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이 반도체지원법(CHIPS Act)에 따른 보조금을 현금이 아닌 지분 전환 방식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행정부는 인텔 지분 10% 인수 논의를 계기로, TSMC와 삼성전자 등 다른 반도체법 지원 기업에도 지분 전환을 적용할 가능성을 열어 두고 있다.
로이터통신은 19일(현지시각) 익명의 취재원을 인용해, 러트닉 장관이 미국 내 반도체 공장을 짓는 주요 제조업체에 대해 보조금을 지분으로 전환하는 방안을 내부적으로 논의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대만 TSMC, 한국 삼성전자, 미국 마이크론 등이 이에 해당한다. 다만 인텔 논의가 시작점이며, 다른 기업 적용 여부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다.
전임 조 바이든 행정부 말기에 확정된 기업별 반도체법 보조금은 TSMC 66억달러(약 9조2000억원), 마이크론 62억달러(약 8조6000억원), 삼성전자 47억5000만달러(약 6조6000억원) 등이다. 러트닉 장관은 지난 6월 이 지원금이 "지나치게 너그럽다"고 지적하며, 상무부가 기업들과 재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밝힌 바 있다.
보조금을 지분 전환 방식으로 바꾸는 구상은 사실상 인텔 지원 방식을 확대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인텔에 배정된 109억달러(약 15조원) 보조금 중 일부를 지분으로 전환해 정부가 약 10%의 지분을 확보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현재 인텔의 시가총액이 약 1000억달러(약 139조원)인 점을 감안하면, 10%의 지분 가치는 약 105억달러(약 14조6000억원) 수준이다.
백악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인텔 지분 전환 방안을 논의 중임을 공식 확인했다. 캐롤라인 레빗 백악관 대변인은 "대통령은 국가안보와 경제안보 차원에서 핵심 제조업 리쇼어링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다"며 "보조금을 지분으로 전환하는 방안은 납세자에게도 이익을 돌려주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라고 설명했다. 러트닉 장관 주도로 상무부가 세부안을 조율하고 있으며,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도 협의에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같은 방안이 현실화하면 삼성전자 등 미국 투자를 결정한 해외 반도체 기업은 새로운 부담을 안게 된다. 업계에서는 보조금이 지분 전환 방식으로 바뀌면 투자 조건의 불확실성이 커질 뿐 아니라, 정부가 주요 주주로 참여할 경우 경영 간섭이나 특정 기업 집중 지원 가능성까지 감안해야 한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김혁중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보조금이 지분 형태로 전환될 수 있다는 가능성만으로도 기업들의 미국 투자 계획의 예측 가능성은 크게 떨어진다"며 "정부가 주주로 참여할 경우 배당이나 사업 방향 조정 요구까지 나올 수 있어 한국 기업의 경영 전략에 새로운 변수가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