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의 아이콘’이었던 애플이 인공지능(AI) 대응에서 뒤처지면서 올 하반기 출시될 차세대 아이폰 판매 부진 우려가 제기된다. 애플이 연례 세계개발자회의(WWDC)에서 생성형 AI 시스템 ‘애플 인텔리전스’를 공개했지만, 경쟁사인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가 이미 도입한 AI 기능과 비교해 차별점이 없어 당초 예상보다 아이폰 판매량이 줄어들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폰에 부품을 공급하는 국내 기업들도 올해 사업에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11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LG이노텍과 비에이치 등 애플 협력사들의 주가가 급락했다. 전체 매출액에서 애플이 차지하는 비중이 80% 이상인 LG이노텍은 이날 오전 한때 주가가 8% 가까이 하락했고, 아이폰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패널에 경연성인쇄회로기판(RF-PCB)을 공급하는 비에이치도 장중 10% 이상 주가가 내렸다. 애플이 이날 WWDC에서 발표한 내용에 대한 실망감이 주가에 반영된 것이다.
◇ AI 전략 공개 서두른 애플… “혁신 없었다” 비판 직면
그동안 AI와 관련해 제품이나 서비스, 투자 계획을 밝히지 못한 애플은 혁신에서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았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날 행사에 앞서 구글 등 경쟁사가 생성형 AI 혁신에 앞서가는데, 애플이 이들에 뒤처질 위험에 처해 있다고 지적했다. 구글과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과 올 1월 구글의 AI 모델 제미나이에 의해 구동되는 픽셀8 스마트폰과 갤럭시 S24 시리즈를 출시했다.
애플은 갤럭시S24 시리즈에 탑재한 AI 기능을 앞세운 삼성전자에게 스마트폰 시장 점유율 1위 자리를 내줬다. 시장조사업체 IDC에 따르면 삼성전자의 올 1분기 스마트폰 출하량은 6010만대로, 20.8% 점유율로 1위를 기록했다. 애플의 출하량은 5010만대로 점유율이 17.3%에 그쳤다.
이번 WWDC에서 애플은 자사 제품의 수요를 견인할 AI 기능을 선보일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공개된 애플 인텔리전스의 자동 문장 생성, 요약 등의 주요 생성형 AI 기능은 갤럭시 시리즈 등 경쟁업체에서 과거 발표한 기능과 유사, 애플만의 혁신을 선보이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하게 됐다. 이날 애플 주가는 2% 가까이 하락했다.
◇ 아이폰 수요 견인할 AI 전략 부재… “韓 부품업계 실적 타격 우려”
당초 업계에서는 애플이 공개하는 AI 시스템 등이 아이폰 구매 수요를 자극해 국내 부품업계의 수혜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올해 아이폰 판매량은 2억3500만대로 지난해와 비교할 때 4.2%가량 늘어날 것”이라며 “3년 만에 최대 판매량을 달성할 것으로 전망되고, 2025년에도 아이폰 판매 호조는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하지만 애플의 AI 전략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며 국내 부품업계의 실적이 타격을 입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양승수 메리츠증권 연구원은 “이미 애플의 경쟁 기업에서 생성형 AI 기능이 적용된 모바일 제품을 출시했거나 이를 앞두고 있다”며 “시장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AI 서비스를 선보여 판매량이 저조할 수 있고, 국내 부품업계 실적도 이와 맞물려 부진할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삼성디스플레이와 LG디스플레이는 올해 아이폰16 시리즈에 탑재되는 OLED 패널을 전량 공급할 예정이다. 삼성전기와 LG이노텍은 각각 애플에 탑재되는 적층세라믹커패시터(MLCC)와 카메라모듈을 납품한다. 그밖에 비에이치는 아이폰 OLED 패널에 사용되는 RF-PCB를, 자화전자는 아이폰에 탑재되는 손떨림보정부품(OIS)을 생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