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리기판 등에 적용할 수 있는 차세대 원자층증착(ALD) 장비 16종을 개발 완료했습니다. 3년 안에 메모리 반도체와 로직 등 첨단 반도체 양산에 본격 투입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주성엔지니어링도 도쿄일렉트론(TEL), 램리서치 등 글로벌 반도체 장비 기업에 견줄 수 있는 기업으로 거듭나겠습니다.”
5일 서울 여의도 금융투자교육원에서 열린 주성엔지니어링 주주 간담회에서 황철주 회장은 이같이 말했다. 지난 1995년 주성엔지니어링을 창업한 황 회장은 세계 최초로 반도체 커패시터에 적용할 수 있는 ALD 개발을 주도했다.
ALD는 반도체 원판(웨이퍼) 표면의 특정 영역에만 얇은 막을 화학적으로 증착하는 기술이다. 기존 증착 기술과 비교해 막질을 더욱 얇게 형성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현재 20㎚(나노미터·10억분의 1m) 이하 D램 양산뿐만 아니라 그래픽처리장치(GPU)와 중앙처리장치(CPU) 등 첨단 로직 공정에서 비중이 확대되고 있다.
황 회장은 세계 최초로 반도체의 미세화 한계를 극복할 ALD 장비를 개발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기존 기판 위에서 1000도 이상 고온 공정을 거쳐야만 구현이 가능했던 ‘3-5족 화합물 반도체’를 400도 이하 얇은 유리기판 위에서 양산할 수 있는 장비를 개발했다”며 “기존 대비 10배 이상 높은 수율로 만들 수 있는 공정을 세계 최초로 개발한 것”이라고 했다.
3-5족 화합물 반도체는 실리콘 대신 주기율표상 3족과 5족에 해당하는 원소를 결합한 것이다. 갈륨질소(GaN), 갈륨비소(GaAs), 인듐인(InP) 등이 있다. 물질 특성상 공정을 미세화하지 않아도 전자 이동속도가 빨라 성능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전력 소모도 줄일 수 있다. 이런 이유로 기존에 널리 활용되던 4족 원소를 대체할 수 있는 재료로 꼽힌다. 이를 활용한 공정 수율이 낮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황 회장은 “재료와 반응 가스의 흐름을 분리하는 TSD(시·공간 분할) 등 주성엔지니어링의 원천 기술을 적용해 수율을 개선했다”고 설명했다.
황 회장은 “ALD 장비로 유리기판을 비롯해 어떤 기판에서도 메모리·비메모리를 쌓아 올릴 수 있게 됐다”며 “차세대 반도체·디스플레이뿐만 아니라 고효율 태양전지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인공지능(AI) 가속기 시장이 성장하며 기존 플라스틱 기판을 대체할 유리기판이 차세대 기판으로 꼽히고 있다. 유리기판은 표면이 평탄해 미세 회로 구현이 용이하며 열과 휘어짐에도 상대적으로 강해 대면적으로 제작이 가능하다. GPU와 CPU, 메모리 반도체 등 여러 칩들이 탑재되는 시스템온칩(SoC)용 기판으로 최적화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황 회장은 “앞으로 반도체를 초미세화하는 형태로 성능과 전력 효율을 개선하는 공정은 한계에 직면해 3D 형태로 패키징하는 공정이 발전할 것”이라며 “중요도가 낮아질 것으로 예상되는 극자외선(EUV) 공정과 달리 반도체를 쌓아 올리는 데 쓰이는 ALD 공정은 수요가 더욱 확대될 것”이라고 했다.
최근까지 반도체 업계는 심자외선(DUV)와 EUV 노광 장비를 도입해 회로 선폭을 미세화하는 형태로 공정이 발전해 왔다. 하지만, 반도체 미세화가 한계에 다다르고, 이를 위해 투입되는 비용 대비 효율이 높지 않아 업계에서는 반도체를 3D 형태로 쌓아 올려 전력 효율과 성능을 끌어올리는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황 회장은 공정 장비 다변화를 통해 주성엔지니어링의 기업가치를 제고하겠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주성엔지니어링은 국내 메모리 반도체 기업에 메모리 제조용 ALD 장비만을 납품하는 기업이라는 인식이 있었다”며 “로직 반도체, 디스플레이, 태양전지 등 다양한 공정에 적용될 수 있는 장비 공급을 본격화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주성엔지니어링은 최근 ALD 장비 경쟁력 강화를 바탕으로 2029년까지 연 매출 4조원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밝힌 바 있다. 지난해 주성엔지니어링의 매출액과 영업이익은 각각 2847억원, 289억원이다. 반도체 경기 침체 여파로 전년과 비교할 때 각각 35%, 76% 감소했다.
한편, 주성엔지니어링은 지난 5월 반도체 사업부문을 인적분할, 디스플레이·태양광 사업부문을 물적분할하는 계획을 발표했다. 연내 주주총회 등을 거쳐 분할 작업을 완료할 예정이다. 황 회장은 “국가 간 장벽 없이 자유 무역이 활성화되던 때와 달리, 기술 패권 경쟁 시대가 도래하며 반도체 사업 등이 갖는 지정학적 리스크도 증대되고 있다”며 “업무 효율을 제고함과 동시에 리스크를 분산하기 위해 이런 결정을 하게 됐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