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AI) 반도체 시대가 열리자 반도체의 신호 전달 속도를 높이면서 전력 효율까지 개선할 수 있는 ‘유리기판’이 차세대 반도체 기판으로 떠오르고 있다. 반도체 기판은 반도체 칩과 컴퓨터 메인보드를 연결하는 부품인데, 현재는 플라스틱 계열 소재가 주로 사용된다. 하지만 플라스틱 계열 소재는 표면이 거칠어 미세 회로 형성이 어렵다. 반면 유리기판은 표면이 평탄해 미세 회로 구현이 용이하며 열과 휘어짐에도 상대적으로 강해 대면적으로 제작이 가능하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인텔과 AMD 등 글로벌 반도체 회사들이 유리기판 도입을 추진 중이며, 국내에서는 삼성전기와 LG이노텍, 앱솔릭스가 반도체 기업에 납품을 목표로 유리기판 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유리기판 양산에 투입되는 소재와 부품, 장비 회사들도 시장 개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 인텔·AMD 유리기판 도입 추진… 삼성전기·LG이노텍도 개발 나서
인텔은 유리기판에 10억달러(약 1조3000억원)를 투자해 오는 2030년까지 상용화를 목표로 세웠다. AMD는 반도체 기판 제조사들과 유리기판 성능 평가를 진행하는 등 공급사를 물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업계는 이르면 2026년부터 인텔과 엔비디아, AMD 등의 AI 가속기와 서버용 중앙처리장치(CPU) 제품에 선제적으로 유리기판이 적용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기업 중에서는 삼성전기와 SKC 자회사 앱솔릭스, LG이노텍이 유리기판 개발에 나서고 있다. 삼성전기는 세계 최대 IT 전시회인 ‘CES 2024′에서 오는 2026년 양산을 목표로 올해 세종사업장에 유리기판 파일럿(시험) 라인을 구축하고 내년에 시제품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앱솔릭스는 유리기판을 생산하기 위해 2억4000만달러(약 3000억원)를 투자해 미국 조지아주에 생산공장을 세웠다. 앱솔릭스는 내년에 대량 양산 체제를 구축할 예정이다. 문혁수 LG이노텍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진행된 LG이노텍 주주총회 행사장에서 기자들과 만나 “주요 고객인 미국의 반도체 기업에서 유리기판에 관심이 많다”며 “(유리기판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했다.
◇ 필옵틱스·HB테크놀러지, 유리기판 양산용 장비 시장 개척
국내 반도체 소부장 기업들도 유리기판 시장 개척에 공을 들이고 있다.
반도체·디스플레이 광학장비 제조업체인 필옵틱스는 지난달 유리기판 위에 반도체 회로를 그려 넣기 위한 글래스관통전극(TGV)을 구현하는 장비를 출하한다고 발표했다. 필옵틱스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레이저 가공 기술을 유리기판 제조에 적용했다고 설명했다. 반도체장비 전문업체인 HB테크놀러지도 유리기판 양산용 검사·리페어 장비 3대를 납품한 것으로 알려졌다.
반도체 소재 기업인 와이씨켐은 지난해 반도체용 유리기판 핵심 소재 3종을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와이씨켐은 고객사의 연구개발(R&D) 평가를 거쳐 올 하반기부터 본격 제품 공급에 나설 방침이다. SKC에 인수된 테스트 소켓 기업 ISC는 앱솔릭스가 생산한 유리기판에 테스트 솔루션을 도입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ISC 관계자는 “앱솔릭스와의 협업을 바탕으로 유리기판 사업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며 “앱솔릭스가 유리기판을 생산하면 성능을 검증하는 테스트 솔루션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