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 한 전자상가에 입점한 휴대폰 판매점./연합뉴스

정부가 통신사 간 보조금 경쟁을 촉진하기 위해 번호 이동 '위약금 대납'을 추진하면서 통신 업계가 기대감을 나타내고 있다. 번호 이동 위약금 대납은 약정이 남은 SK텔레콤 가입자가 KT로 번호를 이동할 때 KT가 보조금 명목으로 약정 위약금을 대신 지급하는 걸 말한다.

위약금 대납은 통신사가 경쟁사 가입자를 뺏어올 수 있는 직접적인 마케팅 수단으로 시장 경쟁 활성화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위약금 대납을 할 정도로 자금력이 부족한 알뜰폰은 통신 3사와의 경쟁에서 가입자를 뺏길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22일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전날 방통위는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 시행령 개정안을 보고했다. 단통법을 폐지하기 위해서는 법 개정이 필요한 만큼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선제적으로 대응하겠다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방통위의 단통법 시행령 개정은 윤석열 대통령의 "단통법 폐지 이전이라도 사업자 간 마케팅 경쟁 활성화를 통해 단말기 가격이 인하되도록 방안을 강구하라"는 주문에 따른 후속 조치다.

◇ 가입유형별 지원금 차별 지급, 번호 이동 활성화

단통법 시행령 개정은 통신사가 가입유형별 지원금을 차별적으로 지급하지 못하게 한 규정을 없앤 게 핵심이다. 통신사는 단통법에 따라 번호이동, 신규가입, 기기변경 등에 동일한 지원금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으로 예외 기준이 신설되면서 통신사가 가입유형에 따라 자율적으로 보조금을 정할 수 있다. 가령 그동안은 기기변경과 번호이동에 똑같이 40만원씩을 지급해야 했다면 앞으로는 기기변경 30만원, 번호 이동 50만원 등으로 차별 지급해도 된다는 의미다.

가입유형별 지원금 차별 지급이 가능해지면 번호이동에서 위약금 대납이 가능하다. 통신사는 위약금 대납을 '전환비용'이라고 하는데 전환비용을 보조금 명목으로 추가 지급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통신사와 체결한 24개월 약정이 끝난 후 통신사를 갈아타는 번호이동에 나선다. 약정 기간 내 번호를 이동할 경우 적게는 2만~3만원에서 많게는 20만~30만원에 달하는 위약금을 내야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통신사가 새로운 가입자에게 위약금에 해당하는 전환비용을 지원하면 가입자 입장에서는 통신사를 쉽게 갈아탈 수 있다. 정부는 번호이동을 통신 시장의 경쟁 활성화를 가늠하는 수치로 활용한다. 그런데 단통법 이전 연간 1000만건이 넘는 번호이동은 2022년 400만건으로 줄었다. 통신 3사의 과점 체제가 굳어지면서 통신사 입장에서는 마케팅비를 지출하면서 가입자를 확보할 필요가 없어져서다.

◇ 통신 3사 독과점 체제 더 강화될 수도

연간 1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거두는 통신 3사 입장에서는 위약금 대납을 통한 가입자 유치 경쟁에 기대감을 드러내고 있다. 당장은 위약금 대납에 따른 마케팅비 지출이 늘어나겠지만, 위약금 대납은 돈을 쓴 만큼 가입자가 증가하는 가장 확실하고 효과적인 마케팅 수단이기 때문이다. 통신사 한 관계자는 "당장 위약금 대납이 얼마나 늘어날지 알 수 없지만, 마케팅 수단을 제한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가입자를 뺏어오기 위해 번호이동 보조금 경쟁이 시작되면 결국은 소비자들이 더 싸게 휴대폰을 구입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자금력이 약한 알뜰폰과 제4 이동통신사에게는 정부의 위약금 대납 결정이 반갑지 않다. 통신 3사가 마케팅비를 쏟아 가입자를 확보할 경우 통신 3사 독과점 체제가 더욱 굳건해질 수 있어서다. 더욱이 알뜰폰은 가입자 대부분이 자급제폰(가전매장 등에서 구입할 수 있는 통신 개통이 안 된 휴대폰)으로 무약정 요금제를 쓰는 만큼 통신 3사의 보조금 공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김주호 참여연대 민생경제팀장은 "위약금 대납 같은 보조금 경쟁이 일어날 경우 가장 피해를 입는 건 알뜰폰과 제4 이통사 같은 신규 참여 업체들"이라고 했다. 정지연 한국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위약금 대납을 통한 보조금 경쟁은 오히려 시장을 혼탁하게 만들어 통신 3사 독과점 체제를 더 강화할 수 있다"라며 "바람직한 방향은 아니라고 본다"라고 했다.

통신 3사 독과점 체제를 견제할 수 있는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이성엽 고려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통신 시장 경쟁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노력은 긍정적으로 보지만, 장기적으로 자금력 있는 통신 3사로 가입자가 더 쏠릴 가능성이 있다"라며 "시행령 개정에 따른 긍정 및 부정 효과를 다양하게 검토해 과점 체제를 해소할 대안도 함께 마련해야 한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