는 과정을 시연했다.
뉴라 로토틱스는 회사의 궁극적인 목표로 인간의 생활 환경에 녹아들어 가사 노동이나 업무를 덜어주는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로봇 개발을 제시했다. 제시 란트 뉴라 로보틱스 매니저는 "가장 중요한 것은 로봇의 상황 인식과 맥락에 맞는 행동을 통해 사람이 하기 싫거나 할 필요 없는 일들을 대신하는 것"이라며 "휴머노이드는 사람을 더 자유롭게 만들기 위한 것이며 뉴라의 목표도 이와 일치한다"고 설명했다.
소비자의 라이프 스타일에 녹아든 로봇 제품들도 다수 등장했다. 스포츠 로보틱스 전문 기업인 에이스메이트(ACEMATE)는 세계 최초의 테니스 로봇을 선보였는데, 1미터 높이의 소형 로봇은 사용자의 테니스 실력이나 동작 등을 분석해 연습을 돕는다. 여기에 AI 기능을 통해 사용자의 실력 향상을 위한 레슨과 분석 등의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한다.
홀로그램을 활용한 대화형 AI 컴패니언 기술을 선보인 사이브랜(SYBRAN)도 곧 출시할 제품군을 대거 전시하며 관람객의 이목을 끌었다. 텀블러 크기의 작은 홀로그램 박스인 '코드 27'을 전시한 사이브랜은 사용자가 원하는 형상의 홀로그램을 생성해 책상이나 테이블에서 사용자의 생활, 대화 등을 분석해 소통하는 공감형 컴패니언이다. 자체 설계한 8나노 AI 프로세서를 탑재한 이 제품은 홀로그램의 외형과 목소리, 성격 등을 사용자가 원하는 대로 설정할 수 있으며, 업무나 여가, 운동 등 사용자 수요에 맞는 방식으로 사용할 수 있다.
IFA 관계자는 "올해 행사의 가장 큰 흐름인 AI는 그 자체로 킬러앱이 되어 수많은 IT, 가전 기기에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었다"며 "단순한 기능에만 국한돼 있던 가전 제품군에도 챗GPT나 제미나이 등이 들어가 확장성이 생겼고, 데이터 기반의 서비스가 가능해지면서 AI가 더욱 소비자 생활과 밀착하게 됐다는 것이 특징점"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