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성형 인공지능(AI) 열풍의 최대 수혜주로 불리던 엔비디아 주가가 최근 폭락하면서 AI 반도체 시장의 성장성에 대한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엔비디아발(發) 버블이 걷히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9일(현지시각) 뉴욕 증시에서 AI 랠리를 이끌어온 엔비디아의 주가가 전 거래일 대비 10% 폭락, 회사 역사상 가장 큰 낙폭을 보였다. 표면적으로는 AI 서버 시장에서 이목을 끌었던 슈퍼마이크로(SMCI)의 1분기 실적이 부진할 것으로 예상되자 AI 반도체 열풍에 올라탔던 투자자들이 매도에 나서 엔비디아의 주가 급락으로 이어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슈퍼마이크로는 엔비디아로부터 그래픽처리장치(GPU)를 공급받아 서버를 만드는 고성능 컴퓨팅 기업이다.
◇ 엔비디아 독주 체제 지속될까… 커지는 의구심
이번 주가 폭락을 계기로 AI 반도체 시장의 70~80% 수준을 장악하고 있는 엔비디아 독주 체제가 지속 가능할지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AI 반도체의 공급 체계를 살펴보면 엔비디아의 구조적인 취약성을 확인할 수 있다. 엔비디아는 AI 인프라의 핵심인 GPU 설계를 담당하고 있는데, 생산은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회사인 TSMC에 의존하고 있다.
최근 TSMC가 올해 반도체 시장 성장률을 하향 조정하면서 설비투자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것이 엔비디아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지난 1년간 엔비디아의 GPU 생산은 TSMC의 제한된 생산능력을 최대치로 활용해 왔지만,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적어 IT 업계 전반에 ‘병목 현상’이 벌어졌다.
파운드리업계 관계자는 “TSMC는 대만을 비롯해 일본, 미국 등에 신공장을 건설 중이지만, 실제 양산에 돌입하기까지는 수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며 “TSMC가 올해 설비투자에 보수적인 전략을 취하면서 당분간 GPU 병목 현상은 해결되지 않을 전망”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반도체 노광장비를 독점 생산하는 ASML이 지난 17일 발표한 올 1분기 신규 수주액(36억유로)은 시장 전망치(54억유로)를 33% 넘게 하회했다. ASML의 발표 다음 날 TSMC는 파운드리 시장 성장률 전망을 20%에서 10%대 초반으로 낮춘다고 알렸다. 하장권 이베스트투자증권 연구원은 “ASML의 실적 부진과 TSMC의 성장 전망 하향에 이어 SMCI가 AI 반도체 업종의 거품 우려를 재점화했다”며 “여기에 이란 폭격 이슈가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를 자극하는 등 악재가 혼재돼 엔비디아를 비롯해 ARM(-16.9%), AMD(-5.4%), 마벨테크놀로지(-4.8%) 등 반도체주 매도세가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 ’GPU 견적서’ 받고 놀란 빅테크… 엔비디아 대체재 모색
엔비디아 GPU를 기반으로 AI 데이터센터 설립을 추진해 온 IT 기업들이 실제 ‘견적서’를 받아 들고 막대한 비용 문제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국내 최대 인터넷 기업인 네이버 관계자는 “엔비디아의 주력 AI 칩인 H100, A100 같은 고가 GPU로 생성형 AI 서비스를 진행할 경우, 인프라 구축 비용이 당초 예상보다 월등하게 높아 언제쯤 수익 실현이 가능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네이버는 엔비디아 GPU를 대체하기 위해 인텔, 삼성전자 등과 협업을 진행 중이며 일부 영역에서는 의미 있는 비용 절감 효과를 거뒀다고 밝혔다.
엔비디아 GPU의 전력 소모량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엔비디아 GPU를 필드 테스트 중인 기업들 사이에서 전력 소모 비용이 고민거리로 떠오른 것이다. 엔비디아의 대표적인 프로세서인 A100와 H100는 각각 400와트(W), 700W의 전력을 소모한다. 데이터센터에 이런 프로세서가 수만장에서 수십만장이 필요하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엔비디아 GPU로 데이터센터를 구성한다고 가정하면 2027년에는 전 세계 데이터센터 전력 소모량이 네덜란드, 아르헨티나, 스웨덴의 연간 전력 소모량과 맞먹는 85~134테라와트시(TWh)까지 증가할 것”이라며 “저전력 프로세서 없이는 늘어나는 AI 수요를 맞출 수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