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AI를 비롯한 테크 기업들이 '인공지능(AI) 챗봇'에 기억력을 탑재하고 있다. 사용자가 입력한 내용을 기억할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해 답변 시간을 줄이고 정확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사람처럼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한 'AI 비서'의 등장이 눈앞에 다가온 셈이다. 다만 개인정보 침해 등은 극복해야 할 숙제로 꼽힌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최근 오픈AI는 블로그를 통해 "챗GPT가 대화 속 특정 정보를 기억하거나, 챗GPT가 자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기억할지 정할 수 있는 기능을 테스트하고 있다"고 공지했다. 기존에는 한 대화 안에서의 맥락만 기억했지만, 이제는 과거 나눴던 대화 정보를 장기 기억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이용자의 성향이나 가족관계, 거주지 등의 정보를 자동으로 식별하고 저장해 기억을 구축하는 식이다.
앞서 IT 매체 디인포메이션에 따르면 오픈AI는 개인정보나 컴퓨터 설정 권한 등을 이용자에게 넘겨받아 구동되는 'AI 에이전트'를 개발하고 있다. 범용적으로 쓰이는 AI 챗봇을 개인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는 AI 에이전트로 진화시키겠다는 전략으로 해석된다. 챗GPT에 정보를 기억하는 기능을 적용한 것도 AI 에이전트 개발을 위한 포석인 셈이다.
구글도 멀티모달 AI 모델인 '제미나이'를 기반으로 작동하는 개인화된 챗봇 서비스를 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CNBC 등 외신에 따르면 구글은 '프로젝트 엘만(Project Ellmann)'이라는 이름으로 사용자의 사진, 검색 이력 등을 학습해 개인에 맞는 답변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프로젝트 이름은 문학 평론가인 리처드 데이비드 엘만의 이름에서 따왔다.
프로젝트 엘만은 AI를 활용해 사용자가 자신의 인생 이야기에 대한 '조감도'를 얻을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이다. 제미나이를 사용해 검색 결과를 수집하고, 사용자 사진에서 패턴을 찾아내고, 챗봇을 만들고, 개인의 삶에 대해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질문에 답하는 것이 목표라고 한다. 예컨대 구글 포토에서 사용자의 한 사진을 보고 "사용자가 학교를 졸업한 지 정확히 10년이 지났고 10년 동안 보지 못한 얼굴이 가득하니 동창회 사진일 것"이라고 추론한다는 것이다.
이사를 고려하는 사용자가 자신이 살고 있는 곳과 비슷한 도시를 나열해 달라고 요청한 것에 답변할 수 있으며 사용자의 식습관에 대해서도 사진을 보고 요약할 수 있다. 또 사용자가 촬영한 스크린샷을 기반으로 취미, 관심사, 예정된 여행 계획 및 구매, 즐겨찾는 웹사이트, 음식 사진 등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다.
국내에서도 이 같은 시도가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 SK텔레콤은 지난해 AI 서비스 '에이닷'에 오래된 정보를 기억해 대화에 활용할 수 있는 '장기기억' 기술과 다양한 영역에서 수집된 이미지와 한글 텍스트를 동시에 학습해 사람과 흡사하게 생각하고 스스로 표현할 수 있는 '이미지 리트리벌(이미지 검색)' 기술을 적용했다. 네이버도 초거대 AI '하이퍼클로바'를 바탕으로 자연어를 기반으로 한 기억 모듈을 구현했다. 독거 노인의 안부를 묻는 케어콜에 추가된 '기억하기' 기능이 그 예다.
다만 이처럼 AI가 발달할수록 개인정보보호와 관련된 논란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작년 6월 미국에서는 챗GPT가 온라인에 있는 개인정보를 무단으로 수집하고 활용해 금전적 이익을 내고 있다는 이유로 시민들이 오픈AI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냈다. 국내에서도 개인정보보호위원회가 국내외 기업 10여곳을 상대로 실태 점검을 진행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AI가 일상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지만 많은 소비자들은 AI가 자신의 디지털 기록을 기억한다는 개념에 불편함을 느낄 것"이라며 "AI 챗봇이 부정확한 가정을 하거나 사용자에 대해 의도하지 않은 통찰력을 드러내는 경우에도 윤리적 위험이 있다. 필요한 개인정보의 범위와 정보를 얼만큼, 언제까지 수집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고 말했다.