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이 구글코리아와 특별인터뷰를 진행한 모습./구글코리아 블로그 캡처

“알파고가 나오기 전의 기보(바둑이 시작되고 게임이 끝날 때까지의 흑과 백의 모든 위치를 기록한 것)와 지금의 기보는 완전히 다릅니다. 예전의 기보는 이젠 바둑의 역사를 학습하는 용도 외에는 특별한 가치가 없어졌다. 인공지능(AI)이 사람보다 더 완벽한 기보를 만들기 때문에 내용상으로 훨씬 좋기 때문입니다. 향후에는 AI와 협업을 해서 새로운 게임을 만들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19일 구글코리아에 따르면 이세돌 9단은 “바둑은 인생에서 정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인공지능(AI)이 은퇴를 결정한 것에 큰 영향을 미쳤다”며 이같이 밝혔다. 구글코리아는 ‘세기의 바둑’ 대결로 불리는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8주년을 기념해 이세돌과 특별인터뷰를 진행하고 블로그에 ‘AI 시대의 서막을 알렸던 이세돌 vs 알파고, 그 후 이야기’라는 제목의 인터뷰 영상을 올렸다. 이세돌은 알파고 대국을 전후한 심경 변화, AI가 바둑계에 미친 영향, AI 기술의 발전 방향에 대한 생각을 인터뷰를 통해 전했다.

이세돌과 알파고가 맞붙은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는 2016년 3월 9일부터 5일간 진행됐다. 당시 세계 최강으로 꼽혔던 이세돌이 알파고에 3연패를 당하자 전 세계는 충격에 빠졌다. 아무리 AI가 뛰어나다고 해도 무한대 경우의 수를 지닌 바둑에서 인간을 능가하기 힘들 것이라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이세돌은 4국에서 승리했지만 5국에서 다시 알파고에 패했다. 당시 이세돌은 “이세돌이 패배한 것이지 인간이 패배한 건 아니다”라며 “이번 패배로 인류가 인공지능에 무릎을 꿇은 것은 아니다”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 이번 인터뷰에서 이세돌은 “1국에선 당황했고 3국에선 그로기(Groggy) 상태였다”며 “제대로 붙어서 진건 2국이었다. 더 열심히 대비했다면 훨씬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줬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이세돌은 구글이 알파고와 대국 제의를 했을때 3분만에 흔쾌히 수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구글 딥마인드가 대국 제의를 했을 때 제가 당연히 이길 수 있다고 생각했다”며 “당시에는 ‘구글에서 이런 AI도 만드는구나’, ‘테스트를 하는구나’ 정도로만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실제로 알파고와 붙어보니 사람과 바둑을 두는 것과 괴리감이 너무 컸다. 완전히 달랐다”며 “‘승부 호흡’ 없이 고민도 없이 수를 두는 것을 보며 정말 당황을 많이 했다. 테니스에 비유하면 사람이 아니라 벽에 테니스 공을 치는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 이후 바둑을 배우는 방식에도 많은 변화가 생겼다. 이세돌은 “처음 바둑을 배우는 수준에서는 예전과 큰 차이가 없지만, 실력이 많이 올라온 다음부터는 AI로 학습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바둑을 배울 시절엔 바둑은 혼자서 고민하고 둘이 만나 하나의 작품을 만들어 내는 예술이라고 배웠다”며 “AI가 나온 이후로는 답안지를 보며 정답을 배우는 것 같아 아쉽기는 하다”고 덧붙였다. 다만 “프로의 입장에서 본 문제일 뿐 아마추어들에게는 더 긍정적인 변화라고 생각한다”며 “어떤 수가 좋고 나쁜지를 AI 기보로 빠르고 효과적으로 학습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세돌은 AI 발전 방향에 대한 자신의 생각도 인터뷰를 통해 전했다. 그는 “기술 개발에 윤리적인 시각을 잘 반영해 ‘공공선’을 위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면 좋겠다”며 “제대로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는 어떤 문제가 발생할지 모르기 때문에 속도 조절이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또 “인간이 AI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든 느끼지 않든 기술은 계속해서 발전해 나갈 것이기 때문에 벌써부터 AI를 두려워하는 시각으로 바라봐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며 “미국과 중국 같은 나라들이 경쟁적으로 AI 기술을 발전시키는 상황에서 우리만 막연한 두려움 때문에 망설인다면 기술 발전을 못 따라가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다. AI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공포는 조금 과한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의견을 밝혔다.

이세돌은 알파고와 대국 3년 뒤인 2019년 11월 은퇴를 선언했다. 당시 이세돌은 “1인자가 돼도 어차피 이길 수 없는 존재가 있다”고 말하기도 했다. 2016년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이후, 여러 바둑 기사가 알파고와 대전을 희망했다. 알파고는 업데이트를 거쳐 2015년 중국계 프랑스 프로기사 ‘판후이’, 2017년 중국 ‘커제’ 등과 맞붙어 완승했다. 구글코리아는 “구글코리아 설립 20주년을 기념해 특별인터뷰 영상을 공개했다”며 “이세돌 9단의 인터뷰가 독자분들께 의미 있는 인사이트를 제공할 수 있게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