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2일 경기 성남시 분당구 웹젠 판교사옥 앞. 민주노총 산하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IT위원회 소속 기업들이 피케팅을 벌였다. 넥슨(스타팅포인트), 스마일게이트(SG길드), 엔씨소프트(우주정복) 등 게임사 노조 뿐 아니라 네이버(공동성명), 카카오(크루유니언), 한글과컴퓨터(행동주의) 등 IT업체들도 웹젠 노조를 응원하기 위해 모였다. 웹젠 노조는 간부 부당해고 문제 등으로 지난 2022년부터 사측과 소송전을 벌이고 있는데, 지난 3월에는 임금·단체협상이 결렬되며 갈등이 심화됐다.
게임업계가 실적 부진으로 보릿고개를 보내고 있는 가운데 노조 리스크로 ‘이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사측은 비용절감, 조직개편 등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고 하지만, 직원들은 고용 불안 등을 이유로 노조 활동에 적극 참여하고 있다. 올해 게임 시장 전망도 밝지 않아 게임사 노조들은 목소리를 더 높일 것으로 보인다.
◇ 웹젠, 노사 임단협 결렬… 엔씨소프트 노조, 경영진 비판
3일 게임업계에 따르면 웹젠 노조는 최근 진행된 임단협에서 사측에 기본급 평균 560만원 인상안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사측은 올해 기본급을 5% 증액하는 안을 제시했다. 이를 전체 임직원 수로 단순 배분하면 1인당 300만원가량 오르는 셈이다.
양측이 입장을 굽히지 않고 팽팽하게 맞서자 4차례 협상 끝에 임단협은 결렬됐고 향후 교섭 일정은 조율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웹젠 직원 수는 현재 500여명인데, 지난 2021년 출범한 노조 소속 직원은 약 100명 수준이다.
엔씨소프트 노조도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엔씨소프트는 최근 비개발·지원 부서 소속 직원을 중심으로 권고사직을 통보했다. 엔씨 노조는 이 같은 소식이 전해지자 전사 이메일을 통해 김택진·박병무 공동대표에게 “지금 당장 권고사직을 멈춰달라”고 요구했다. 노조는 “경영진은 업계 전반이 어렵다고만 하지, 자아 성찰의 모습은 그 어디서도 찾을 수 없다”며 “회사는 직원들을 수술대 위로 올리고 있지만, 우리는 어떤 설명도 들은 바 없다”고 주장했다.
지난 3월 시작된 임단협은 지난달 23일 타결됐다. 노사는 연봉 평균 350만원 인상 잠정안에 합의했고 조합원 1615명 중 1267명(78.5%)이 참여한 투표에서 찬성 1155표(91.2%)로 가결됐다. 구조조정으로 전체 직원(5000명)에서 10%가량을 감축하는 상황에서, 기존 직원들의 기본급은 오른 것이다.
◇ 넥슨·엔씨소프트 이어 넷마블까지 노조 출범
게임업계에서 노조가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것은 실적 악화, 고용 불안 등으로 위기감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게임사들이 스스로 제 발등을 찍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지난 2021년 게임업계에선 실적 호조로 대규모 임금 인상이 이어졌다.
당시 넥슨은 전 직원 연봉 800만원 인상, 크래프톤은 2000만원 인상, 엔씨소프트은 1300만원 인상 등에 나섰다. 웹젠의 경우 평균 연봉 2000만원 인상안을 발표했지만 임금 인상이 고위직에만 집중되고, 일반 직원들은 적었다는 사실이 드러나 직원들의 불만이 오히려 커졌다.
최근 게임 시장이 축소되면서 게임사들은 허리띠를 졸라맸고 직원들의 반발은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2018년 9월 게임업계 최초로 넥슨에 노조가 설립된 이후 스마일게이트, 엑스엘게임즈, 웹젠까지 5년 동안 노조 4곳이 생겼다. 그리고 지난해 엔씨소프트, NHN에서도 노조가 출범했다.
지난달에는 넷마블에도 노조가 생겨 게임업계 ‘3N’에 모두 노조가 생겼다. 넷마블 노조는 “넷마블은 보이지 않는 구조조정 중”이라며 “계약기간이 남은 계약직을 해고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팀을 해체하고, 직원 연봉을 동결했다. 인센티브 정책, 연봉 인상률 등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공정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3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게임 시장 규모는 19조7900억원으로 2022년(22조2149억원) 대비 10.9% 감소했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확률형 아이템 규제 등으로 게임 개발자들은 창작 환경이 악화됐다고 느낄 것”이라며 “게임사들이 경영 악화로 비용 절감 조치를 시행하니 긴장감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다. 김 교수는 “게임 시장 규모에 걸맞게 노사가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