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알뜰폰 시장에 난립한 50여개 중소 알뜰폰(MVNO)에 대한 지원을 줄인다. 알뜰폰 시장에서 옥석 가리기에 나서야 1500만 알뜰폰 이용자에 대한 개인정보 보호와 통신비 인하 효과를 높일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중소 알뜰폰에 제공한 전파사용료 전면 감면을 내년부터 점진적으로 부과하고, 망 사용료(도매대가) 산정을 통신사와 알뜰폰 사업자 간 개별 협상으로 바꾼다.
27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에 따르면 중소·중견 알뜰폰 사업자에 대한 전파사용료 감면을 올해까지 연장하고, 내년부터는 점진적으로 부과하는 전파법 시행령 개정안이 지난 19일 국무회의를 통과해 시행됐다.
전파사용료는 전파를 사용하는 대가로 통신사가 부담하는 비용을 말한다. 1회선당 연간 5000원 정도를 낸다. 알뜰폰 업계 무선 회선 수가 1500만개인 걸 감안할 때 알뜰폰 업계가 연간 부담하는 전파사용료는 750억원에 달한다. 정부는 2012년 알뜰폰 도입 이후 2020년까지 모든 알뜰폰 사업자의 전파사용료를 감면한 바 있다.
◇ 육성에서 자생력 키우기로… 정부 알뜰폰 정책 전환
상황이 바뀐 건 2020년부터다. 통신 3사 자회사가 알뜰폰 시장의 50% 가까이를 점유하고 있다는 통계가 나오면서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정부가 통신 3사 자회사에 지원할 필요가 있느냐"라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실제 2022년 말 기준 알뜰폰 자회사를 포함한 통신 3사의 국내 통신 시장 점유율은 95%에 달한다. 통신 3사가 자회사를 통해 알뜰폰 시장까지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이에 정부는 2021년부터 통신 3사 자회사와 외국기업 계열사에 대한 전파사용료 감면을 없애기로 결정, 그해부터 감면 비율을 점진적으로 줄이기 시작했다. 정부는 지난해부터 대기업 계열사 15개, 외국기업 계열사 9개에 전파사용료를 전액 부과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전체 알뜰폰의 70%를 차지하는 54개 중소 알뜰폰은 여전히 전파사용료를 전액 감면받는 상태다. 알뜰폰 육성이라는 정부의 정책 기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중소 알뜰폰이 통신망을 대여해 단순 판매에만 집중하고 있고 서비스센터 부재, 개인정보 관리 취약, 통신 품질 저하 등 문제가 계속됐다. 무조건적인 알뜰폰 육성 대신 자생력을 키우는 방향으로 알뜰폰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 배경이다.
정부는 전파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중소 알뜰폰에 대한 전파사용료 감면을 올해로 마무리하고, 내년부터 점진적으로 부과하기로 결정했다. 정부의 지원을 줄이는 방식으로 사업 및 재무 구조가 탄탄한 알뜰폰만 살아남도록 해 그렇지 않은 알뜰폰은 자연스럽게 도태되도록 한 것이다.
◇ 망 도매대가 협상도 개별로… 업계 "지원 축소 넘어 사실상 규제"
사업자 간 망 도매대가 개별 협상 역시 마찬가지다. 알뜰폰은 통신망을 보유한 통신사로부터 얼마나 낮은 가격으로 통신망을 빌려올 수 있느냐에 따라 사업 경쟁력이 판가름난다. 조금이라도 더 낮은 가격으로 통신망을 빌려와야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통신망을 보유한 통신사 입장에서는 비슷한 통신 서비스를 판매해 사실상 경쟁사인 알뜰폰에 최대한 비싸게 통신망을 제공하고 싶어한다.
정부가 통신사가 지정된 방식으로 도매대가를 결정할 수 있도록 '도매제공 의무 제도'를 강제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협상력이 약한 알뜰폰을 돕기 위해 정부가 대신해 통신사와 협상에 나서는 셈이다. 하지만 2022년 9월 도매제공 의무 제도가 일몰되면서 법적 효력이 사라졌다. 그럼에도 정부가 알뜰폰 육성 기조를 유지하면서 통신사는 알뜰폰에 이전과 비슷한 수준의 도매대가율을 제공하고 있다.
정부는 내년 2분기부터 망 도매대가 산정방식을 사업자 간 개별 협상으로 전환할 계획이다. 정부가 통신사와 알뜰폰의 망 도매대가 협상에서 빠지겠다는 일종의 선언이다. 앞으로 알뜰폰은 통신사와 직접 망 도매대가를 협상하거나 알뜰폰 협회를 통해 망 도매대가를 결정해야 한다. 이는 가입자가 적어 협상력이 약한 알뜰폰은 자연스럽게 비싼 가격으로 통신망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결국 자연스럽게 시장에서 도태되는 결과를 만든다.
알뜰폰 업계는 정부의 이런 기조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전파사용료 부과와 망 도매대가 개별 협상으로 알뜰폰 경쟁력이 위축될 수 있어서다. 알뜰폰 업체 한 관계자는 "전파사용료는 금액 자체보다는 민생 안정을 위한 정부의 지원을 의미하는 상징과 같았는데, 내년부터 전파사용료를 부과한다는 건 더이상 알뜰폰을 지원하지 않겠다는 것과 다름 없다"라며 "도매대가 역시 망 사용료에 대한 원가정보가 없는 상황에서 알뜰폰이 통신사와 공정한 협상에 나서는 건 불가능해 사실상 알뜰폰 사업이 크게 위축될 것 같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