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디스플레이 기업 중 삼성디스플레이와 중국 BOE만이 8.6세대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생산 공장 설립에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가운데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을 그대로 카피하듯이 생산라인 설계를 해온 BOE가 다른 노선을 택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8.6세대 공장은 태블릿, 노트북, 모니터 등 급성장하는 IT OLED 분야에 특화한 공장이다. 그러나 BOE는 IT OLED보다 기존 모바일용 OLED 생산용 장비를 상당수 투입하고 있다. 업계에선 8.6세대 OLED 공장 설립에 필요한 수조원의 투자 비용 대비 고객사 확보에 부담감을 느낀 전략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BOE는 OLED 생산의 핵심 장비인 증착기를 비롯해 1차 장비 발주를 거의 마무리한 상황이다. 다만 장비 발주 내역을 살펴보면 IT OLED에 ‘올인’하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와 달리 스마트폰용 OLED 패널 생산에 필요한 장비를 대거 주문하고 있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최대 고객사 중 하나인 애플과의 협의를 통해 아이패드, 맥북 등 IT OLED 물량 공급 협의를 어느 정도 마쳤지만, BOE는 중국 내수 시장 외에 글로벌 ‘큰 손’ 고객사를 아직 확보하지 못했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중국 기업들은 자국 기업을 중심으로 물량 공세를 퍼부으며, IT OLED 시장에서 점유율을 넓히고 있다. 실제 올해 한국 업체들의 노트북 OLED 시장 점유율은 75.8%로 사상 처음 90% 밑으로 떨어지기도 했다. 다만 고사양 OLED 분야에서는 여전히 삼성디스플레이와의 기술 격차가 큰 것으로 알려졌다.
강성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기술학회 연구위원은 “IT OLED에서 한국 기업이 중국 제조사에 비해 기술력이 2~3년 정도 앞서 있다는 것이 업계 중론”이라며 “애플 등 주요 세트 회사들도 탠덤(Tandem) OLED나 저전력 백플레인 기술(LTPO)과 같은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기업들이 진입하는 데는 보틀넥(병목현상)이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중국 정부의 지원을 믿고 투자금을 물 쓰듯 쏟아붓던 BOE도 8.6세대 공장 설립과 관련해서는 몸을 사리는 추세다. 삼성디스플레이가 대당 8000억원에서 1조원으로 추정되는 일본 캐논토키의 증착기를 대거 도입하는 것과 달리 BOE는 가격대가 더 낮은 한국 선익시스템의 증착기를 도입했다. 선익시스템 증착기에서 생산된 OLED 패널은 애플 아이폰, 아이패드, 맥북 등 주요 제품에는 사용되지 않고 있다.
증착기는 진공 상태에서 유기물을 가열해 패널 기판에 붙여 픽셀을 형성하는 장비로, OLED 패널 공정에서 가장 중요한 장비다. 픽셀을 고르게 붙이는 것이 핵심인데, 삼성디스플레이는 투자 과정에서 애플과의 협의를 거쳐 6세대 OLED 장비에서도 기술력이 입증된 캐논토키 증착기 도입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디스플레이 업계 관계자는 “과거 6세대 OLED 설비 투자시 삼성디스플레이 생산라인을 카피하다시피 했던 BOE가 여전히 삼성디스플레이의 장비 발주 현황과 기술 도입을 지켜보며 투자 속도를 조절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다만 IT OLED 분야에서 애플의 까다로운 요구에 부합하는 결과물을 내놓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한편 삼성디스플레이는 연내 캐논도키로부터 받은 증착기 셋업을 완료하고 2026년 본격 가동을 위한 작업을 차근차근 진행 중이다. 충남 아산사업장 A6 라인에 8.6세대 OLED 생산 라인을 구축하고 있는 삼성디스플레이는 현재까지 2대의 증착기를 들여놓은 상태며 2026년부터 애플 맥북에 공급될 OLED 패널 양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