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타이중에 있는 TSMC 공장./AFP연합뉴스

세계 1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회사 TSMC가 인공지능(AI) 반도체 시장의 90%를 장악한 엔비디아 제품의 파운드리 가격을 조만간 인상할 전망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도 TSMC의 이 같은 방침에 동의하면서 엔비디아 GPU(그래픽처리장치) 가격 상승세가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10일 업계와 글로벌 투자은행(IB) 모건스탠리의 최근 분석에 따르면, TSMC는 매출총이익률(매출에서 제조 비용을 뺀 이익률)을 53% 이상으로 유지하기 위해 파운드리 가격을 인상할 전망이다. 시장은 TSMC가 올 2분기 역대 분기 최고 매출을 올릴 것으로 전망하면서도 매출총이익률은 1분기(53.1%)보다 다소 낮은 51~53%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는 2021년 3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대만 정부가 전기요금을 인상한 데다 AI가 불러온 폭발적인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첨단 공정 생산용량을 확대하면서 비용이 늘어난 영향이다.

TSMC의 3대 회장에 오른 웨이저자는 가격 인상을 공언하고 나섰다. 그는 지난주 대만 ‘컴퓨텍스 2024′ 행사에서 “AI 칩을 만들고 싶어 하는 모든 이들이 TSMC와 논의하려 한다”며 “시장에선 TSMC의 가격이 제일 비싸다고 평가하는데, 고객이 얻는 수율을 보면 TSMC 웨이퍼(반도체 원판)의 가성비가 가장 좋기 때문에 아직은 (가격을) 상향 조정할 여지가 있다”고 말했다. 내년 TSMC의 웨이퍼 주문 가격은 올해 9~10월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모건스탠리는 TSMC의 3㎚(나노미터·10억분의 1m) 웨이퍼 평균 가격이 향후 2년간 11% 상승하고 4㎚ 웨이퍼 평균 가격이 3% 상승할 경우 첨단 패키징 공정(CoWoS) 가격은 20%까지 급등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TSMC의 큰손 고객인 엔비디아는 TSMC의 가격 인상 정책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엔비디아의 주력 AI 칩 H200과 올해 출시될 최신 AI 칩 B100은 각각 TSMC의 4㎚와 3㎚ 공정을 사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TSMC는 CoWoS 첨단 패키징 용량의 절반 이상을 엔비디아 AI 칩을 만드는 데 할당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올해 TSMC 매출에서 엔비디아가 차지하는 비중이 10%가량일 것으로 보고 있다.

황 CEO는 지난주 컴퓨텍스 투자자 오찬에서 “TSMC의 웨이퍼 가격은 실제로 너무 낮다”며 “TSMC가 세계 기술 산업에 공헌한 데 비해 재무 성과가 과소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를 두고 찰리 챈 모건스탠리 연구원은 “엔비디아 경영진은 TSMC의 신뢰성을 인정함으로써 위탁생산이라는 회사의 큰 리스크를 줄여나가고 있다”며 “엔비디아는 TSMC발 가격 인상 시기나 규모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CoWoS 용량 가격이 상승할 것이며 TSMC로부터 더 많은 공급을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고 했다.

시장에서 품귀현상을 빚고 있는 엔비디아의 AI 칩은 TSMC의 가격 인상까지 더해지면서 점점 더 비싸질 전망이다. 황 CEO는 올해 출시될 블랙웰 GPU 가격이 3만~4만달러(약 4100만~5500만원)라고 밝혔는데, 글로벌 IB HSBC는 엔트리급 모델인 B100의 가격이 이 수준일 것으로 추정했다. B200 GPU 2개와 CPU를 결합한 GB200 모델은 6만~7만달러(약 8200만~9600만원)로 HSBC는 내다봤으나, 업계에서는 실제 가격이 더 비싸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엔비디아는 이전 세대 H200 GPU의 개당 가격을 최대 4만달러로 책정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를 필두로 TSMC의 주요 AI 반도체 고객사는 가격 인상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파운드리 가격이 오르면서 완제품 가격도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TSMC의 다른 주요 고객은 애플, AMD, 브로드컴, 퀄컴 등이다.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현재 엔비디아의 매출총이익률이 78%를 웃도는 만큼 파운드리 가격 인상 비용을 한동안 완제품에 전가하지 않고 감당할 여지도 있지만, 매년 업그레이드된 AI 칩을 내놓겠다고 발표했으므로 향후 파운드리 가격 인상분은 1년 주기로 새 제품에 자연스럽게 반영될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