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이동통신이 무산되면서 정부가 또 다시 통신 시장 경쟁 활성화 방안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올 하반기 알뜰폰 사업자의 이동통신 3사에 대한 망사용료(도매대가) 인하를 추진하고, 오는 12월을 목표로 단통법(이동통신 단말장치 유통구조 개선에 관한 법률) 폐지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그러나 알뜰폰 업계는 실질적인 혜택을 요구하는 동시에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는 상황이다.
◇ “LTE·5G 도매대가 인하 필요”
정부는 지난 3일 관계부처 합동으로 ‘2024년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을 발표하고 가계 물가안정·생계비 경감을 위한 올 하반기 주요 정책과제에 단통법 폐지와 알뜰폰 도매대가 인하를 포함시켰다. 도매대가란, 알뜰폰이 이통사 망을 빌리는 대가로 지불하는 금액이다.
올해는 정부가 알뜰폰 업계를 대신해 도매제공 의무 사업자인 SK텔레콤과 협상하는 마지막 해이다. 업계에선 도매대가 인하 폭이 예년보다 커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통신 업계에 따르면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오는 8월 알뜰폰 도매대가 인하를 목표로 SK텔레콤 등 통신 업계와 음성, 데이터 등의 사용량 만큼 지불하는 3G(3세대 이동통신) 중심의 종량형(RM) 요금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알뜰폰 업체인 큰사람커넥트 박장희 전무는 “과기정통부가 최근 5년간 SK텔레콤과의 협상에서 RM 방식으로 매년 20% 수준의 인하를 했다”면서도 “정작 인하가 필요한 부분은 5G(5세대 이동통신)나 LTE(4세대 이동통신) 중심의 수익배분방식(RS) 요금제다. 이는 지난 5년간 인하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그는 통신비 인하 정책을 위해선 ▲현행 1달 단위에서 1년 단위로 데이터선구매제도 변경 ▲사용하지 않아도 부과되는 최저이용대가 폐쇄 등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말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으로 도매제공 의무제도가 상설화되면서 내년 2분기부터는 알뜰폰 사업자들이 직접 이동통신사와 협상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익명을 요구한 한 업계 관계자는 “사업자끼리 협상이 시작되면 (알뜰폰이) 갑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협상 주도권을 갖고 원가제도 산정 근거자료 분석 등 투명한 검증이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과기정통부가 올해 도매대가 협상에서 끝내지 말고 가이드라인을 미리 마련해 줬으면 한다”고 했다.
◇ 단통법 폐지되면 휴대폰 제조사에만 혜택 돌아갈 수도
올해 과기정통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오는 12월을 목표로 단통법 폐지도 재추진한다. 통신 3사 간 보조금 경쟁을 활성화하고 소비자의 단말기 구입 부담을 줄이기 위해서다. 단통법은 단말기 유통과 보조금 지급을 투명하게 해 부당한 차별 없이 보조금을 받을 수 있도록 2014년 제정됐지만, 오히려 시장 내 경쟁을 저해하고 통신 3사만 수혜를 보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정부와 여당은 올 1월 단통법 폐지 방침을 밝히고 21대 국회에서 단통법 폐지를 추진했으나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자동폐기됐다. 올해 12월까진 마무리하겠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단통법 폐지로 통신 3사 공격적인 마케팅 경쟁을 벌일 경우 피해는 알뜰폰 업계에 고스란히 돌아올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고명수 스마텔 회장은 “국민들이 단말기를 저렴하게 살 수 있다는 측면에선 긍정적이지만, 문제는 독점을 하기 위한 이들의 ‘과당경쟁’”이라면서 “‘단말기 공짜(0원)’와 같은 시장 파괴적인 사례가 나온다면 국민들은 통신요금 자체보다 단말기 요금에 집중하게 된다. 휴대폰 제조사들에게만 혜택이 돌아가는 정책이 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제도적 보완을 통해 단통법을 폐지하더라도 피해가 없도록 따져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올해 들어 알뜰폰 가입자 수는 매달 감소세다. 한국통신사업자연합회(KTOA)의 이동전화 번호이동자 수 현황에 따르면 이통 3사에서 알뜰폰으로 넘어온 번호이동 가입자 수는 올 1월 기준 12만332명에서 6월 6만8729명으로 약 43% 감소했다.
안정상 중앙대 커뮤니케이션대학원 겸임교수는 “알뜰폰 활성화 정책은 도매대가 인하와 같은 한시적이고 주기적인 정책이 아니라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근본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라면서 “자생력을 가질 수 있으면서 통신 3사와 견줄 수 있는 시스템 구축을 위한 설비투자 방안, 단말기 공급·유통의 다변화, 도매대가 산정 방식의 변화, 알뜰폰 규모별 전파사용료 차등 책정 등을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