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제품과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 '전자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조선DB·삼성전기 제공

전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전방 수요가 회복되지 않으면서 가전제품과 스마트폰 등에 들어가 ‘전자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적층세라믹콘덴서(MLCC)의 올 1분기 출하량이 감소할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국내 MLCC 1위 삼성전기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MLCC 제조업체들은 인공지능(AI) 기기 시장 확대에 희망을 거는 동시에 자동차용 MLCC 사업에 힘을 쏟고 있다.

20일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1분기 MLCC 출하량은 전 분기 대비 7% 감소한 1조1033억개에 그칠 전망이다. MLCC 생산량 1위국인 일본을 비롯해 한국, 대만, 중국의 출하량이 모두 전 분기보다 줄어들 것으로 예측됐다. 국가별 MLCC 출하량은 일본 5600억개, 대만 2700억개, 한국 1740억개, 중국 1120억개 순으로 예상된다.

트렌드포스는 오는 3월에도 주문이 늘어나지 않으면 MLCC 제조사의 평균 BB(수주액 대비 출하액)율이 기준값(1)보다 낮은 0.89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는 이전 분기보다 3.3% 감소한 수치로, BB율이 1보다 낮을 경우 공장에서 만든 제품의 수가 판매되는 것보다 많아 재고가 쌓였다는 의미다.

AI 서버 수요는 늘고 있으나, 스마트폰, PC, 노트북, 일반 서버 관련 수요는 여전히 약세를 보이고 있다. 전자제품 최대 시장인 중국은 디플레이션(지속적 물가 하락) 압력과 부동산 침체로 소비 수요 회복이 더딘 상황이다. 중국 스마트폰 시장은 지난 4분기부터 중저가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구매 흐름이 개선됐지만, 애플 아이폰 주문량은 올 1분기 20% 가까이 감소했다. 판매 부진에 애플은 중국 시장에서 최신 기종인 아이폰15 가격을 이례적으로 6~8% 낮췄다.

노트북과 범용 서버 역시 미지근한 수요가 이어지고 있다. 세계 MLCC 시장 1위인 일본 무라타는 이달 초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전방 시장에서 불균형한 회복세가 나타나고 있다고 전했다. 오는 2분기에도 전방 수요는 쉽사리 살아나지 않을 것으로 예측된다. 트렌드포스는 “AI 서버와 일부 중국 스마트폰 브랜드 등의 주문이 이어지고 있지만, 노트북과 일반 서버 수요는 미약하거나 보합세를 보일 것으로 예측된다”고 분석했다.

그나마 올 하반기엔 AI 기능을 탑재한 고사양 노트북이 늘어나면서 MLCC 수요가 늘어날 전망이다. 트렌드포스는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을 인텔의 신규 프로세서 메테오 레이크 탑재 노트북은 전력 소비량과 작동 온도가 높아져 더 많은 MLCC가 필요하다”며 “전체 노트북 주문량이 늘지 않더라도 신제품 도입으로 MLCC 수요가 증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전 세계 주요 MLCC 제조사들은 AI 서버용과 자동차용 MLCC 등 고부가가치 분야에 집중하면서 전방 수요 부진에 대응하고 있다. AI 서버엔 일반 서버보다 2배가량 많은 MLCC가 탑재되고 단가도 더 높다. 성장 산업 수요에 대비해 무라타는 최근 470억엔(약 4180억원)을 투입해 MLCC 공장 증설 계획을 세웠다. 전장용 MLCC 매출 비중을 20%까지 늘린 삼성전기는 고부가 MLCC가 들어가는 AI 스마트폰 수요를 기회로 잡고 있다. 삼성전기는 지난달 4분기 실적 컨퍼런스콜에서 “AI 서버를 포함한 신성장 산업 분야와 전장용 MLCC 수요에 적극 대응해 1분기 평균판매가격(ASP) 및 매출이 상승할 것”이라고 말했다.

고의영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범용 MLCC 가격이 반등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1분기 무라타의 매출액은 전 분기 대비 15.7%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반면 삼성전기 매출은 온디바이스 AI 스마트폰과 전장용 MLCC 판매 호조에 힘입어 전 분기보다 2.3%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