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공지능(AI)이 글로벌 통신사들의 공통 키워드로 떠오르고 있다. 본업인 ‘통신업’으로 성장 한계에 부딪히자, AI라는 신성장 동력을 내세워 해외 시장에서 기회를 잡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통신사들이 본업이 아닌 AI 분야에서 글로벌 기술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기 때문에 ‘보여주기식 쇼’로 끝날 수 있다는 우려도 적지 않다.
7일 업계에 따르면 이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5′에서 글로벌 통신사들은 AI 사업과 기술을 대거 공개했다.
일본 소프트뱅크는 통신 기지국을 AI 연산에 이용하는 AI랜 솔루션 ‘AI트라스(AITRAS)’를 선보였다. 미국 통신사 버라이즌도 기지국을 활용해 AI 연산 관리를 돕는 솔루션 ‘버라이즌 AI 커넥트’와 5G(5세대 이동통신)망에 엔비디아 AI 엔터프라이즈 소프트웨어 플랫폼을 결합한 AI 네트워크 솔루션을 공개했다.
독일 도이치텔레콤은 “우리는 AI 회사로 변모하고 있다”며 “실리콘밸리 AI 스타트업 퍼플렉시티와 협력해 AI 스마트폰을 개발 중이며, 하반기에 공개하겠다”고 밝혔다. 도이치텔레콤은 자체 개발한 AI 스마트폰을 유럽 지역에서 판매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도이치텔레콤 자회사이자 미국 3대 통신사인 티모바일은 AI 에이전트 ‘마젠타 AI’를 공개했다. 티모바일은 최근 오픈AI와 협력해 개발한 맞춤형 AI 고객 서비스 플랫폼 ‘인텐트CX’도 선보였다. 티모바일은 엔비디아·노키아·에릭슨과 함께 AI랜 혁신센터를 설립하는 등 AI 사업에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
영국 통신사 보다폰은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와 전략적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고객 기반 AI 서비스 개발에 15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다. AI 기반 디지털 서비스를 내세워 유럽과 아프리카 지역으로 시장을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국내 통신사들도 자사가 개발한 AI 서비스의 해외 판로 개척에 나서고 있다. LG유플러스는 MWC 2025에서 AI 에이전트 서비스 ‘익시오’(ixi-O)의 중동 진출을 선언했다. SK텔레콤도 최근 ‘에스터’라는 해외 시장용 AI 에이전트를 공개하고, 연내 미국에서 정식 사업화를 목표로 이달부터 미국에서 비공개 베타 테스트를 시작했다.
국내외 통신사들이 본업 대신 AI에 집중하는 건 성장이 멈춰버린 자국 내수 시장 때문이다. 통신업계 관계자는 “대다수 선진국에서는 이미 기본적인 통신 서비스가 광범위하게 제공되고 있다. 이동통신 가입자 수가 포화 상태에 이르러 신규 가입자 수가 거의 증가하지 않아 더 이상의 성장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신사업인 AI는 자국 시장 뿐 아니라, 해외로도 판을 넓힐 수 있기 때문에 통신사들이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AI가 통신사들의 본업이 아니기 때문에 기술 경쟁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각국 통신사들이 AI 사업을 키워 해외로 나가겠다고 하지만, 결국에는 기술 경쟁력 부재로 국내용 사업에 그칠 것”이라며 “통신사들이 AI 원천 기술이 없으니 외부 업체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해외 진출 시 AI 원천 기술을 가진 기업의 허락이 필요하다”라고 했다.
그러면서 “자체적으로 원천 기술을 키워 차별화된 AI 서비스를 내놓는 글로벌 통신사에겐 AI가 성장의 발판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통신사들은 AI 사업을 통해 빅테크 회사들의 배만 불려주는 이른바 ‘죽 쒀서 개주는 상황’에 처할 것”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