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린 말로이 레노버 인프라스트럭처솔루션그룹(ISG) 최고마케팅책임자(CMO·부회장)가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레노버 제공

세계 1위 PC 회사 레노버는 지난달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4′에서 화면 너머 뒤쪽에 있는 사물이 그대로 다 비치는 ‘투명 AI(인공지능) 노트북’을 공개해 화제를 모았다. 19년 전 IBM의 PC 사업을 인수, 8년 만에 PC 시장 선두 자리에 오른 레노버는 2014년 IBM의 x86 서버(대형컴퓨터) 사업부를 인수한 뒤 본격적으로 AI 인프라 시장에 발을 들였다. 슈퍼컴퓨터 시장 점유율 세계 1위, 서버 시장 3위 기업이 된 레노버는 ‘모두를 위한 AI(AI for all)’를 기치로 내걸고 AI 사업에 대규모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도전적인 사업 확장에 힘입어 레노버의 AI 관련 매출은 지난해 22억달러(약 2조9500억원)를 돌파했다.

레노버에서 AI·고성능 컴퓨팅(HPC) 등 인프라 사업을 담당하는 레노버ISG의 최고마케팅책임자(CMO) 플린 말로이 부회장과 수미르 바티아 레노버ISG 아시아·태평양 사장은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코엑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올해부터 레노버의 AI 투자 성과가 잇따라 나올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레노버는 2017년부터 AI 인프라에 12억달러(약 1조5800억원)를 투자했고, 작년엔 10억달러(약 1조3200억원)를 3년간 추가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말로이 부회장은 “레노버는 말로만 AI 기업이라고 외치는 게 아니라, 지난 8년간 많은 자본과 인력을 투입해 현재 AI 플랫폼 80개를 갖추고 있다”며 “올해는 AI와 관련해 놀라운 기술과 신제품을 많이 공개할 예정이니 기대해도 좋다”고 말했다.

지난달 스페인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 최대 모바일 전시회 '모바일월드콩그레스(MWC) 2024' 내 레노버 부스에서 관람객들이 투명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노트북을 살펴보고 있다./뉴스1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AI PC 역시 시장에 선보일 신제품들이 대기 중이라고 했다. 바티아 사장은 “레노버에선 군대 수준으로 수많은 인력이 AI PC에 집중하고 있다”며 “엔지니어들은 이 시장을 선도하겠다는 열망에 불타 노력을 쏟아붓고 있어, 혁신 제품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말로이 부회장은 지난 21년간 HP에서 근무하며 CMO를 역임했고 지난해 레노버로 자리를 옮겼다. 33년 경력의 바티아 사장은 델, 노텔 등에서 아시아·태평양 시장을 담당하다 2016년 레노버에 합류, 아태 지역 데이터센터 사업 확장을 주도해 왔다. 다음은 이들과의 일문일답.

—올해가 전 세계 기업들이 AI에 본격적으로 투자하는 원년이 될 것이라고 했는데.

말로이 부회장 “올해는 모두가 AI에 관해 얘기한다. 마치 15년 전 클라우드 붐을 보는 것 같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는 AI는 빙산의 일각이다. 수면 밑에 엄청난 빙하가 놓여 있는 셈이다. 일각에선 AI 붐이 일시적일 것이란 의견도 있지만, 대부분은 10~20년 넘게 계속 주목받을 기술이라고 본다. 전 세계 다양한 고객과 소통한 결과, 올해는 많은 기업들이 ‘생성형 AI’를 우선순위에 두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에 AI PC 같은 개인용 AI 기기부터 누구나 접속해 이용할 수 있는 퍼블릭 AI, 기업 대상의 프라이빗 AI 시장 모든 곳에 AI 서비스를 도입하겠다는 게 레노버의 구상이다.”

수미르 바티아 레노버 ISG 아시아·태평양 사장이 지난달 29일 서울 강남구 인터컨티넨탈 서울 코엑스에서 조선비즈와 인터뷰 후 포즈를 취하고 있다./레노버 제공

바티아 사장 “레노버 역시 회사 내부에 AI를 도입하면서 끊임없이 도전하고 변화하고 있다. PC 시장에서 1위가 된 것부터 IBM 서버 사업을 인수해 레노버ISG가 계속 성장하고 있는 것 모두 기존 체제에 도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기업이 AI를 도입하고자 할 때 제일 중요한 건 사고방식 자체를 바꾸는 거다. 우리 회사에 필요한 AI 기술이 무엇이고 이 기술로 어떤 사업을 개선할 수 있을지 명확한 진단을 내리고, 변화를 적극적으로 수용하겠다는 마음가짐이 반드시 필요하다.”

—AI 도입과 함께 기업들의 사이버 보안 우려도 커지고 있다.

말로이 부회장 “AI 시대에 보안 문제는 모두 데이터로부터 시작된다. 레노버는 데이터 보호를 위해 고객사의 보안 인프라와 통합이 될 수 있도록 협업해 하드웨어에 보안 기능을 내장한다. 물리적으로도 다양한 로직을 심어놓는데, 가령 에지 디바이스를 기존 설치 지역에서 3m 이상 옮기면 전원이 자동으로 꺼지게 하거나, 승인되지 않은 사람이 기기를 조작하면 즉시 암호화되게 하는 식이다.

공급망도 보안에 중요하다. 레노버 제품은 지역별로 회사 자체 제조 공장에서 현지 시장에 맞게 생산된다. 유럽(헝가리) 공장에서는 금속 가공부터 메인보드까지 레노버 기술의 98%를 자체 생산하고 있고, 미주 시장 제품은 멕시코 몬테레이 공장에서, 아시아 제품은 중국 선전에서 생산하는 등 현지 공급망을 갖춰 안정성을 확보하되 글로벌 보안 프로세스를 따르고 있다.”

—10억달러 규모의 AI 인프라 투자 중 올해 가장 집중하는 분야는 무엇인가.

말로이 부회장 “가장 많은 금액이 투입되는 건 차세대 인프라와 AI PC 사업이다. 차세대 기술 개발과 동시에 협력사와의 생태계 조성에 많은 투자가 이뤄질 예정이다. 고객 상황에 맞게 레노버의 차세대 기술이 잘 작동하도록 하려면 제3의 협력사와 생태계를 이뤄 서비스를 제공해야 한다. 전 세계에 레노버 고객사가 워낙 많다 보니 맞춤형 AI 컨설팅을 위한 자체 전문가팀을 구축하고 있는데, 이 역시 투자에서 큰 부분을 차지할 전망이다.”

—작년 국내 AI 스타트업 딥브레인, 리벨리온과 협업 관계를 맺기도 했다.

바티아 사장 “레노버는 50곳 이상의 AI 스타트업과 손잡고 170개 이상의 AI 지원 솔루션을 개발했다. 레노버의 AI 솔루션은 제조, 물류, 스마트시티, 의료, 금융 등 여러 산업에 걸쳐 적용돼 다양한 기업들과 협업이 필수적이다. 여전히 협업을 검토 중인 업체 리스트는 많지만, 중요한 건 양보다 질이다. 피상적인 사업 협력이 아닌, 바로 현장에 도입할 수 있는 구체적인 솔루션 개발을 목표로 기술검증(PoC) 과정을 매우 엄격하게 거친다. 레노버와 타사 엔지니어 간 협의부터 마지막 서비스 도입 검토까지 시간은 좀 걸리지만 생태계를 계속 키워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