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가 평소와 다르게 오전에 4시간 이상 활동하지 않고 있습니다.”
연로한 부모와 따로 살고 있는 자녀의 휴대폰에 알람이 떴다. 보호자가 미리 설정해 놓은 시간 동안 부모가 집안 가전제품을 사용하지 않자 알람이 간 것이다. 부모가 약을 복용해야 하는 시간이 되면, 냉장고에 내장된 스피커가 이를 알려주고 정수기는 복용에 최적화된 물의 양·온도를 맞춰 놓는다. 냉장고 안 카메라를 통해 자녀들이 소비기한이 지났거나 부족한 식재료를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오는 6월 삼성전자가 통합 연결 플랫폼 스마트싱스에 내놓는 인공지능(AI) ‘패밀리 케어’ 서비스의 일면이다.
‘AI=삼성’ 공식을 내세우며 올해 AI 제품을 잇달아 내놓은 삼성전자가 AI 기기 간 ‘연결’을 강조하고 나섰다. 삼성전자 측은 “새로운 제품을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나온 AI 폰과 AI TV, AI 로봇청소기 등 AI 기기를 연결했을 때 생활의 편리함이 무한대로 확장할 수 있다는 데에 주안점을 두고 있다”고 했다. 올 1월에 나온 갤럭시 AI 스마트폰을 비롯해 삼성의 AI 기기는 TV·냉장고·로봇청소기·세탁건조기·인덕션 등 17개 품목에 달한다. 앞으로는 이들 제품을 한데 연결해 가사를 총괄하는 스마트싱스 애플리케이션(앱)이 ‘디지털 집사’로 활약할 전망이다.
삼성전자는 14일 경기 수원시 영통구 삼성전자 수원 디지털시티 CXI(고객 경험 인사이트) 랩에서 시니어, 1인 가구, 영유아 가구 각각에 최적화된 AI 패밀리 케어 서비스를 공개했다. 2년 전 개관한 5610㎡(약 1700평) 규모의 CXI 랩에는 다양한 주택 형태가 갖춰져 있었다. 소비자들의 일상생활과 유사한 공간에서 삼성전자 기기를 테스트하고 연구하기 위해 만든 곳이다. 랩에는 삼성뿐 아니라 파트너사 제품까지 총 3300개에 달하는 기기들이 서로 연결돼 있어, 전 사업부가 이곳에 모여 실제 제품 경험을 평가하고 협업한다.
김현정 삼성전자 CX그룹장은 “누구나 불편함 없이 최상의 AI를 경험하도록 한다는 것이 삼성의 AI 비전”이라며 “사용자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사이 사용자 각각의 생활 패턴을 학습해 필요할 때 알아서 수고로운 일을 대신 해주는 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AI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머지않은 미래엔 사용자가 따로 설정하지 않아도 서로 연결된 AI 가전들이 사용자 성향에 맞게 새로운 가사 방식을 제안하고 귀찮은 가사 활동을 전혀 안 해도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지향점”이라고 말했다.
이에 삼성전자가 주목한 건 기술 장벽이 상대적으로 높은 시니어 가구다. 삼성전자의 고객 분석에 따르면, AI 관련 제품을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고객은 신혼부부가 51%, 영유아 가구 46%, 1인 가구 34% 순이다. IoT(사물인터넷) 사용률이 높은 젊은 층에 비해 어르신들은 AI 기기 사용에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는 데 착안해 시니어를 위한 AI 돌봄 서비스를 개발한 것이다. 내달부터는 가족들이 부모와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삼성 가전을 연결한 스마트싱스 앱으로 TV, 냉장고, 정수기, 인덕션, 스마트폰의 사용 여부를 확인하고, 원격으로 가전을 제어할 수 있게 된다.
집 안에서 사람이 쓰러지더라도 스마트싱스로 연결만 돼 있으면 원격으로 상황을 즉각 확인할 수 있는 서비스도 오는 10월 추가된다. 스마트워치가 사람이 쓰러지는 걸 센서로 인식하면 AI 로봇청소기가 집 안 구석구석을 돌며 사람이 쓰러져 있는 곳을 찾는다. 그리곤 로봇청소기가 내장된 카메라로 그곳을 집중적으로 비춰 쓰러진 사람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이 밖에도 영유아를 둔 가정에선 부모가 외출하더라도 아이가 집에 오면 부모에게 즉각 알람을 보내 알려주고, 냉장고나 에어컨, 로봇청소기 등을 통해 아이에게 음성 메시지를 남길 수 있다. 또 전등과 각종 기기를 수면 환경에 맞게 연결해 놓으면 버튼 하나만 눌러도 불이 꺼지는 동시에 작동 중이던 에어컨과 공기청정기 등이 수면 모드로 자동 전환한다.
임성택 삼성전자 한국총괄 부사장은 “나이가 많으신 시니어를 돕는 패밀리 케어가 국내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AI 리더십을 확고히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여러 상황에 맞는 AI 시나리오를 계속 선보이고 앱에서 쉽게 적용할 수 있게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기기 간 초연결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커진 만큼 삼성전자는 가전 기기 자체에 보안을 대폭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종민 삼성전자 CX·MDE(고객 중심 멀티 디바이스 경험)센터장(부사장)은 “모바일 보안용으로 처음 개발된 삼성 보안 솔루션 녹스가 이젠 가전에도 적용되고 있다”며 “가전이 개인화될수록 점점 더 개인정보가 많이 수집돼 최상위 등급의 보안 인증을 주요 가전제품에 받고, 보안 우려가 있는 클라우드가 아닌 온디바이스(내장형)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처리하려고 노력 중”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